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계와 대립 등으로 가결 점쳐졌지만 표결 앞두고 ‘동정론’ 빠르게 확산
#한동훈 피의사실 공표 논란
12월 2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뇌물수수·불법 정치자금 위반 혐의를 받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해 무기명 투표를 진행했다. 표결 결과 가결 101표, 부결 161표, 기권 9표로 부결됐다.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169석) 의원들이 대거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6석)이 체포동의안 찬성 표결을 당론으로 정했던 것을 감안하면 국민의힘(115석)에서도 부결 또는 기권이 나온 셈이다.
정가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방탄’을 위한 전초전 성격으로 민주당이 체포동의안을 부결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12월 28일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명방위 훈련’이 국회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됐다”며 “이재명 예행연습. 실전은 걱정 안 해도 될 듯”이라고 꼬집었다. 21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노 의원이 처음이다. 앞서 정정순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과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 체포동의안은 모두 가결됐다. 2022년 대선 기간 이재명 당시 후보는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 특권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표결에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수사 중 나온 증거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가결을 요청하기도 했다. 12월 28일 한 장관은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요청 이유를 설명하면서 “노웅래 의원이 청탁을 받고, 돈을 받는 현장이 고스란히 녹음된 파일이 있다”며 “구체적인 청탁을 주고받은 뒤 돈을 받으면서 ‘저번에 주셨는데 뭘 또 주냐, 저번에 그거 제가 잘 쓰고 있는데’라는 목소리, 돈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도 그대로 녹음돼 있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그 밖에도 ‘귀하게 쓸게요, 고맙습니다, 공감 정치로 보답하렵니다’라는 노 의원의 문자도 있고, ‘저번에 도와주셔서 잘 저걸 했는데 또 도와주느냐’는 노 의원의 목소리가 녹음된 통화 녹음파일도 있고, 청탁받은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노 의원의 문자도 있고, 청탁받은 내용이 적힌 노 의원의 자필 메모와 보좌진의 업무 수첩도 있으며, 공공기관에 국정의정시스템을 이용해 청탁 내용을 질의하고 회신하는 내역까지 있다”고 검찰에서 확보한 물증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한 장관에 이어 연단에 오른 노웅래 의원은 신상 발언을 통해 “한 장관이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얘기했는데, 그렇게 차고 넘치면 왜 조사 과정에서 묻지도 제시하지도 확인하지도 않았느냐”며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갑자기 ‘녹취가 있다, 뭐가 있다’고 하는 것은 방어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앞서 12월 6일 노 의원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었다.
노 의원은 “더구나 한 장관은 개별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지 않는다고 얘기하지 않았느냐”며 “그런데 국회 표결에 영향을 미치려고 구체적으로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말하는 것, 이런 정치검찰의 수사를 믿을 수 있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한 장관이 언급한 녹취 내용에 대해서는 “몰래 두고 간 돈을 행정 비서가 퀵서비스를 통해서 돌려보냈다”며 “돈 줬다는 사람도 돌려받았다고 하는 것인데 녹취가 있다며 새로운 내용으로 부풀려서 언론플레이로 사실 조작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 의원은 자택에서 나왔다는 돈다발에 대해선 “검찰은 봉투째 든 돈을 모두 꺼내 돈다발을 만들었다. 증거 사진이 그대로 있다. 한마디로 검찰이 만든 작품”이라며 “의례적인 인사로 고맙다고 한 것이 돈을 받은 것이냐. 제 말을 고의적으로, 악질적으로 왜곡시켰다”고 했다.
민주당은 한동훈 장관 발언이 피의사실공표 및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찬대 민주당 최고위원은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설명 자체가 너무 부적절한 것 같다. 장관은 개별사건에 대한 구체적 보고를 듣거나 수사에 개입하지 못하게 돼 있지 않나”라며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한 장관의 저런 제안설명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정도가 아니라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라고 비판했다.
12월 29일 법무부는 입장문을 통해 민주당 주장을 반박했다. 법무부는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 여부와 관계없이 과거 70여 년간 계속해 개별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아왔다. 현행법 체계와 거리가 먼, 전혀 사실과 다른 거짓 주장”이라며 “적법한 보고 절차에 따라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전 표결의 근거자료로서 범죄 혐의와 증거 관계를 사실대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의 당연한 임무”라고 했다.
12월 30일 한동훈 장관은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 출근길에서 피의사실 공표 논란 관련 질문에 대해 “설명이 과한 게 아니라 오히려 부족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정부를 대표해 법률에 따라 설명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어 한 장관은 민주당을 겨냥해 “어차피 다수당이 힘으로 부결시킬 테니 상세하게 설명하지 말고 대충대충 설렁설렁하고 넘어가자는 말씀 같은데,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직자가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법무부 장관이 수사 검사처럼 증거를 들이밀며 이야기하는 건 국회와 해당 의원을 폄훼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재판에서 다퉈야 할 사안을 국회에서 유무죄를 가리겠다는 건 적절치 못한 언행”이라며 “민주당 대척점에 서 있는 한동훈 장관이 정치인 행보 중인 것이다.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야당 의원을 저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웅래 향한 미묘한 시선
2022년 11월 11일 노웅래 의원이 임기를 7개월여 남기고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원장에서 사의를 표명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노 의원은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로부터 ‘수박’이라 불리며 민주연구원장 사퇴 압박을 받았다. 민주연구원이 친명계와 대립각을 세우는 행보를 보였다는 이유에서였다. 민주연구원이 발간한 ‘6·1 지방선거 평가보고서’에서 이 대표의 보궐선거 출마를 지방선거 패배 요인 중 하나로 지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대표가 8월 취임하면서 민주연구원장 교체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 대표는 취임 직후 곧바로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복심인 김용 부원장,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지냈던 현근택 부원장 등 측근 인사들을 임명하면서 교체설에 힘을 실었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일 소셜미디어(SNS)에 “이태원 참사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 탓”이라고 적어 논란을 일으킨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이 대표가 임명했다. 노 원장은 부적절한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킨 남 부원장을 해촉해야 된다고 당 지도부에 전달했지만 거부당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친명계와의 반목은 고립으로 이어졌다. 11월 16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는 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노웅래 의원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과 지역구 사무실,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2020년 노 의원이 사업가 박 아무개 씨 측에게서 각종 청탁과 함께 5차례에 걸쳐 6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씨는 구속기소 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에게 각종 청탁과 함께 금품을 건넨 의혹도 받고 있다.
11월 17일 노웅래 의원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압수수색에 대해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겠다며 결백을 호소했다. 노 의원은 “단지 야당 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뤄진 정치보복, 기획수사, 공작수사다. 명백한 과잉 수사이고, 정당한 입법활동을 막고자 하는 검찰발 쿠데타”라며 “결백을 증명하는 데 모든 정치 생명을 걸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웅래 의원 호소에도 불구하고 동료 의원은 물론 당내 ‘정치탄압’ 대책을 총괄하는 ‘윤석열 정권 정치보복대책위원회’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노 의원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낸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간 민주당 지도부와 여러 의원이 이재명 대표 최측근 김용 부원장과 정진상 정무조정실장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방어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민주당은 11월 8~17일 사이 정 실장을 방어하는 입장문을 11차례나 냈다. 반면 노 의원 압수수색에 대해선 11월 17일 임오경 대변인의 ‘검찰의 정치탄압 수사에 민의의 전당이 멍들고 있다’라는 논평 한 건뿐이었다.
#일대일 호소에 당 기류 꿈틀
12월 12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는 노 의원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12월 13일 심리를 거쳐 검찰에 노 의원 체포동의 요구서를 송부했고, 법무부는 윤석열 대통령 재가를 거쳐 12월 15일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제출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체포동의안은 국회에 접수된 후 처음 열리는 본회의에 보고되고 나서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에 부쳐져야 한다.
민주당은 노웅래 의원 구속 영장 청구 및 체포동의안 제출을 두고 ‘야당 탄압’으로 규정했다. 12월 14일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검찰의 영장 청구는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 원칙에 반하는 과잉 청구로 노 의원의 방어권과 의정활동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은 윤석열 검찰의 노 의원에 대한 부당한 수사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논평을 냈다.
민주당은 체포동의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당론으로 정하진 않았다. 개별 의원 자유 투표로 방침을 정했다.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했지만, 12월 28일 국회 본회의 투표 결과만 본다면 물밑 논의를 거쳐 부결 방침을 결정한 뒤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12월 29일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을 군사 작전하듯 부결시켰다”며 “1년 내내 국회를 열어 두고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넘어올 때마다 부결시키겠다는 계산”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체포동의안 제출 직후만 하더라도 민주당 내에선 가결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방탄 국회라는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 친명계와의 관계 등 노 의원 입지는 좁아 보였다. 실제 한 친명 의원은 “일단 노 의원은 가결로 정리하고, 향후 이 대표 체포동의안 때 부결로 가는 편이 낫다는 얘기가 많았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노웅래 의원의 적극적인 호소가 먹혀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노 의원은 연일 기자회견을 열고서 검찰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또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압수수색도 위법하게 이뤄졌다며 11월 28일 준항고를 제기하기도 했다. 노 의원은 12월 13일 같은 당 의원들에게 결백하다고 친전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고 전해진다. 국민의힘에서조차 반란표가 나왔던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노웅래 의원 호소문을 보면 아직 유무죄를 판단하기 어렵다. 의원들은 비상시에 사용하려고 집에 현금을 둔다”며 “이걸 마치 범죄혐의라고 언론에 뿌리는 검찰 행태에 대해 동료 의원들 입장에선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의 친명 의원도 “표결을 앞두고 노 의원에 대한 동정론이 급격하게 퍼졌다. 한 장관이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피의사실을 밝힌 게 역효과가 났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귀띔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민주당 의원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노웅래 의원 방어권을 보장해줘야 된다고 생각해서 부결시켰다고 입을 모아서 이야기했다. 노 의원이 살아왔던 삶의 궤적을 보면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고 봤다고 한다. 본인이 검찰 수사나 소환에 불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응하겠다고 했다”며 “명확하게 범죄사실이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무죄 다툼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검찰이 친명계, 친문계 쪽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고 노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고 보는 건 과한 접근”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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