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
지난 3월 23일 롯데쇼핑 정기주주총회에서 처리된 안건 중 눈에 띄는 것 하나. 신영자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의 롯데쇼핑 사내이사 재선임이 그것이다. 이로써 신 이사장은 지난 2월 비록 롯데쇼핑 사장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40년여 몸담았던 롯데쇼핑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됐다.
롯데 측은 ‘예우 차원’이라고 하지만 이사로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경영에 참여 여지를 주는 셈이다. 이사회에 참석해 경영에 대한 의사를 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 이사장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녀이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누나라는 점, 롯데그룹 유통부문의 산 역사라고 할 만큼 오랫동안 롯데쇼핑의 중심축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신 이사장의 의사 표시는 롯데쇼핑 내 어느 누구도 허투루 보아 넘길 수 없다.
신 이사장이 롯데쇼핑 경영에서 물러날 당시 표면적인 이유는 ‘세대교체’다. 즉 ‘젊고 역동적인 조직’을 위해 스스로 물러났다는 얘기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재벌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과 무관치 않다.
▲ 신영자 이사장의 차녀 장선윤의 빵집 ‘포숑’. 임준선 기자 |
이 같은 사실이 신 이사장의 퇴진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딸과 사위의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 때맞춰 블리스도 베이커리사업에서 철수할 뜻을 밝혔으며 양 씨는 브이앤라이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당시 재계에서는 ‘롯데가 소나기만 피할 것’으로 내다보는 이가 적지 않았다. 논란이 사그라지기만 기다릴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빵집사업에서 철수하겠다던 블리스는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포숑’ 매장을 신규 오픈했으며 롯데백화점 분당점 포숑 매장을 리모델링해 다시 열었다. 이에 대해 블리스 측은 끝내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브이앤라이프도 당초 물티슈 사업에서 철수할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포이달’을 수입, 롯데마트를 통해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브이앤라이프 관계자는 “현재 롯데마트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최근 신세계 강남점에도 입점해 판매하고 있다”며 “현대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에도 조만간 입점할 계획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업 철수와 관련해서는 “물티슈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한 적 없다”며 “대표이사가 바뀌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양 씨가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으니 롯데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논리다.
이런 와중에 신 이사장이 롯데쇼핑 사내이사로 재선임된 것이다. 올 초 골목상권 침해로 비판받던 당시와 별달리 변한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롯데 측이 아무리 부인해도 사내이사는 경영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신사업 확장과 투자 결정 등 기업의 주요 사안에는 꼭 이사회 승인을 거쳐야 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사회는 주식회사의 최고 결정기구”라며 “이사회에 참석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기업 내에서는 종종 진흙탕 싸움도 일어날 만큼 등기이사는 누구나 탐내는 자리”라고 전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