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강성지지층 등에 업은 ‘좌표 찍기’ 비판…민주당 “뭐가 문제냐” “굳이 왜” 두 목소리
#검사 명단 공개 둘러싼 공방
12월 23일 민주당 홍보국은 ‘이 대표 관련 수사 서울중앙지검·수원지검 8개부(검사 60명)’라는 제목으로 검사 16명 실명과 사진을 실은 웹자보를 제작해서 SNS 등으로 배포했다. 여기에는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 16명의 실명과 직책, 얼굴이 담겼다. 또 △공직선거법 위반 △대장동·위례 개발사업 △쌍방울 변호사비 대납 △이 대표 아들 불법도박 △법인카드 유용 △성남 FC 후원금 의혹 등 각각의 검사들이 이 대표에 대한 어떤 수사를 맡았는지도 명시됐다.
12월 23일 박찬대 민주당 최고위원은 강원도 춘천시 강원도당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수사를 지휘하고 담당하는 검사들 대다수가 소위 윤석열 사단”이라며 “검사들은 저희 대표부터 시작해 다 수사를 하는데, 저희라고 수사한 사람들 이름 밝히면 안되냐”고 반문하며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10여 명의 실명도 직접 거론했다.
검사 실명 공개는 앞서 12월 21일 검찰이 성남 FC 후원금 의혹 관련해 이재명 대표한테 12월 28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통보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12월 22일 이 대표는 경북 안동 중앙신시장에서 ‘경청투어’를 하며 진행한 즉석연설에서 “대장동을 가지고 몇 년 가까이 탈탈 털어대더니 이제는 무혐의 결정이 났던, 성남 FC 광고를 가지고 저를 소환하겠다고 한다”며 “저와 제 주변을 털고 있는 검찰 숫자가 60명에, 파견검사까지 더해 70명도 넘는 것 같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간 계속 털고 있다. 대장동 특검을 하자고 대선 때부터 요구하니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거부했다. 이렇게 조작하려고 특검을 거부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검사 실명을 공개한 것에 대해 정가에선 여러 관측이 나온다. 우선, 이 대표가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놓고 민주당 지지층이 분열될 조짐을 보이자 그 대응책으로 꺼냈다는 게 중론이다. 동시에 검찰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도 읽힌다. 유력 차기 주자이자 1야당 대표 수사는 검찰로서도 부담이다. 혐의를 입증하는 데 실패할 경우 거센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명단 공개를 밀어붙인 이 대표 측에서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는 등의 구호들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이 대표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눈길을 모은다. 개딸은 정치인 팬덤 중에서도 열성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민주당 의원들이 이 대표를 비판했다가 개딸들 항의에 곤욕을 치렀다는 사례는 한 두 번이 아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문자가 수만 통 오고, 의원실로 전화가 하루 종일 온다.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검사 실명 공개를 비명계 진영에서 이 대표 비토 기류가 강하게 퍼지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검사 실명 공개를 놓고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 비명 진영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비명계 5선 중진인 이상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는 반헌법적이고 반법치주의적 행위다. 검찰권도 준사법권으로서 권력의 압박뿐만 아니라 여론의 압력으로부터 차단되고 그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며 “민주당의 일부 기구 행위라 할지라도 매우 몰상식적이고 지극히 위험스럽고 이성을 잃은 행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존중을 제1가치로 삼는 민주당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그 배포를 거둬들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12월 26일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MBC ‘김종배 시선집중’에서 “누가 수사 검사이고 누가 지휘부인지는 다 알고 있는, 비밀이 아니잖나. 그것이 무슨 좌표찍기인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굳이 그 이름들이 종합적으로 다시 정리돼 나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비명계 의원실 한 보좌진은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민주당이 이 대표와 한몸으로 가는 건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중에 이 대표만 꼬리자르기 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검찰에서 제대로 된 물증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민주당에서 공개적으로 이 대표를 향해 비토하기란 쉽지 않다. 이 대표가 내후년 총선 공천권을 갖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최초 공개된 웹자보가 잘못된 신상 정보를 공개한 것을 두고도 지적이 나온다. 12월 25일 웹자보 속 이상현 부장검사 사진은 서울중앙지검 성상헌 1차장검사 사진인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당은 해당 오류를 언론을 통해 파악하자 웹자보를 게시판에서 삭제했다가 수정해서 12월 26일 오전 다시 올렸다. 이에 대해 박찬대 최고위원은 “유감을 표하며 수정된 자료로 다시 배포한다”며 “앞으로 더 신중히, 하지만 검사들 정보를 공개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내에서도 소속과 이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에서 압박해온다고 서두르다 보니까 어설픈 실수가 나온 것”이라며 “당내 분위기는 반반이다. 특검 열리면 수사팀 다 노출되는 것처럼 공개해야 된다고 하는 측과 좌표찍기로 강성지지층을 통해 검찰 압박하는 꼼수밖에 더 되냐는 반대 측이 대립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좌표찍기’ 논란
김의겸 민주당 의원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이어 또다시 검사 실명 공개를 두고 맞붙었다. 12월 26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수사 검사 명단 공개’에 대해 “이재명 대표 수사는 개인의 형사 문제다. 개인의 문제를 모면해 보려고 공당의 공식 조직을 동원해 적법하게 직무를 수행 중인 공직자들의 좌표를 찍고 조리돌림 당하도록 공개적으로 선동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장관은 김의겸 의원이 논평에서 ‘이 수사와 그 검사들의 어두운 역사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진짜 그런 말을 했느냐”며 반문했다. 이어 한 장관은 “역사에 남을 것이란 말은 동의하며 다른 의미에서 동의한다”며 “다수당의 힘을 이용해서 적법하게 공무를 수행 중인 공직자들을 좌표 찍고 조리돌림 하도록 공개적으로 선동하며 법치주의를 훼손하려는 그것이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27일 김의겸 의원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동훈 장관을 향해 “16명의 이름을 공개한 것 가지고 너무 과하게 반응을 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법적으로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하는 언론사의 기자들도 자기 이름과 얼굴을 내걸고 기사를 쓰고 있다. 자기가 쓴 기사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는 대외적인 공표”라며 “언론사 기자도 그렇게 하는데 국가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는 수사와 기소를 하는 검사가 자기 이름과 얼굴 하나 공개되는 게 무슨 그렇게 큰일이라고 소란을 피우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간 민주당은 ‘좌표찍기’ 논란에 여러 차례 휩싸인 바 있다. 그때마다 강경 지지층은 좌표가 찍힌 인사들을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친명계 의원실 한 보좌진은 “당내에는 방송에 출연해서 이재명 대표를 보호하고, 공개적으로 당론에 맞춰 목소리를 내거나 뭐라도 활동을 해야 공천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그동안 민주당에서 좌표찍기 논란이 불거진 것도 그 궤를 같이 한다. 강성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고 더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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