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
이번 총선에서 ‘찬밥 논란’을 일으킨 대표적인 예는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다. 김 전 본부장은 FTA(자유무역협정) 교섭대표 시절 한-미 FTA를 이끌었고, 본부장을 맡아 추가 협상을 마무리 지은 인물. 새누리당은 김 전 본부장을 한미 FTA 반대론자인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의 대항마로 강남 을에 공천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런데 강남 을엔 이영조 후보가 공천을 받았다. 공천 막바지까지 김 전 본부장의 이름은 오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한-미 FTA가 지나치게 정치 쟁점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김 전 본부장을 공천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김 전 본부장은 이영조 후보가 왜곡된 역사관으로 공천 취소되고 나서야 강남 을 공천을 받으며 찬밥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출신인 윤영선 전 관세청장은 새누리당 충남 보령시·서천군 공천을 신청했다가 불출마를 선언했다. 윤 전 청장은 당에서 공정한 경선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며 총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재정부 공무원들은 마당발로 유명한 윤 전 청장이 재직시절부터 지역구 관리를 해왔다는 점에서 윤 전 청장의 불출마 선언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출마 예정지인 대구 중남구가 전략공천지역으로 분류되면서 공천이 불투명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박 전 차관을 공천시키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산업자원부 출신인 이기우 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경남 창원 성산에서 치러진 경선에서 졌다. 심학봉 전 경제자유구역단장은 출마지인 경북 구미 갑에서 경선을 치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 고위직을 지냈던 경제 관료들도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는 등 경제 관료들에 대한 찬바람이 거세다. 허범도 전 산자부 차관보(경남 양산)와 김칠두 전 산자부 차관(부산 동래)은 공천에서 탈락했다. 허 전 차관보는 공천 결과에 승복하며 백의종군을 선언했지만 김 전 차관은 공천 결과에 대한 재심의를 요청한 상태다.
이에 반해 이명박 정부 출신 경제 고위관료 중에서 ‘살아남은 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윤진식 의원이 충북 충주에서 공천을 받았고, 류성걸 전 재정부 2차관은 대구 북구 갑에서 전략공천설이 나오고 있다.
경제 관료들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다. 재정경제부 장관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내 민주당 내에서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불리던 강봉균 의원(전북 군산)은 당내 공천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강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탈당 및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정치권이 정권을 잡는 데 혈안이 돼 국민경제의 안정과 발전 기반을 위협하는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원내대표(수원 영통)는 공천은 받았지만 당 안팎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이 주장하는 한-미 FTA 폐기에 김 대표가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정체성마저 의심받는 처지다. 그나마 경제 관료 출신 중에서는 홍재형 부의장(청주 상당)이 격전이 예상되는 충청 지역이라는 점 등으로 무난히 공천을 받았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과거 총선 때마다 단골 공약이 경제를 어떻게 살리겠다는 것이다 보니 경제 전문가들을 대거 전면에 배치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는 경제 고위관료 출신들이 러브콜을 많이 받았다”면서 “그런데 이번 총선이 복지 방향으로 흐르다보니 성장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강한 경제 관료들이 과거에 비해 외면당하고 있다. 경제 관료들의 힘이 예전만 못한 데다 정치권에서도 찬밥 신세를 받는 것을 보고 힘 빠져 하는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