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천자들이 개최한 민주당 혁신연대 발족 기자회견. 유장훈 기자 |
이당직자는 “임 전 의원의 진정성을 믿고, 재판이 엉터리였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의 사무총장 임명이 왜 문제가 있는지 설명했다.
“비록 줄줄이 무죄가 선고되고 있지만 한명숙 대표가 재판을 받고 있는 것도 4·11 국회의원 총선거에 부담이 된다. 그런데 이제 ‘재판 받는 대표에 재판 받는 사무총장’까지 갖게 됐다. 더욱이 사무총장이 어떤 자리인가. 총선기획단장을 겸임하면서 공천과 선거전략, 야권연대 등을 총괄해야 하는 직책이다. 재판 중인 사무총장이 무슨 수로 새누리당과의 ‘쇄신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겠는가.”
불과 한 달여 뒤 이 당직자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취약지역인 영남권 인사 공천이 대부분이었던 2월 22일 1차 공천자 발표는 무난히 넘어갔지만 전·현직 의원 상당수가 단수후보 공천자로 발표된 2월 24일부터 여기저기서 ‘지뢰’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20여 일간 민주당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2월 24일 발표된 2차 단수후보 공천자 54명에 임 전 사무총장(서울 성동을)은 물론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이화영 전 의원(강원 동해·삼척)이 포함된 사실이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비난이 빗발쳤다. “공천 과정에서 도덕성과 정체성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던 한명숙 대표와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의 약속은 어디로 갔느냐는 내용이었다.
2월 26일에는 광주 동구에서 선거인단 모집책의 투신자살 사건이 터졌다. 이는 호남 지역 민주당 국민경선이 ‘국민참여경선’이 아니라 ‘국민동원경선’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계기가 됐다. 결국 민주당은 이 선거구에 대해 3월 2일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3차, 4차, 5차 공천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도대체 원칙이 뭐냐”는 비판이 들끓었고, 그 화살은 한명숙 대표와 그를 둘러싼 486 세대 정치인들에게 향했다. ‘노이사(친노, 이화여대, 486) 공천’이라는 비아냥 속에 한 대표와 강철규 위원장, 임종석 전 사무총장, 우상호 전략홍보본부장, 백원우 공천심사위 간사 등이 ‘공천 5적’으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3월 8일 이해찬 전 국무총리,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성근 최고위원 등 ‘혁신과 통합’ 상임고문단이 긴급 회동했다. 문 이사장은 회동 후 한명숙 대표를 만나 임 전 사무총장과 이화영 전 의원에 대한 공천 취소를 요구했다. 결국 임 전 사무총장은 이튿날인 9일 사무총장과 공천자격을 반납했다(3월 16일 박선숙 의원이 신임 사무총장직에 올라 임 전 의원은 사실상 이번 총선 정국에서 멀어졌다).
3월 12일에는 한광옥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구민주계 인사들이 ‘정통민주당’ 창당을 선언했다. 정두환 서울 금천 선거구 예비후보 등 전ㆍ현직 의원 단수후보 공천으로 경선 기회조차 잡지 못한 예비후보 14명도 집단 탈당하면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14일 ‘나는 꼼수다’ 멤버 중 한 명인 김용민 씨를 정봉주 전 의원 지역구인 서울 노원갑에 전략공천하자 ‘꼼수 공천’, ‘지역구 세습 공천’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15일에는 민주당이 이화영 전 의원과 전혜숙 의원(서울 광진갑)의 공천을 취소했다. 전 의원은 당내 경선 준비 과정에서 지역 향우회 간부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다시 새누리당에게 선두 자리를 내줬고, 한명숙 대표의 리더십도 큰 상처를 입었다. 상향식 민주주의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새누리당의 공천보다도 못하다는 가혹한 평가가 잇따랐다.
‘공천 혁명을 이루겠다’던 민주당이 어쩌다 이렇게 처참한 신세가 됐을까. 선거 전문가들과 당 안팎의 인사들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임종석 사무총장 기용에서부터 공천 실패는 예견됐다는 것이다.
▲ 노원갑 전략공천 반대 집회. 유장훈 기자 |
‘강철규 공심위’가 이른바 ‘포지티브 공천’을 내건 것도 공천 갈등을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8대 총선 당시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심위원장은 원칙을 정해 무조건 자르는 ‘네거티브 공천’을 했었는데, 이번엔 공심위가 후보자 선별에 나서는 바람에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는 것이다.
한 선거 전문가는 “최규식 의원(서울 강북을)은 확정판결도 안 받았는데도 공천을 주지 않아 불출마를 유도해 놓고 실형까지 살고 나온 이부영 전 의원(서울 강동을)에게 공천을 주는 건 무슨 논리냐”고 꼬집었다. 경선 후보자를 추려내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노이사 공천’ 논란이 일었던 것도 공심위의 ‘포지티브 공천’ 원칙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미 부작용이 예견됐던 동원 경선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박지원 최고위원은 “젊은 층이 별로 없는 농촌 지역구의 경우 선거인단 동원 경쟁이 과열될 수밖에 없다”며 진작부터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당 지도부에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선거인단 대리 접수, 경선장 실어 나르기 논란이 계속됐고 경선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재심 청구가 속출했다. 광주시당의 한 당직자는 “정치 경험도 없는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모바일 경선’의 환상에만 빠져 일을 그르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극심한 공천 후유증과 공천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싸늘한 평가는 민주당 총선 성적표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으로선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로 새누리당과의 1 대 1 대결구도를 만들려던 민주당의 구상이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은 뼈아프다. 영·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민주당 공천 결과에 반발해 탈당, 무소속 또는 정통민주당 후보로 총선 출마를 선언한 예비후보만 20명에 육박하고 있다. 사표 방지를 위한 야권연대를 어렵사리 이뤄냈지만 공천 갈등이 또 다른 사표를 낳게 된 셈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