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를 찍자’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4·11총선 인천시 옹진군 선관위 직원들이 투표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무소속은 춥고 배고프다. 당의 조직적 지원도 없다. 기호도 각 정당 후보들이 부여받은 다음 받기 때문에 대부분 뒤로 밀린다. 차라리 마지막 기호를 선호한다. ‘맨 뒷자리 찍어 달라’고 말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소속의 열정은 거대 정당 후보들 못지않다. 경선에 불복한 후보들의 경우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도 있지만, 소신 있고 경쟁력 있는 ‘무적부대’도 눈에 띈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는 전체 후보 927명 중 257명(27.7%)으로 2008년 총선 당시 127명보다 2배가량 늘었다. 과연 이번 총선에서 무소속 돌풍이 불지 ‘무적자들의 조용한 반란’을 따라가 봤다.
무소속으로 금배지를 따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정당공천을 받은 후보들이 사단급 지원을 받는다면 무소속은 이등병이 홀로 전투를 치르는 꼴이다. 여야 거대정당은 선거 노하우의 최대 집적소다. 간담회 등을 통해 어떻게 유권자를 동원하는지 그 방법을 잘 안다. 정당은 일종의 보증인이 되어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선거자금을 지원받지만 무소속 후보에게는 없다. 정당이 조직적으로 나서서 무소속 후보를 공격할 경우 ‘무적자’들은 일종의 무력감마저 느낀다.
역대 총선 결과를 보면 ‘무소속의 설움’은 어느 정도 확인이 된다. 김영삼 대통령 집권 때인 1996년 15대 총선에선 비교적 많은 16명이 당선됐고, 김대중 대통령 집권 때인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5명밖에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무소속 당선자는 겨우 2명에 그쳤고, 박근혜 의원의 대권주자 프리미엄이 붙었던 18대 총선에선 무려 25명이 당선됐다. 그렇다면 올해 총선은?
선거 전문가들은 올해도 무소속의 돌풍이 그리 쉽게 불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선거운동 초반 시점에서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무소속 후보는 친여 후보 2명, 친야 후보 4명 등 모두 6명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막판까지 더 선전한다면 10여 명까지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하지만 숫자가 적다고 해서 파괴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이들 ‘무적부대’가 박빙지역에서 확실한 ‘고춧가루 부대’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여야에도 비상이 걸리고 있다. 새누리당 측은 “영남을 중심으로 많게는 4~5곳”, 민주당 측은 “호남에서 3~4곳”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의 예상 의석수가 10여 석 차이에서 움직일 것이란 예측이 많은 상황에서 무소속의 선전 여부에 따라 큰 타격이 될 수도 있다.
먼저 새누리당은 낙동강벨트를 우려하고 있다. 친여성향 무소속 후보들이 약진할 경우 여권 표 잠식은 물론 낙동강 전선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선방식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부산 수영의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경우 유재중 새누리당, 민주당 허진호 후보 등과 경합 중인데 유 후보가 초반 성추문에 휘말리면서 박 전 수석의 강세가 예상되는 분위기다. 부산 진구갑은 무소속 정근 후보가 현역 의원인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과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의원을 지낸 민주당 김영춘 후보를 일부 여론조사에서 앞서기도 하는 등 선전을 펼치고 있다.
대구에선 공천 탈락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현역 의원들이 있다. 배영식 의원(중·남구)은 권력실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단일화를 이뤄 박 전 차관이 후보로 나서게 됐다. 새누리당 김희국 후보에 오랫동안 무소속 후보로 활동해온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이 강력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이명규 의원(북구갑)은 양명모 후보와의 단일화가 무산돼 표가 분산될 처지에 놓였다. 박종근 의원(달서갑)은 도이환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자리를 양보, 도 후보의 선전이 예상된다. 경남 진주을에서도 여론조사를 통해 야권·무소속 단일 후보로 이날 강갑중 후보가 최종 확정됨에 따라 재선의 김재경 새누리당 후보와 야권 무소속 후보 간 일 대 일 선거 구도가 짜여졌다. 경북 경주에서는 정수성 새누리당 의원이 무소속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을 상대하게 되는데 정종복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해 그 지지표 향배에 따라 결과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경북 고령·성주·칠곡의 경우 여성비하 논란으로 새누리당 공천장을 반납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석호익 후보가 새누리당 이완영 후보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북 포항 남·울릉의 정장식 후보도 새누리당 탈당파다.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지낸 이방호 전 의원도 ‘경남 사천남해하동’에 무소속으로 등록했다. 43세에 신한국당 사무총장을 지낸 5선의 강삼재 후보는 고향인 의령·함안·합천에 무소속으로 출마, 마지막 봉사를 다짐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소도시인 데다 유권자 수도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적기 때문에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바닥 정서를 다지면 거대정당 후보를 이길 수도 있다.
수도권에서는 무소속의 당선 가능성보다는 고춧가루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 중랑갑에는 새누리당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유정현 의원과 역시 민주통합당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이 있다. 당의 공천을 받은 새누리당 김정 의원과 민주통합당 서영교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각각 자당 출신 무소속 후보들로 인한 표 분산을 감수해야 한다. 서울 중랑을 진성호 의원, 경기 수원을 정미경 의원도 공천 탈락에 불복,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인천 남동갑에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이윤성 후보가 무소속으로 뛰고 있다.
무소속은 민주통합당에게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호남 텃밭 곳곳에서 무소속의 약진이 예상돼 선거대책위원회에 비상이 걸리고 있다. 민주당이 ‘호남 물갈이’를 공천 제1원칙으로 내걸었음에도 당을 박차고 나간 현역의 지지율이 만만찮은 것은 주민들의 ‘민주당 비토’ 기류를 그대로 방증한다는 분석이 있다.
공천 배제 방침에 반발해 민주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호남의 현역 의원은 조영택(광주 서갑), 김재균(광주 북을), 최인기(전남 나주-화순), 김충조(전남 여수갑), 신건(전북 전주 완산갑), 조배숙(전북 익산을) 등 6명. 유성엽 의원(전북 정읍)은 18대 총선에 이어 이번에도 무소속으로 민주당 후보와 경쟁을 벌인다. 경선 과정에서 선거운동원이 투신자살해 민주당 무공천 지역이 된 광주 동구에선 박주선 의원이 무소속으로 뛰고 있다. 조영택 최인기 의원이 무소속으로 반발했지만 예상 외 선전을 하고 있다. 최 의원은 17대 총선 때도 ‘탈당 후 무소속 출마’라는 수순을 밟아 당선됐다.
여야 각 당은 무소속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영남의 일부 무소속 후보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구미갑에 무소속으로 등록했던 김성조 의원이 지난 3월 28일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그 때문이다. 민주당은 3월 27일 박선숙 사무총장 명의로 시도당에 공문을 내려 보내 “민주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을 돕는 당원과 지방의원들은 제명하거나 출당 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소신 있는 무소속 출마자들이야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경선에 불복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금배지를 노리는 후보들의 경우 국민들이 냉정하게 심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