▲ 최근 국토부와 서울시가 주택정책을 두고 마찰을 빚고 있다. 사진은 여의도에서 바라본 한강변 아파트.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건설업자 입장에서는 국민주택 규모 이하로 지을 때 국민주택기금을 저리대출 받을 수 있다. 분양할 때도 유리하다. 각종 세금 혜택이 많아 분양받는 사람들도 국민주택 규모 이하를 선호한다. 국민주택 규모 이하 주택(9억 원 이하)을 거래할 때는 2.2%의 취득세를 내면 되지만 더 큰 주택은 2.7%의 취득세를 내야 한다.
국민주택 규모 이하를 매매할 때는 건물값에 대한 부가세가 없지만 더 큰 주택은 건물값의 10%를 부가세로 내야한다. 임대사업자의 경우도 소유하고 있는 주택이 국민주택 규모 이하라면 매년 25%의 재산세를 감면해주지만 85㎡ 초과 주택을 가졌다면 이런 혜택이 없다.
그런데 요즘 이 국민주택 규모가 논란이다. 서울시에서 국민주택 규모를 1~3인 가구수 증가 등 주택수요의 변화를 고려해 85㎡에서 65㎡로 조정하자고 정부에 건의했고, 정부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국민주택은 주택법 제2조 3항에 ‘국민주택기금의 지원을 받아 건설되거나 개량되는 주택으로 1호 또는 1세대당 85㎡ 이하(일부 읍 또는 면 지역은 100㎡ 이하)’로 정의돼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정도 크기의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보는 평균적 주거환경을 의미하는 셈이다.
그런데 왜 85㎡가 국민주택 규모가 됐을까? 일단 85㎡가 국민주택 규모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 낮은 주택보급률과 수도권 집중화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마련한 ‘주택건설촉진법’(1972년 12월 30일 제정)에서다.
이 법에 85㎡가 등장한 배경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당시 정부가 1인당 거주에 필요한 적정 주거면적을 5평으로 삼고, 평균 가구원수인 5를 곱해서 25평으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평’이 보편화된 단위였지만 법적으로는 ‘㎡’를 쓰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25평을 ㎡로 환산하니 82.5㎡였고, 이를 토대로 보기에도 좋고 쓰기도 좋은 85㎡로 하자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 가운데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신당동 사저가 85㎡였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85㎡로 결정한 이후 다시 혼선이 생겼다. 당시 평형에 익숙했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85㎡을 다시 평으로 환산해 어정쩡한 수치인 25.7평이 국민주택 규모가 됐다. 그 이후 85㎡와 25.7평이 함께 국민주택 규모로 사용되다 2007년 계량법을 통일하면서 법정단위에서 평이 사라지면서 지금처럼 85㎡이 국민주택 규모가 된 것이다.
처음 국민주택 규모의 기준이 마련된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 국민주택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왜 나온 것일까. 40년 동안 가구의 분화현상과 평균 가구원수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우리나라의 평균 가구원 수는 2.69명에 불과하다. 2005년 2.88명보다도 0.19명 감소했다.
이젠 2인 가구가 가장 주된 가구 유형이 됐고, 1990년 이후 주된 가구유형이었던 4인 가구보다 많아졌다. 전국 1733만 9422가구 중 69%가 1~3인 가구(1204만 2982가구)에 속한다. 전남과 경북은 1~3인 가구의 비중이 무려 77%에 달하며, 부산(71%), 강원(76%), 충북(73%), 충남(74%), 전북(73%), 경남(71%) 지역이 70%를 넘어섰다.
가구원 수는 줄어든 반면 주택은 2006년 1월 합법화된 발코니 확장 등으로 서비스면적이 커지면서 더 넓어졌다. 60㎡형 주택은 85㎡형과 비슷해지고 85㎡형은 105㎡형과 비슷해졌다. 중대형인 105㎡에 살던 사람이 84㎡형에 살아도 별로 작아졌다고 느끼지 못한다.
국내 시공능력 10위 이내 건설사가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의 90% 이상은 발코니 확장형이다. 대형 일부 물량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아파트가 발코니 확장형으로 공급되는 셈이다. 발코니를 확장하면 주택 내부 공간이 보통 20~30㎡ 정도 넓어진다. 가구원 수가 과거에 비해 줄어든 상태에서 발코니 확장비용 1000만~2000만 원만 부담하면 기존 전용면적에서 20~30㎡나 더 크게 쓸 수 있게 됐는데 굳이 큰 주택에 들어갈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이런 수요 변화를 반영해 건설사들이 짓는 주택 규모도 작아졌다. 2010년과 2011년 2년간의 전국주택 사용검사(준공) 실적을 전용면적별로 분석한 결과, 60㎡ 이하는 2010년 10만 5617채에서 2011년 13만 5767채로 28.5%(3만 150채) 증가했다. 반면 60~85㎡는 11만 672채에서 10만 1665채로 8.1%(9007채) 감소했다. 지역별로 서울과 부산·울산의 경우 60㎡ 이하 주택공급이 같은 기간 각각 110.3%, 201.2%, 112.2% 급증했다.
그럼에도 국토해양부가 국민주택 규모 축소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책적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국민들은 85㎡ 정도의 집을 가져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건설 기준뿐만 아니라 금융 세제 등 다양한 제도와 얽혀 있어 쉽게 건드릴 부분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분양시장의 기본인 청약통장이 85㎡를 기반으로 설계돼 1000만 가구 이상이 가입해 사용하고 있고, 보금자리주택 등 저렴한 공공주택의 청약가능 기준도 85㎡를 기준으로 운용되고 있다. 앞서 일부 언급한 대로 근로자·서민주택구입자금대출과 전세자금 대출 등 건설사와 주택구매수요자들의 국민주택기금의 활용과도 밀접히 연계돼 있다. 만만히 건드릴 사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국토해양부는 따라서 소형 주택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다면 국민주택 규모를 축소하기보다는 60㎡ 이하에 대한 금리 혜택 등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국민주택 규모에 따라 각종 혜택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하향 조정하면 65㎡ 이하 주택 공급은 늘고 65~85㎡ 사이 주택 공급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며 “재고주택 상황, 인구구조 변화 등을 고려해 장기적인 계획으로 신중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