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후반기 복귀 목표 구슬땀…양의지 두산 왕조 재건 약속…정철원 “2년 차 징크스는 없다”
#재도약을 노리는 류현진
1987년생 선수들은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와 성적을 지탱해 온 '황금 세대' 중 하나다. 류현진(35·토론토 블루제이스)은 그중에서도 단연 대표주자로 꼽힌다. 올해 메이저리그(MLB) 마운드에 복귀해야 하는 그에게 계묘년은 향후 선수 생활의 명운이 달린 한 해일 수도 있다. 류현진이 지난 12월 29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도 그래서다. 그는 평소보다 한 달 넘게 출국 일정을 당겼다. 날씨가 좋은 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재활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다.
류현진에게 올겨울은 절치부심의 시기다. 그는 해마다 한국에서 연말을 보낸 뒤 1월 제주도나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 강도를 올리다 미국으로 향하는 패턴을 유지해왔다. MLB 직장 폐쇄로 현지 훈련이 여의치 않았던 올해만 유일하게 3월 출국을 택했다. 그러나 강도 높은 재활 훈련이 필요한 이번 겨울에는 출국을 예년보다 앞당겼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두 명의 전담 트레이너와 함께 하루에 다섯 시간씩 주 6일 재활 훈련을 소화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이유가 있다. 류현진은 지난해 MLB 정규시즌 6경기에 등판해 2승, 평균자책점 5.67을 기록한 뒤 6월 중순 왼쪽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았다. 야구 인생의 네 번째 수술이었다. 토미존 서저리는 수술 시간은 짧지만, 재활에는 최소 1년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류현진은 이미 같은 수술을 이겨낸 전력이 있다. 동산고 2학년이던 2004년 토미존 서저리로 새 인대를 얻고 KBO리그 최고 투수로 성장했다. 다만 당시 그의 나이가 17세였다면, 이제는 30대 중반이다. 회복 후 전성기의 구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류현진은 비관적인 전망이 나올 때마다 긍정적인 결과를 들고 돌아왔다. 2015년엔 선수 생명이 걸린 왼쪽 어깨 관절와순 봉합 수술을 받고도 재기에 성공했다. 바늘구멍 같은 확률을 뚫고 성공적으로 복귀해 MLB 정상급 투수로 거듭났다.
이번에도 복귀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류현진은 출국 전 공항 인터뷰에서 "기초 재활은 거의 끝난 거 같다. 이제 단계별로 거리를 늘려가며 공을 던지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며 "따뜻한 곳에서 공을 던지려고 빨리 떠난다. 팀에서도 조금 일찍 들어와 주길 원했다. 미국에 도착하면 바로 훈련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남다른 의지도 표현했다. 그는 "항상 수술을 선택한 순간부터는 '다시 내가 마운드에 올라가서 경기에 나가야 한다'는 단 하나의 생각만 갖고 재활에 임한다"며 "일단 목표로 한 기간 안에 복귀하겠다는 생각으로 훈련할 것이다. 그 후에는 내가 잘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목표로 하는 복귀 시기는 후반기가 시작되는 7월이다. 류현진은 "수술했던 집도의가 정해준 일정을 잘 따른다면,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는 대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6월부터는 재활 경기를 하지 않을까"라며 "일단 7월만 보고 준비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힘들고 지루한 재활 훈련을 앞두고 있는 류현진에게 희망을 줄 만한 모범 사례도 있다. '금강불괴'로 불리는 베테랑 투수 저스틴 벌랜더(39·뉴욕 메츠)다. 벌랜더는 37세였던 2020년 9월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뒤 2021년을 통째로 쉬었다. 그리고 올해 복귀하자마자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18승 4패, 평균자책점 1.75을 기록했다.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도 받았다. 올 시즌 종료 후엔 2년 8660만 달러(약 1097억 원)를 받고 메츠로 이적했다. 내년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류현진에게는 벌랜더가 가장 완벽한 롤 모델이다.
토미존 서저리를 통한 구속 증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류현진의 직구 평균 시속은 2019년 145.9㎞, 2020년 144.4㎞, 2021년 144.6㎞, 올해 143.6㎞로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토미존 서저리를 성공적으로 마친 투수의 경우 평균 구속이 시속 3㎞ 안팎으로 증가하는 사례가 종종 나왔다. 벌랜더 역시 올해 시속 153㎞의 강속구를 던지면서 구속 그래프를 다시 상승 곡선으로 바꿔놨다. 류현진의 계묘년은 이제 시작이다.
#두산과 다시 만난 양의지
두산 베어스 양의지도 1987년생을 대표하는 토끼띠 스타다. 그는 36세가 된 계묘년에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NC 다이노스와의 4년 FA 계약이 끝나고 다시 FA 자격을 얻은 지난 11월, 두산과 4+2년 최대 152억 원에 계약했다. 4년 동안 110억 원(계약금 44억 원·연봉 총 66억 원)을 받고, 2026시즌 종료 뒤 양의지가 2년 최대 42억 원의 계약 연장 여부를 택할 수 있는 조건이다.
시장이 떠들썩했던 이적이다. 현역 최고의 포수 양의지는 2006년 두산에 입단한 뒤 공수를 겸비한 현역 최고의 포수로 성장했다. 첫 번째 FA 자격을 얻은 2018년 12월 NC와 4년 총액 125억 원에 사인해 처음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후 계약기간 4년 동안 타율 0.322, 홈런 103개, 397타점을 올리며 특급 대우에 걸맞은 성적을 올렸다. 특히 2020년에는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면서 NC를 창단 첫 통합 우승으로 이끈 주역으로 활약했다.
양의지가 없는 4년을 두고 두고 아쉬워했던 박정원 두산 구단주는 FA 시장이 열리자마자 팔을 걷어붙였다. 양의지와의 계약이 발표되기 하루 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친구 공개'로 이승엽 신임 감독, 양의지와 함께 식사하는 사진을 올렸다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을 정도다. 그 사진을 찍을 당시만 해도 "계약을 고민하고 있었다"는 양의지는 곧 두산 복귀를 공식화했다. 2018년 12월 양의지에게 120억 원(옵션 10억 원 포함)을 제안하고도 125억 원을 안긴 NC에 밀렸던 두산은 4년 만에 그 아쉬움을 털어냈다.
친정팀에서 야구 인생의 또 다른 페이지를 열게 된 양의지는 이제 두산에서의 남은 계약 기간 동안 다시 한 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는 게 새로운 목표다. 그는 계약 후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 두산 후배가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는 걸 꼭 보고 싶다. 내가 또 다시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는 것보다 그 모습이 더 이상적일 것 같다"고 했다.
양의지는 NC에서도 창원팬들의 사랑을 유독 많이 받았던 선수다. NC 잔류와 두산 복귀를 놓고 깊은 고민을 했다. 그는 "NC도 내게 좋은 제안을 해주셨다. 여러 상황이 두산 쪽으로 마음을 기울게 했을 뿐"이라며 "NC에 있을 때 가족이 모두 창원으로 가서 지냈는데 아파트 주민들께서 우리 가족을 정말 따듯하게 대해주셨다. 4년 동안 정말 많이 응원해주신 NC 팬들께도 죄송하다"고 털어놨다.
물론 다시 만나게 된 두산팬들의 환대에 보답하겠다는 마음도 품었다. 그는 "이전에 내가 두산과 NC에서 보여드렸던 것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4년 전 두산을 떠나면서 느꼈던 죄송한 마음까지 더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벌써 두산 팬들의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다.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두산의 계묘년은 KBO리그 역대 최고 홈런 타자인 이승엽 감독과 역대 최고 포수 자리를 예약한 양의지의 만남만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양의지는 "나에게도 이승엽 감독님과 함께 뛰는 건 엄청난 영광이다. 한국 야구의 레전드였던 이승엽 감독님이 지도자로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게, 경기장 안팎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고 했다. 또 "프로 생활을 시작한 두산에서 마흔이 넘을 때까지 선수로 뛸 수 있게 된 건, 개인 성적은 물론이고 두산 후배들의 길잡이 역할까지 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모범적인 선배가 되겠다. 그리고 꼭 두산 왕조를 재건하겠다"고 했다.
류현진과 양의지 외에도 1987년생 동갑인 KT 위즈 황재균, 키움 히어로즈 원종현, 롯데 자이언츠 차우찬 등이 대망의 토끼띠 해를 맞게 됐다. 황재균은 걸그룹 티아라의 지연과 연말 결혼한 뒤 가장으로서 첫 시즌을 보내게 된다. 지난해 말 이미 KT와 4년 총액 60억 원에 계약을 마친 뒤라 편한 마음으로 계약 후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할 수 있다. 원종현은 데뷔 후부터 줄곧 몸담았던 NC를 떠나 키움과 4년 25억 원에 FA 계약을 했다. '대박' 계약은 아니지만, 옵션 없이 전액을 보장 받아 가치를 인정 받았다. 젊은 선수가 많은 키움에서 베테랑 불펜 투수의 진가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차우찬은 LG 트윈스를 떠나 롯데에 새 둥지를 틀었다. 삼성 라이온즈와 LG에서 KBO리그 정상급 왼손 선발 투수로 활약했던 그는 최근 3년간 부상에 시달리면서 도합 7승을 올리는 데 그쳐 시즌 후 방출됐다. 새 소속팀에서 다시 한번 재기의 불꽃을 태울 기회를 얻었다.
#신인왕 정철원의 두 번째 시즌
입단 5년 차가 되는 두산 정철원은 1999년생 토끼띠다. 동갑내기 친구 강백호(KT 위즈)가 2018년 KBO리그 최우수 신인선수(신인상) 트로피를 받을 때, 퓨처스리그(2군) 4경기에 등판한 성적표를 들고 TV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현역 포병으로 군복무까지 마치고 돌아온 뒤 비로소 날개를 달았다. 2021년 6월 전역 후 2군에서 3승(1패)에 평균자책점 2.38을 기록하면서 존재감을 알렸고, 2022년 5월 처음으로 1군 마운드를 밟은 뒤 두산의 핵심 불펜으로 자리잡았다. 입대 전 구속이 시속 140㎞대에 머물던 그가 어느덧 시속 150㎞를 웃도는 강속구를 던지게 된 덕이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58경기에서 승부처마다 마운드에 오르며 활약한 결과는 4승 3패 3세이브 23홀드, 평균자책점 3.10. KBO리그 데뷔 시즌 최다 홀드 신기록까지 갈아치웠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끝내 '남의 떡'으로 여겼던 신인상 트로피까지 거머쥐었다. 두산이 2010년의 양의지 이후 12년 만에 배출한 신인왕이었다.
정철원은 "군대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덕에 반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불펜에서도 마운드에서 던질 힘을 아껴놓는 편"이라며 "신인왕 경쟁 상대인 김인환(한화 이글스) 형 덕에 나도 분발해서 더 열심히 했다. 끝까지 아프지 않고 완주를 목표로 열심히 하다 보니 좋은 상이 따라왔다"고 했다. 또 "2군에서 고생하는 선수들에게 '정철원도 하는데 너희가 못할 게 뭐 있냐'는 말을 해주고 싶다"면서 "새로운 시즌엔 홀드왕과 세이브왕 중 하나는 가져오겠다. 더 길게 보면 학교(안산공고) 선배인 김광현(SSG 랜더스) 형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숨기지 않았다.
계묘년은 토끼띠 정철원이 신인왕 수상 후 맞이하는 첫 시즌이다. 2년 차 징크스를 떨쳐내고 '롱런'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2023년에도 데뷔 시즌 못지 않은 활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승엽 신임 감독도 정철원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아무리 던져도 다치지 않고, 안타나 홈런을 맞더라도 자신 있게 자기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 단계 도약하는 시즌을 앞두고 '띠동갑'인 현역 최고 포수 양의지와 새로 호흡을 맞추게 된 건 정철원에게 새해 선물일 수 있다. 그는 "양의지 선배는 리그 최고의 포수니까 글러브만 보고 던질 생각"이라고 무한한 믿음을 표현했다. 물론 "신인인 나를 잘 이끌어준 포수 박세혁 선배(NC로 이적)에게도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면서 "1년이긴 하지만 세혁이 형과 정말 잘 맞았다. 이제는 상대 편이 됐으니 그 볼배합과 반대로 던져서 (형을) 삼진으로 잡겠다"고 웃어 보였다.
정철원과 동갑인 1999년생 중엔 유독 강력한 투수가 많다. 2022년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평균자책점·탈삼진왕 안우진(키움), 35홀드로 홀드왕에 오른 2019년 신인왕 정우영(LG) 등이 그렇다. 안우진은 어느덧 명실상부한 KBO리그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오는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발탁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일 정도로 대형 투수가 됐다. 태극마크 성사 여부와는 별개로, 지난 시즌 아쉽게 준우승에 머문 키움의 한국시리즈 우승 염원을 이뤄줄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정우영도 염경엽 신임 감독과 함께 새출발하는 LG 불펜에서 변함없는 중심축 역할을 해내야 한다. LG 입장에선 정우영이 홀드왕을 2연패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지난 1년간 부상과 부진으로 고전해 '천재 타자'의 빛을 잃은 강백호, 은퇴한 베테랑 타자 이대호의 1순위 후계자로 꼽히는 한동희(롯데) 등이 토끼의 해를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을 준비를 하고 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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