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청년연대 등 청년학생단체가 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한 모든 사실을 공개하고, 관련자 사법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1일 <서울신문>은 ‘정부 인사에 대한 정보보고’ 문건을 단독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2009년 9월 중순경 연예인 기획사 비리사건 수사진행 중, 민정수석실 행정관과 단독 면담, 특정 연예인 명단과 함께 이들에 대한 비리 수사 하명 받고, 기존 연예인 비리 사건 수사와 별도로 단독으로 내사 진행’이라 명기돼 있다.
우선 경찰은 당시 연예기획사 비리 수사가 진행됐음은 인정했다. 2009년 8월 21일부터 10월 31일까지 모두 6개의 연예계 전담수사팀이 꾸려졌었다는 것. 당시 수사는 그해 3월에 불거진 ‘고 장자연 문건 파동’, 같은 해 6월에 터진 ‘신인 여가수 B 노예계약 사건’ 등이 계기가 됐다. 문제는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전담수사팀 경찰에게 특정 연예인 명단을 넘기며 내사 진행을 하명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부분을 경찰은 강력 부인하고 있다.
해당 문건에는 특정 연예인이라고만 밝혀져 있지만 그 대상이 김미화 김제동 윤도현 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제동과 윤도현의 소속사인 다음기획 대표는 실제로 당시 경찰로부터 비리 수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연예계 전반에 대한 수사이므로 당연히 다음기획도 수사 대상이 될 순 있다. 다만 당시 수사의 초점은 성상납, 술자리 접대 등을 강요받는 여자 연예인의 불공정 계약 행태와 관련된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소속 여자 연예인이 없는 다음기획이 수사 대상이 된 부분은 다소 의아하다. 게다가 이번 불법사찰 의혹은 이들의 방송 하차 외압설로도 연결되고 있다. 실제로 김제동은 2009년 10월 4년간 진행해온 KBS <도전 골든벨>에서 돌연 하차 통보를 받았다.
최근 김제동과 김미화는 국정원 직원을 직접 만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미화는 “2010년 중반쯤 국정원 직원이 두 번 찾아왔다. VIP(대통령)가 나를 못마땅해 한다더라”고 말했다. 또한 김제동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주년 추도식 전후(2010년 5월)에 만난 국정원 직원이 ‘VIP께서 걱정하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국정원은 유독 김미화와의 당시 접촉만 부인하며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혔다.
그렇지만 불거진 사안만 놓고 보면 불법사찰은 아니다. 경찰은 부인하고 있지만 실제로 민정수석실에서 문건 내용과 같은 ‘수사 하명’이 있었다면 이는 ‘표적 수사’ ‘수사 압력’ 등에 해당된다. 또한 김제동과 김미화의 주장처럼 국정원 직원을 만났다면(국정원은 김미화와의 만남 자체를 부인), 이를 당사자 몰래 비밀리에 이뤄지는 사찰로 보긴 힘들다. 다만 이런 직접적인 행위가 이뤄지기 이전에 이를 위한 해당 연예인에 대한 불법사찰이 있었을 가능성까지 배제할 순 없다.
요즘 김미화와 김제동처럼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내진 않았지만 당시 이들은 비교적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편이었다. 정부기관이 이들의 정치 성향, 가족 관계, 주변 인물 성향 분석, 향후 활동 계획 등에 대한 불법 사찰을 했으며 이에 따라 표적 수사를 지시하고 공중파 방송국에서의 프로그램 하차를 주도했을 수는 있다는 것. 그렇지만 아직 이런 불법 사찰에 대해서는 가능성만 제기되고 있을 뿐, 사찰 내용 등 구체적인 사안들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에 김제동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만약 사찰을 했고 그 자료가 있다면 불안하니까 나에게 달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정부기관 등을 통한 연예인에 대한 불법사찰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시작은 연예인보다는 그들과 연계된 정·관계 인사들의 사찰이었다. 정·관계 인사, 또는 재계 인사에 대한 사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연예인에 대한 사찰도 이뤄져 온 것. 이런 움직임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관련 정보 수집을 위해 국정원은 일선 연예부 기자나 연예기획사 대표 등과의 접촉도 자주 갖곤 한다. 기자 역시 국정원 직원을 만난 자리에서 “특정 기관 공무원이 연예인과 부적절한 만남을 갖고 있다는 얘길 들어봤냐?”는 질문을 받은 바 있다. 이렇게 국정원 등 정보를 다루는 공무원과 만났던 경험을 가진 연예부 기자와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꽤 많다.
공개적으로 국정원 개입 의혹이 드러난 경우도 있다. 고 장자연 문건 파문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최근 ‘손바닥TV’를 통해 제기된 것. 당시 문건에 방송국 관계자는 물론이고 언론계와 정·관계 인사의 이름이 여럿 적혀 있었다고 알려졌던 터라 국정원이 이를 파악하기 위해 나섰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이후 연예계가 급성장하면서 연예인과 연예기획사에 대한 자체적인 사찰도 종종 이뤄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나훈아 관련 악성 루머가 횡행할 당시나 서태지와 이지아의 비밀 결혼과 이혼 소송이 알려졌을 즈음에 국정원이 나훈아와 서태지, 이지아 등 관련 연예인을 둘러싼 정보 수집에 들어갔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수사기관에서도 연예계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에 연예인 관련 사건사고 관련 정보보고만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처럼 확보된 연예계 정보가 어떻게 쓰이느냐 하는 점이다. 기본적으로는 상부 보고용이지만 종종 외부로 흘러나가 ‘증권가 정보지’ 등에 실리기도 한다. 정부가 이렇게 확보된 연예계 정보를 여론 무마용으로 활용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도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