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산 대사장애, 수포성 표피박리증,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 증후군. 주변에서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생소한 병명들 바로 희귀질환이다.
희귀질환에 대한 정의는 국가마다 다른데 우리나라는 유병인구가 2만 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경우를 희귀질환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7000~9000여 종의 희귀질환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국내에는 1165종이 등록되어 있고 현재 50만여 명의 환자들이 있다.
희귀질환자들은 육체적 고통 외에도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자가 드문 만큼 병에 대한 정보가 적고 진단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병인지 병명을 찾지 못해 전국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진단 방랑'을 겪기도 한다. 뒤늦게 병명을 찾아도 제대로 된 치료법이 없다는 또 다른 벽을 마주하게 된다. 희귀질환 중 치료제가 있는 병은 단 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의학계는 치료제 개발, 유전체 분석법 개선 등 희귀질환 정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희귀질환은 하나둘씩 치료법이 발견되거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수는 적지만 큰 고통을 안고 있는 희귀질환자들. 우리는 희귀질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희귀질환 치료는 어디까지 왔을까. 2023년 신년을 맞이해 희귀질환에 대해 조명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희귀질환은 질환에 대한 정보를 찾기 쉽지 않아 진단에 어려움이 따른다.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희귀질환 환자의 6.1%가 실제 증상 자각 후 진단까지 10년 이상이 걸렸고 16.4%는 네 개 이상의 병원을 거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희귀질환에 걸리면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일까. 얼굴, 팔다리 등 몸의 왼편이 오른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증상으로 고통받던 김홍미 씨 (44). 마흔 살이 되어서야 클리펠-트라우네이-베버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혈관 기형으로 인해 사지의 한쪽만 거대하게 자라는 10만 명 중 1명만이 걸리는 희귀질환. 생소한 병명이었지만 홍미 씨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병명을 찾으면 분명 치료도 가능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더. 얼마 지나지 않아 홍미 씨의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임상시험용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2년 전 갓 태어난 태경이의 목에 종양이 발견됐다. 신경이 있는 신체 어디에서나 종양이 발생할 수 있는 신경섬유종증 1형이라는 희귀질환. 종양이 생기는 부위에 따라 성장하는 태경이의 생명에 지장을 줄 수도 있지만 종양을 수술로 제거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20회 넘게 받은 태경이. 더 이상 수술은 무리라는 얘기까지 듣게 되었을 무렵 태경이는 신경섬유종에 효과를 보인 신약의 임상 연구 대상자로 포함되었다. 이제 태경이는 더 이상 죽음이 아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8월 20억 원에 달하는 치료제의 보험 적용이 화제가 되었다. 근육을 조절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원인인 척수성 근위축증의 치료제다. 병의 원인인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대체하는 이 약은 평생 1번 투여로 효과를 볼 수 있다. 건강 보험 적용 후 처음 신약 투여를 받은 주인공은 당시 생후 24개월이었던 서윤이. 그 후 5개월 만에 서윤이를 만날 수 있었다. 서윤이에겐 어떤 변화가 나타났을까.
김연숙 씨는 5년 전 자궁내막암과 유방암을 동시에 진단받았다. 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자신이 20만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한다는 희귀질환에 걸렸다는 결과였다. 피부와 점막에 비종양성 종괴를 발생시키는 PTEN 과오종 종양 증후군. 그런데 이 진단은 연숙 씨에겐 기회가 됐다.
향후 다른 암의 발생을 대비해 맞춤 검진으로 예방이 가능해진 것. 희귀질환 진단과 예방이 가능해진 것은 개인의 모든 유전자 서열 정보 즉 전장 유전체 분석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개인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질병의 조기 진단, 맞춤형 치료까지 시행하는 정밀 의료가 임상에 직접 적용되면서 희귀질환 치료는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세계 의학계는 아직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한 미진단 희귀질환자를 찾아내려는 노력 중이다. 미진단 희귀질환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질병의 기전과 치료의 단초를 찾아내고 있다. 희귀질환은 정말 극복할 수 있을까 오는 4일 밤 10시 KBS <생/로/병/사/의/비/밀>에서 고민해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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