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4·11 총선 격전지인 부산 사상구를 찾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문재인 후보와 맞붙는 손수조 후보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하지만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심중’은 달랐다. 그는 “손수조 후보 당선을 위해 공천을 한 것이다”고 분명히 말했다. 당시만 해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적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양측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드는 흐름을 보이고 있고, ‘손수조 당선은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상황까지 발전했다. 공천확정 2주가 채 가기도 전 부산 사상구는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생존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손수조 대 문재인 싸움이 아니라 박근혜 대 문재인의 싸움으로 전선이 정리되는 분위기다.
‘손수조의 오름세’는 지난 12일 <부산일보> 여론조사 결과 보도가 도화선이 되었다. 최근까지 각종 여론 조사에서 문재인 후보가 손수조 후보를 20% 포인트 정도의 차이로 앞서던 것이 이날 발표에서 문재인 47.9%, 손수조 39.6%로 지지율 격차가 8.3%포인트 차이로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지난 14일 <동아일보>의 부산 사상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43.5%, 손 후보가 27.5%로 문 후보가 16.0%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왔다. 이는 문 후보가 손 후보를 일방적으로 리드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지표다. 선거 초반의 ‘문재인 완승’ 분위기에서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3일 박근혜 위원장은 부산을 방문, 직접 손수조 후보 지원에 나섰다. 기자회견장은 물론이고 손 후보와 ‘카퍼레이드’를 하는 곳마다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손 후보는 “떠날 사람과 남아있을 사람, 정치를 할 사람과 일을 할 사람을 구분해 달라”고 호소했고, 박 위원장은 “손수조 후보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화답했다.
박 위원장이 이처럼 ‘버린 카드’라는 말까지 듣는 손수조 후보의 지원에 ‘올인’을 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박 위원장이 직접 나서 잠재적 라이벌인 문재인 후보를 ‘제압’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낙동강벨트의 힘을 빼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대권주자의 씨를 말리겠다’는 강공책으로 영남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이번 총선에서 확고한 제1당이 되겠다는 새누리당의 계산이 섰다는 해석이다.
친박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판세를 볼 때 수도권 112석 가운데 40% 정도인 45석을 얻고, 영남에서 4~5석을 내주며 63석 정도만 확보해도 비례대표 합해 130여 석에 이른다. 강원 충청까지 합치면 많을 경우 140석까지도 바라보고 있다. 이 정도만 하면 박 위원장의 대선가도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총선이 그동안 흔들렸던 박 위원장의 대세론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의 이런 자신감은 대선의 가장 강력한 상대인 문재인 후보를 ‘견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대권에 나가지 못하도록 초반에 싹을 자르겠다는 적극적 전략으로 선회하는 계기가 됐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야당이 공천과정에서 호재를 제공한 것이 사실이고, 이에 반해 새누리당은 현역 이탈을 최소화하면서 공천후유증을 질서 있게 정리했다”며 “당초 근소한 제2당이면 성공이라는 것에서 이런 상황이면 제1당도 충분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15일자로 한미 FTA가 발효돼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이 부각되고, 제주도 강정해 군기지 문제에서도 새누리당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 지난 13일 부산 사상에 출마하는 문재인 후보가 부산지역 범야권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현장지원에 나섰다. 문 후보(가운데)가 문성근(오른쪽), 전재수 후보와 함께 구포시장에서 상인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무성 의원은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연일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좌파세력에게 의회와 정권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논리와 함께 손수조 후보 당선을 위해 모든 힘을 쏟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김 의원은 15일 불교방송에 출연, 문재인 후보에 대해 “제주 해군기지 현장에 가서 좌파들이 벌이는 데모에 동참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손수조 후보가 문 후보를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열심히 도와 반전시켜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불출마로 인해 ‘부산의 백의종군 의리파’라는 긍정적 평가를 얻었고, 이번 선거에서 이를 극대화 시키면서 낙동강벨트의 상징인 문 후보를 직접 겨냥해 정면승부를 펼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의 불출마 선언으로 최소한 5석은 건졌다는 새누리당의 해석도 나오고 있다. 선거에 일가견이 있고, 조직 관리가 ‘전공’인 김 의원이 손수조 후보를 밀어 당선시킬 경우 박 위원장의 ‘대권 밀본’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로 사상구 토박이를 자처하는 장제원 의원도 당초 김대식 예비후보를 밀다가 손 후보로 공천이 확정되자 조직을 총동원해 손 후보를 돕고 있다고 한다.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했던 부산지역 한 예비후보는 “손수조 후보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개인으로 볼 수 없고 박근혜, 김무성, 장제원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조직 속에서 선거를 치르고 있다”며 “한 번도 야당이 승리하지 못한 지역에서 대권주자인 문재인 후보가 끝까지 수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위원장의 잇단 부산 방문, 김무성 의원의 불출마 이후 광폭 행보와 함께 허남식 부산시장도 여권 총동원령에 협조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문재인 후보가 부산 사상 출마를 선언한 뒤 지난해 12월 하순부터 지난 3월 12일까지 5차례나 사상구 또는 낙동강 일대를 방문해 지역 현안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 해 동안 부산전역의 현장 방문이 총 40여 차례였는데 1분기를 넘기지도 않은 시점에 22차례의 현장 방문을 했고, 그것도 낙동강 일대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허 시장 측은 “올 들어 현장 소통행정을 강화하면서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고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민주통합당 부산시당 관계자는 “여당 시장이 야권 전략지역에 눈에 띄게 자주 방문하는 것은 관권 선거의도가 명백하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후보도 “사상에 출마하는 것만으로 사상을 많이 발전시키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낙동강벨트 구축이냐, 해체냐’를 놓고 여야 간에 벌이는 박근혜-문재인의 총력전, 대리전 양상에서 과연 유권자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대선가도에 길을 뚫는 문재인 후보, 신예처럼 등장해 대권주자와 맞짱을 뜨고 있는 손수조 후보. 그 사이에서 박근혜 위원장의 ‘대권 비책’이 춤을 추고 있다.
고진동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