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기 혼선 등 공직 기강해이 대응 목소리 높아져…정가에선 문재인 정부 인사 솎아내기에 활용 시선도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공약으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내걸었다. 취임하자마자 민정수석실을 없앴고 관련 업무 중 일부를 법무부, 국무총리실 등으로 이관했다. 대통령실 직원들의 감찰 및 조사는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일반 부처의 경우 총리실이 맡았다.
하지만 과거 민정수석실 체제에 비해 공무원 관리가 용이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정수석실에 근무했던 대통령실 관계자는 “총리실이 비위 첩보를 파악해서 각 부처로 내려 보내도 후속 조치가 지지부진한 일이 많았다. 민정수석실이 컨트롤타워로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몇몇 참모는 윤 대통령에게 민정수석실을 대체할 조직의 필요성을 수차례 거론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지진 못했다. 윤 대통령으로선 집권 첫해 대선 공약을 번복하는 모양새가 부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 검사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한 법조계 원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실 지침이 각 부처로 전달되는데 시간이 걸렸고, 전달되더라도 잘 시행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이 부분을 상당히 답답해했다고 한다. 제대로 일을 하려면 느슨한 공무원 조직부터 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높았고, 그러기 위해선 민정수석실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윤 대통령도 이에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공약 파기라는 비판이 걸림돌이었다.”
그러는 사이 공직사회에선 연이어 사고가 터졌다. 최근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을 둘러싼 군의 혼선이 대표적 사례다. 윤 대통령은 부실 대응, 후속 보고 과정 등을 종합했을 때 군의 기강 해이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책임규명을 위해 진상조사에 나선 상태다.
2022년 연말 윤 대통령이 노동자, 소년·소녀 가장 등에게 보낸 선물 중 일부가 수입산으로 드러나 논란이 빚어진 것도 민정수석실 신설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대통령실 내부에선 선물 구입 및 발송을 했던 행정안전부를 향한 비판이 나온 바 있다. 앞서의 대통령실 관계자는 “수입산 선물 사건은 관료사회에 대한 윤 대통령 인식이 강경하게 바뀐 계기”라고 말했다.
결국 대통령실은 공직감찰팀 신설 카드를 꺼냈다. 공직감찰팀은 윤 대통령 최측근이자 검사 출신인 이시원 비서관이 이끄는 공직기강비서관실 산하에 두기로 했다. 검찰과 경찰 등으로부터 직원을 파견 받아 일반 부처 및 공공기관 공무원들에 대한 비위 감찰․조사에 나설 예정으로 알려졌다. 단, 첩보 수집 기능은 뺄 것이 유력하다. 과거 민정수석실이 과도한 첩보 수집으로 도마에 올랐던 것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직감찰팀 신설은 관료사회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수입산 선물, 북한 무인기 침투 논란 등에서 나타났듯 공무원들의 연이은 실책이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 및 국정 운영 부담을 초래했다는 판단과도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실 또 다른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내세운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추진을 추진하기 위해선 국회의 협조와는 별개로 우선 정부부처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가 선행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길 희망한다”면서 “민정수석실 신설은 공무원들을 겁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공약 파기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직감찰실 신설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 정가에선 여러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우선 사정기관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 인사 솎아내기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앞서 국가정보원이 2012년 11~12월 사이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1~3급 인사들을 대거 바꾼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동안 여권에선 “지난 정권 때 발탁됐던 인사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고민이 계속 흘러 나왔다. 특히 검찰과 경찰 등 주요 사정기관을 두고는 더욱 그랬다. 최고위층에선 인사 교체가 이뤄졌지만 중간 간부급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지난 정권 성향을 띠고 있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불만들이 속출했다.
검찰 출신의 한 친윤계 의원은 “실무진에서 뭉개면 뾰족한 수가 없다. 요즘은 자기 직속상관 말도 안 듣는 세상인데 대통령실 지시가 통하겠느냐. 일부러 태업을 하는 공무원들이 있다고 들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검찰이나 경찰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실이 구체적인 건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지만 공무원 개개인이 정치 성향에 따라 윗선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정한 정권 교체는 공무원들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덧붙였다.
야권에선 공직감찰팀이 이른바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공공기관장 압박용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 민정수석실이 새로운 대통령 임기 초반 지난 정부에서 임명됐던 인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비위 첩보 수집·감찰 등을 진행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기관장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현 정부 출신 낙하산 인사가 임명되곤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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