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영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지난 2월 8일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채 회장 역시 검찰에 나와 “내가 김 전 부회장과 이 전 의원을 연결시켜줬다. 김 전 부회장 말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원은 “김 전 부회장이 보낸 돈은 정치자금이 아니라 방정환재단에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 등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전 의원이 또 다시 금품 수수 논란에 휩싸이자 민주통합당은 지난 3월 15일 그의 공천(강원 동해·삼척)을 철회했다.
합수단은 방정환재단이 불법 정치자금 전달의 통로로 활용됐을 것으로 판단, 수사를 확대했다. 중수부 관계자는 “이 전 의원 이외에 다른 정치인들도 돈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김 전 부회장을 여러 번 불러 조사했다”고 털어놨다. 김 전 부회장은 검찰에 출석해 “2006년 가을경 정몽구 회장이 강남의 I 호텔에서 이 전 의원 등 열린우리당 소속 386의원 8명을 만나 1000만 원이 든 돈봉투와 와인 2병씩을 선물했다”고 진술했다. 정 회장과 이들이 만난 이유에 대해 김 전 부회장은 “보석 상태에서 재판 준비를 하고 있던 정 회장이 당시 실세였던 386의원들의 우호적 여론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해서 자리를 만든 것으로 안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반면, 이 전 의원은 “(정 회장을) 만난 것은 맞지만 대북 사업에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돈은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정 회장과 만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 역시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하고 있는 상태다.
김 전 부회장은 “정 회장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도 접촉했는데, 다리를 놔 준 인물이 바로 이 전 의원”이라고도 진술했다. 정 회장 구명 로비가 청와대 인사들을 상대로도 이뤄졌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수부 관계자는 “2007년 8월 변중석 여사(정몽구 회장 모친) 상가에서 이 전 의원과 김 전 부회장이 만났다. 그 자리에서 이 전 의원이 김 전 부회장에게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정 회장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변 여사 장례식 이후 열린 항소심에서 정 회장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 2월 1심에서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3년을 선고받았지만 감형을 받은 것이다. 그 후 정 회장은 2008년 6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3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두 달가량 뒤 사면을 받은 바 있다.
또한 검찰은 김 전 부회장으로부터 “일부 386의원들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식사 자리를 마련했는데, 안마 및 ‘2차’까지 보내줬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이들이 묵었던 곳은 베이징의 J 호텔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에 위치해 있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참여정부 인사(청와대 근무 경력)로부터 김 전 회장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정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 회장이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 선고를 받은 직후였다. 몇몇 의원들이 중국을 갔는데, 김 전 부회장이 보낸 인사로부터 접대를 받았다고 했다. 현대차 직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술자리를 마친 뒤 안마를 받았고, 현지 여성과 방으로 올라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진술한 성매매 부분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공소시효(5년)가 끝나 형사 처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386의원들이 정 회장으로부터 돈봉투 및 와인을 받았다는 의혹 역시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3년)가 끝나 수사 종결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지난 2월 말 이화영 전 의원만을 불구속 기소하며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은 “재판을 통해 억울함을 입증하겠다”며 지난 3월 16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유동천 회장은 물론 김동진 전 부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 재판 받기도 전에 비리 혐의자로 낙인 찍혀 안타깝다”며 “반드시 선거에서 승리해 지지자들에게 보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현대차 그룹은 지난 3월 11일 “검찰 조사와 관련해 아는 바가 없다. 수사 중인 내용과 관련해 확인된 것이 없으며 사법기관이 조사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말을 할 상황도 아니다. 김동진 전 부회장은 수년 전에 회사를 그만둔 사람으로 현재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야권은 검찰 수사에 대해 강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공소시효가 끝나 어차피 수사 대상이 되지 않음에도 관련 내용을 언론에 흘려 야권 인사들을 깎아내리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명숙 대표를 필두로 하는 친노 인사들이 검찰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는 점에서 야권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야권 압박을 위한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통합당 중진 의원은 “김동진 전 부회장 진술에 오르내렸던 의원들 중 대부분이 총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터져 나오면서 그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차가 정 회장 구명 로비를 했다는 것은 그리 새로운 내용도 아닌데 왜 하필 총선을 앞두고 지금 불거졌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도 “김 전 회장 진술이 사실이라면 해당 인사들은 분명 비난을 받아야 할 문제다. 다만 최근 일련의 움직임(<일요신문> 1034호 기사 ‘중수부 수사 숨은 1인치 들춰보기’ 참고)을 봤을 때 검찰이 정치적인 판단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현대차 비자금 사태란
1200억 횡령 혐의
지난 2006년 3월 26일 대검 중수부 검사와 수사관들이 현대자동차 계열사인 글로비스에 들이닥쳤다. 그룹 총수인 정몽구 회장의 구속으로까지 번졌던 ‘현대차 사태’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벽 속에 감춰 놓은 50억 원을 비롯해 회계 장부 등을 압수해 간 검찰은 3월 29일 “현대차 비자금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브로커 김재록 씨의 정·관계 로비를 수사하던 중수부가 현대자동차 심장부를 겨누고 나선 것이다.
검찰 발표 직후 정몽구 회장은 미국으로 출국했고, 아들 정의선 당시 기아자동차 사장은 출국 금지됐다. 검찰이 “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한 부의 이전에 대한 수사”라며 정 회장 부자를 압박하자 현대차 측은 ‘1조 원대 글로비스 주식지분 헌납’이라는 승부수를 빼들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4월 24일 검찰에 소환됐고 이틀 뒤 결국 구속 수감됐다. 1200억 원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4000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였다.
구명로비 다리놔준 대가?
수백억 대의 불법대출을 해준 혐의(상호저축은행법 위반 등)로 구속 기소된 채규철 강원도민저축은행 회장은 지난 2월 24일 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금융업계에서 ‘수완이 좋은 사업가’로 이름을 알리며 승승장구했던 채 회장은 고개를 숙이며 법정을 빠져 나갔다. 이로써 강원도민저축은행 수사는 일단락된 상태지만 검찰 안팎에선 채 회장이 대주주(지분율 38.27%)로 있는 종합보안업체 씨큐어넷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확산되고 있다. 씨큐어넷의 사업 입찰 과정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체크를 해봐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채 회장이 지난 1998년 인수한 씨큐어넷은 2000년 260억에 불과하던 매출액이 2009년 1100억 원으로 급등했다. 불과 10년 만에 네 배 가까이 올랐다. 특히 2007년엔 전년(580억)보다 360억 원이나 늘어난 940억 원을 기록했다. 채 회장이 지난 2008년 8월 강원도민저축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씨큐어넷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씨큐어넷의 급격한 사세확장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2007년 현대차 그룹이 엄청난 물량을 몰아줘 가능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채 회장이 2006~2007년 사이 정몽구 회장 구명 로비에 관여한 대가로 사업을 따냈을 것이란 관측과도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중수부 관계자는 “씨큐어넷이 현대차로부터 사업을 수주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의혹이 제기된다면 확인은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채 회장은 유력 인사들을 씨큐어넷 임원으로 영입해 사업 확장에 적절히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바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다. 허 전 청장은 2008년 8월부터 코레일 사장에 취임하던 2009년 3월까지 씨큐어넷 회장을 역임했다. 허 전 청장은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노원병)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14·15대 의원과 한국가스공사 사장을 지냈던 김명규 전 의원도 지난 2005년 씨큐어넷 회장을 맡은 바 있다. 또한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친형인 손덕규 씨도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대표이사 직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던 손학규 고문은 ‘차세대 정치인’으로 급부상하던 때였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