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선거 문화가 약화되면서 선거전략 수립을 돕는 정치컨설턴트 중요성이 높이지고 있다. 일요신문 DB |
빌 클린턴의 딕 모리스, 조지 부시의 칼 로브, 버락 오바마의 데이비드 엑설로드. 이들은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컨설턴트들이다. 이들은 대통령 후보자들의 단순한 정치 자문 수준을 넘어 선거판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선거의 귀재’로 통한다. 이들의 손을 거치면 ‘선거도 예술이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정치컨설팅의 역사가 20여 년으로 짧다. 하지만 이들은 급속도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벌써 ‘e-윈컴’ ‘민기획’ ‘인뱅크코리아’ 등과 같은 주요 정치컨설팅업체들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박성민, 김능구와 같은 스타급 컨설턴트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정치컨설턴트들은 의뢰하는 후보자들의 선거에 관한 모든 것을 기획한다. 후보자들의 선거 어젠다 설정부터 지역구 리서치를 통한 객관적인 진단, 선거전략 및 홍보전략 수립 등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필승전략의 모든 것을 컨설팅한다. 선거판에 처음 뛰어드는 후보자들은 물론 부분적이나마 대다수 후보자들도 정치컨설턴트의 도움을 받는다.
‘2009년 중앙선관위 선거아카데미’ 교수를 지낸 인뱅크코리아 이재술 대표는 국내 정치컨설턴트 중 1세대로 통한다. 지난 1991년부터 정치컨설팅 업계에 뛰어들었다는 이 대표는 “국내에서 YS(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이전까지는 정치컨설팅의 개념조차 없었다. 그 전까지는 선거전략 이전에 무조건 돈과 조직이 우선이었다. 점차 공정선거문화가 자리 잡고 금권선거 및 조직선거 문화가 퇴화되면서 전문적인 컨설팅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정치컨설팅 중 핵심사항으로 전략수립을 꼽았다. 그는 “후보자들에 대한 정치컨설팅의 핵심은 단연 ‘전략’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보통사람’이라는 중도층 공략 전략이 먹혔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인 MB(이명박 대통령) 역시 ‘경제살리기’라는 전략이 먹혀든 것이지 국밥 한 번 먹었다고 당선된 것은 아니다. 후보자의 이미지 메이킹 이전에 우리는 그 후보의 공약과 현재 상황들을 고려한 적절한 전략을 수립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전략가 타입의 컨설턴트라면 마레커뮤니케이션즈 이재관 대표는 홍보책 타입의 컨설턴트다. 박성범 전 의원의 홍보담당 비서관 출신인 이 대표는 컨설팅의 과정 중 홍보 전략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책상위에 몇 장의 홍보전단지와 명함을 보여주며 “보다시피 훌륭한 컨설턴트의 손을 거친 홍보물들은 딱 보기에도 다르다. 인지도가 있는 후보, 그리고 격전지일수록 홍보 전략에 세심한 신경을 쓴다. 유권자 입장에서 후보자들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집에서 받아보는 전단지와 길거리에 뿌려진 명함, 현수막 등 홍보물뿐이다. 우리 입장에서도 선거비용 절반 이상이 홍보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 둘밖에 없는 처절한 전쟁이다. 그만큼 정치컨설턴트들의 책임 역시 막중하다. 이재관 대표는 “상업컨설팅과 정치컨설팅을 비교해보자. 예를 들어 휴대폰 시장을 보면 점유율 1위 애플 아이폰도 살아남지만 2위 삼성 갤럭시도 살아남는다. 하지만 선거에서 2등은 의미가 없다. 메이저 컨설팅회사에서도 낙선자가 수두룩하다. 정치컨설팅 자체가 부담스러운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어 “컨설팅 난이도 면에서도 정치컨설팅은 매우 어려운 편이다. 상업마케팅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콘티만 잘 짜면 그만이지만 정치컨설턴트들은 세간의 이슈와 후보자들의 논리를 적절하게 맞추는 기술이 요구된다. 고도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과거보다 정치컨설팅의 시장이 커졌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국내 정치컨설팅 회사는 대략 30여 개로 추산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큰 수익을 내고 있는 회사는 손에 꼽힌다. 선거철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없어지는 컨설팅 회사들도 수두룩하다.
이와 관련해 이재관 대표는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 얼마 전 모 정당의 PT가 있었는데 우리를 포함해 5개의 업체가 동시에 뛰어들었다. 사실 몇몇 메이저 업체들을 제외하고 군소 업체들의 경우 일정한 수익을 내기가 무척 어렵다. 국내 시장이 성장했다고는 하나 미국에 비하면 매우 협소하다. 선거라는 대목을 제외하고는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재술 대표 역시 “미국의 경우 선거철 이외에도 정치인들이 정치컨설턴트에게 자문을 받는다. 심지어 기업들까지도 정치적 상황이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정치컨설턴트를 찾는다. 아직까지 한국은 지식산업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분위기가 남아있다”며 한국 시장의 한계를 설명했다.
이처럼 외부에서 겪는 치열한 경쟁 외에도 컨설턴트들은 의뢰한 후보자들의 캠프와 수많은 충돌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재술 대표는 이와 관련해 “캠프 인사들과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무척 많이 싸운다. 물론 그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우리가 전략기획을 수립해줘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의사의 처방을 받아들이지 않는 환자의 경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도리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선거는 흔히 ‘바람’이라고 표현된다. 바람은 어디에서 어디로 불지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의 ‘알파독’들은 그 바람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무모한 도전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얼마 남지 않은 4·11 총선 정국에서 작전에 돌입한 그들의 행보가 총선을 즐기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