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상담 15년의 신화’를 내세우던 오 씨는 1995년 서울 강남권에 ‘SKY 21’이라는 대학 입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입시 컨설팅을 시작했다. 당시 오 씨의 회사는 학원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근근이 입시 컨설팅업을 해오던 오 씨는 중·고등학교 졸업식장을 찾아다녔다. 졸업앨범에 기록된 개인정보를 수집·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정보를 입수한 오 씨는 이후 꾸준히 고객을 관리해 오며 입시철을 앞두고 학부모들에게 접근했다. 심지어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의 부모에게는 “나중에 입시는 내가 책임질 테니, 자녀는 공부만 잘 시키고 있어라”며 고객 관리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조사 결과 오 씨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서류에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6만 5000여 명의 개인 정보가 담겨져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오 씨는 주로 자신의 입시 상담 경력을 앞세워 학부모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학부모들이 수시나 특별 입시 전형에 대해서는 지식이 전무하다는 점을 이용했다. 오 씨가 학부모들에게 제안한 입학 방식은 바로 ‘특별전형’과 ‘기부입학’이었다. 오 씨는 피해자들에게 “사립대학에는 사외이사가 있는데 그 사람들을 통하면 등록하지 않는 학생 대신 합격시켜줄 수 있다”고 속였다.
올해 딸이 대학에 합격한 줄 알고 입학식에 참석했다가 딸의 이름이 없는 것을 안 서 아무개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12월 초 오 씨는 서 씨에게 “A 씨 소개로 전화했다. 서울에서 입시컨설팅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시켜 줄 수 있다”며 솔깃한 제안을 했다. 처음 서 씨는 오 씨의 허무맹랑한 제안에 의심했지만 강남에서만 입시 상담을 15년 넘게 해 온 오 씨의 현란한 말솜씨에 이내 속아 넘어갔다. 경찰조사에서 서 씨는 “딸 아이가 고3 수험생인데 수시전형 마감이 며칠 앞으로 다가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서 씨는 오 씨에게 대학 등록금 및 기부금 명목으로 약 1억 원을 송금했고, 약 한 달 뒤인 지난 1월 서 씨의 딸 A 양은 해당 대학으로부터 대학 합격자 증명서를 받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증명서는 오 씨가 포토샵으로 만든 가짜로 밝혀졌다. A 양은 입학식과 강의에 참석했지만 본인의 이름이 없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오 씨는 이처럼 학부모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대학 총장 명의의 합격증을 위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강의실 및 도서관 출입증을 위조해 주며 학부모들을 안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오 씨는 한꺼번에 유명 대학의 등록금을 동시에 받아 챙기기도 했다. 2006년 오 씨는 홍 아무개 씨에게 접근해 “서울대 의대, 고려대 의대, 경희대 한의대 등에 동시에 등록금을 예치해 놨다가 미등록자가 생기면 바로 입학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이후 오 씨는 위조된 임명장을 보여주며 자신을 고려대 사외이사로 속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홍 씨는 임명장과 오 씨의 언변에 속아 1억 5000만 원을 송금했다. 이듬해 초 홍 씨의 아들은 A 대학 번호로 찍힌 “OO대학교입니다.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습니다”라는 합격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와 함께 홍 씨의 아들은 합격 통지서도 받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오 씨가 꾸민 거짓이었다. 문자 메시지도, 합격 통지서도 모두 오 씨가 보낸 것이었다.
오 씨는 학부모들을 속이기 위해 학교 명의가 인쇄된 서류봉투를 만들어 마치 학교 공식 서류봉투인 것처럼 피해자들에게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오 씨는 이 서류를 학교우체국에서 보내는 치밀함도 보였다. 학교 소인이 찍힌 서류봉투를 받아 본 학부모들은 마치 학교에서 보낸 것으로 속았던 것이다.
오 씨는 사기 행각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강남, 송파 등 강남 일대를 돌며 수시로 사무실을 옮겨 다니는 치밀함도 보였다. 오 씨는 지난 2011년 2월에도 송파구에 ‘S 21’이라는 입시 컨설팅 회사를 차려놓고 최근까지도 사기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3월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회사 카페를 개설하고, 구직 사이트에 채용 공고를 내는 등 버젓이 회사를 운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5년부터 약 7년간 오 씨로부터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10명으로, 피해 금액은 총 2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오 씨 명의로 된 통장 입출금 내역을 조사한 결과 40~50명의 피해자가 더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피해자들 상당수는 신고를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씨가 노린 것이 학부모들의 이런 약점이었다. 부적절한 방법으로 입학을 의뢰한 피해자들이 쉽게 신고하지 못할 것이란 점을 악용한 것이다. 또 오 씨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대기업 간부, 자영업자 등 대부분 강남에 거주하는 부유층이라는 점도 신고를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추가 조사에 나설 텐데 ‘창피하다’ ‘모르는 일이다’며 신고를 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