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에서 종영한 드라마 <브레인>의 한 장면. 이 드라마에선 의사들이 의과대학 부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학 교수들. |
“내 사위의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의사인데 대학에서 퇴출됐다고 밥 굶겠나. 하지만 주임교수라는 절대적인 직위를 이용해 자행되고 있는 비리들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해놓고도 C 교수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버젓이 근무하고 있으며 대학 측에서도 관행 운운하며 넘어가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B 씨에 따르면 C 교수는 2009년 3월부터 10월까지 XX과 전문의인 제자 A 씨 등 2명을 지역의 한 의료원으로 파견 보냈다. 이는 A 씨 등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으로 주임교수라는 직위에 의한 강제파견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C 교수가 A 씨를 비롯한 제자들의 급여를 가로챘다는 것이었다.
B 씨는 “사위는 파견 나간 병원에서 매달 780만 원의 급여를 받았다. 그런데 C 교수는 월급 중 매달 500만 원씩 8회에 걸쳐 4000만 원을 차명계좌로 이체받아 갈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위는 C 교수가 주임교수라는 이유로 항의는커녕 속앓이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B 씨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확인 결과 C 교수는 이 사건으로 2010년 12월 경찰에 불구속입건된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4월경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착수한 경찰에 의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것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전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C 교수는 A 씨 등 제자 2명의 월급을 갈취하고 교수임용을 빌미로 A 씨의 장인 B 씨로부터 1100만 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B 씨는 “C 교수는 ‘사위를 내가 맡아서 책임지고 잘 키워주겠다. 나만 믿으면 교수임용은 문제없다’며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했다. 대학병원 시스템상 의사의 ‘생사’는 주임교수의 손아귀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위의 앞날을 생각해 이를 거부할 수 없었던 나는 부끄럽지만 4회에 걸쳐 조경석 등 뇌물을 갖다 바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의대교수가 뇌물수수 등으로 입건됐다는 불미스러운 소식이 퍼져나가자 당시 해당 병원은 물론이고 지역 의료계 안팎에서는 여러 말들이 떠돌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의료계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군대식 위계질서에 대한 자성과 함께 거액의 의국비(병원 같은 곳에서 의사들이 대기하는 방 사용료 명목 등으로 내는 뒷돈)를 걷어야 유지되는 병원의 열악한 환경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사건이 커지자 결국 C 교수는 갈취금액 전액을 반환하고 부원장 보직을 사임했다.
그렇다면 사건이 일단락됐음에도 A 씨가 여전히 분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B 씨는 C 교수가 여전히 병원의 주임교수로 근무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문제 삼고 있다. “사위는 후환이 두려워 진술을 주저했다. 당시 경찰은 통화내역 분석을 통해 C 교수가 피해자들에게 진술 번복을 회유한 사실도 확인했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으로 사위가 C 교수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다는 사실이다. 경찰조사 과정에서 C 교수 편을 들지 않고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였다. C 교수는 이런 황당한 이유로 사위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타당한 이유도 없이 무조건 ‘너 같은 얘랑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다. 다른 데 찾아보라’며 재임용을 거부, 사위는 결국 2월 29일부로 병원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B 씨가 분노하는 이유는 대학 측의 태도다. B 씨는 “직위를 이용한 의대 교수들의 비리를 대학 측에서 관행 운운하거나 ‘책임 떠넘기기’ 식으로 묵인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들이 학교와 병원 내에서 음성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육과학기술부에 C 교수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명 및 재임용 거부 사유에 대한 대학 측의 답변을 요구했으나 여태껏 묵묵무답이다. C 교수 같은 파렴치한 인물이 외부적으로 덕망 있는 교수인 양 추앙받으며 국립대 총장자리까지 넘본다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성토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한 대학 측의 입장은 다르다. 해당 대학 관계자는 3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임상교수 임용은 학교와 무관하게 병원장 임명으로 이뤄진다. 대학 측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교수임용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이 관계자는 C 교수와의 앙금으로 부당하게 재임용이 거부됐다는 B 씨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였다.
타과 의대교수인 이 관계자는 “임상교수 임용은 계약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뤄진다. 주임교수와의 관계라든지 개인적인 감정이 아예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할 순 없지만 병원에서 특정인을 의무적으로 재임용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실력이나 자질에 문제가 없더라도 TO 여부나 과 운영상 문제로 재임용이 안 될 수 있다. 즉 A 씨의 경우는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는 얘기다. 또 시스템상 통상적으로 임상교수는 길게 안 한다”라고 설명했다.
C 교수와 관련된 일련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문제가 된 돈은 의국비 명목으로 받은 돈이다. 보통 의국장을 정해놓고 그 통장으로 의국비를 모으는 것이 관행이고 의국비는 각 과별로 사정에 따라 운영한다. 통장에 들어온 4000만 원을 C 교수가 임의로 빼 썼다면 착복이겠지만 그런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B 씨는 C 교수의 부적절한 사생활 의혹까지 거론하며 의료인이자 학자로 부적합한 인물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특히 사위의 임용 거부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받지 못할 땐 C 교수와 학교 측에 법적 대응까지 불사한다는 방침이어서 추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