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민주통합당 인재근 후보(59·도봉갑)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씻는 둥 마는 둥 하며 부랴부랴 선거캠프로 향했다. 벌써 출근한 참모들은 그날의 ‘살인 일정표’를 인 후보에게 내밀었다. 그는 서둘러 회의를 끝내고 아이돌그룹 뺨치는 초단위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오전 7시 30분. 수유역에서 출근길 인사를 시작했다. 인 후보는 “한 달 전부터 매일 5시에 일어나 12시 가까이에 잠이 든다”며 피곤한 기색을 보였지만 지지를 호소하는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피곤한 것은 인사를 받는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출근길 시민들은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문안 인사’에 무관심하거나 냉랭한 반응이었다. 인 후보 측 자원봉사자는 “바쁜 출근길에 명함을 받아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라며 웃어 넘겼지만 그 명함마저도 지하철 계단을 따라 버려졌다.
오전 8시 30분. 출근길 인사를 마치고 근처 식당에 들러 3000원짜리 선지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했다. 기자도 밥을 빨리 먹는 편이지만 10여 분 만에 식사를 마친 그를 따라잡기 위해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오전 9시. 출근길 인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산으로 이동했다. 지역의 초안산을 찾는 등산객들과 에어로빅 동호회 회원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지금은 부동층인 주부들의 마음을 잡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 산에서 인 후보를 만난 주민들은 “고생이 많다”, “이번에는 잘 될 거다” 등의 격려부터 “초안산 공원에 간이화장실 없어 불편하다”는 건의사항까지 다양한 말을 쏟아냈다.
오전 10시 30분. 산을 내려오던 중 인근 주민자치센터에서 대청소를 실시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급히 일정을 바꿔 잠깐 인사만 한 뒤 또 다른 주민자치센터 내 노래교실을 찾아서 노사연의 ‘만남’을 열창했다.
오전 11시 30분. 벌써 4번째 스케줄이다. 도원교회 경로잔치 배식을 도우러 갔다. 천주교 신자인 인 후보는 “국회의원의 아내였을 때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모든 정치인들은 ‘기불릭’(기독교, 불교, 가톨릭의 합성어) 신자가 된다”는 우스갯소리의 당사자가 된 셈이다. 인 후보 측 자원봉사자는 “종교 행사는 필참 사항이다. 기독교는 여당, 천주교와 불교는 야당 성향으로 많이 알려지지만 선거를 앞두고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덧붙였다.
오후 1시 20분. 배식이 1시간 넘게 이어지면서 1시 30분으로 예정됐던 공천장 수여를 위한 중앙당사 방문은 취소하고 선거캠프로 복귀해 한 언론사와 10여 분 정도 인터뷰를 했다.
오후 1시 40분. 창일초등학교 학부모 회의에 참석한 인 후보 측은 “여의도 당사까지 1시간 넘게 소요되고 또 같은 시각 창일초ㆍ월천초등학교 학부모회의에 반드시 얼굴을 비쳐야 할 것 같아 대리수령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후 2시. 다시 사무실로 와서 순두부찌개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미리 음식을 배달시켜 기자를 먼저 먹게 배려한 그는 ‘식은’ 찌개를 서둘러 먹었다. 이번에도 식사시간은 10분 남짓.
오후 2시 30분. 다시 월천초등학교 학부모 회의에 참석해 유권자들과 눈 인사를 나눴다.
오후 3시 10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함세웅 신부가 인사차 방문했다. 그날 처음으로 맞이하는 ‘개인일정’인 셈이다. 30분가량 대화를 하며 살인일정에 잠시 쉼표를 찍는 순간이다.
오후 4시. 또 다시 한 언론사와 50여 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뒤 비로소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무늬만’ 휴식일 뿐 또 다른 선거운동의 시작이다. 수시로 사무실을 방문하는 지지자들을 소홀히 대해선 안 된다. 그들의 ‘입 소문’이 지역구 전체에 실핏줄처럼 깔리기 때문이다.
오후 6시. 잠시 휴식을 취한 인 후보는 다시 창동역으로 향했다. 퇴근길 인사를 위해서다.
오후 7시. 사무실로 다시 복귀해 2시간 동안 점검회의가 이어진다. 이 시간은 그날의 스케줄에 대한 평가와 향후 선거 전략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가장 중요한 때다. 자원봉사자들도 9시에 퇴근하기 때문에 인 후보의 선거운동도 회의와 함께 끝난다.
이날 인 후보가 하루 동안 만난 주민들은 어림잡아도 1000명은 넘었다. 인 후보 측 선거사무장인 박진식 도봉구의원은 “선거는 운칠기삼이다. 바람을 탔다고 해서 안심한 채 가만히 앉아있으면 안 된다. 결과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며 “10명 이상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야 한다.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유권자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라고 전하며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에 응답했다.
이 같은 빡빡한 일정에 관해 한 자원봉사자는 “대다수 후보자들은 공천 접수가 시작된 지난해 12월부터 선거운동에 돌입해 지역구를 누빈다. 우리 후보의 경우 인사를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고 정치 신인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다니면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한 인 후보 역시 “남편(고 김근태 고문)의 선거 유세 때도 경험해 본 일이기 때문에 결코 낯설지 않다. 또 주위 분들이 자기 선거처럼 도와주니까 힘들다 생각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오후 9시 30분. 인 후보는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한 자원봉사자는 “밤 9시가 넘어 공식 일정이 끝나면 바로 퇴근한다. 하지만 대개 중간에 저녁 행사나 지인들의 잔치가 있으면 또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일정은 11시가 넘어서 끝나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오후 11시 30분. 자신과 관련한 기사를 검색하고, 밀린 집안일을 대충 끝낸 인 후보는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도 알람은 어김없이 새벽 5시에 울릴 것이다.
현재 전국 246개 지역구 927명의 후보들이 인재근 후보와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