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공천 학살’ 탈당 도미노로…‘원심력보단 원팀’ 현재는 인물도 명분도 없단 지적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흑역사가 또다시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금씩 감지된다. 총선 공천권을 갖는 당대표 선거가 정책과 비전 경쟁이 아닌 친윤 여부만을 가리는 정체성 대결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당내 갈등 양상이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은 ‘헤어질 결심’이 재연될 것인가. 아니면 적절한 갈등관리를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인가. 집권세력 국민의힘이 시험대에 올랐다.
#MB 때 불 댕긴 분열의 악몽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을 앞둔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간신히 꺾고 대선 후보가 된 뒤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 전 대통령은 경선 결과를 보면 일반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를 이겼을 뿐, 당원투표에서는 졌다. 당내 기반이 박 후보에 비해 훨씬 약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부분이었다.
이에 이 전 대통령 측은 2008년 총선을 기점으로 당내 기반을 강화, 당심에서 밀리는 상황을 극복하려 했다. 2008년 초 공천기획단 발족부터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에 전운은 고조됐다. 기획단 내부에서 친이계 숫자가 친박계보다 더 많아지면서 당내 균형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총선 직전인 2008년 3월초부터 친박계 의원들의 공천 탈락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기 시작했다. 거물인 김무성 당시 의원과 김기춘 의원의 공천 탈락 소식도 날아들었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최고위원까지 지낸 김무성 의원은 2008년 3월 1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공천 과정에서의 청와대 개입설을 제기하면서 “오늘 마음은 한나라당에 두고, 몸은 한나라당을 떠난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그의 탈당과 함께 당시 집권여당 분열은 본격화했다.
친박 계열 인사들이 한나라당을 연쇄적으로 떠났으나 총선이 이미 임박했기 때문에 새로운 정당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친박 계열 인사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정당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루트로 ‘친박 총선’을 치렀다. 일부는 ‘참주인연합’이라는 기존 정당에 입당한 뒤 이 정당을 ‘친박연대’로 이름을 바꿨고, 나머지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친박 무소속 연대를 결성하는 방식으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다.
2008년 4월 9일 제18대 총선은 역대 대선 최다 득표차로 승리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도 안 돼 치러진 만큼 한나라당의 압승이 점쳐졌다. 실제 한나라당이 153석을 획득하면서 원내 제1당으로 부상하고,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81석을 얻는 데 그치면서 예측이 엇비슷하게 맞아떨어졌지만 의외의 결과물도 쏟아졌다.
보수성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는 충청권을 거점으로 삼은 자유선진당이 18석을 차지하고,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을 중심으로 한 친박연대가 14석을 획득, 이변을 낳은 것이다. 친이계 중심의 공천 파동을 낳은 한나라당 내부 분란의 결과물이었다.
주류 친이계의 구심력에 대항해 강력한 원심력을 만들어냈던 인물은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고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맞붙었던 박근혜 의원이었다. 비록 본인은 탈당하지 않고 한나라당에 남았지만 박 의원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공천 결과에 대해 강력 성토했다. 이어 “살아서 돌아오라”는 박 의원의 말을 들었다는 친박 의원들의 고백까지 잇따르자 ‘박근혜 바람’은 더욱 강력해졌다.
당시를 기억하는 국민의힘 친박계 한 전직 의원은 “총선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이 회동하는 등 화해 분위기가 일었고, 총선 직후인 2008년 7월 나갔던 친박 의원들이 복당돼 갈등은 일단락됐다”며 “그때 일방적 친박 학살 공천이 조금만 일찍 이뤄졌어도 당이 쪼개지면서 치명타를 맞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악 상황 부른 ‘진박 공천’
이명박 정부 때 당내 공천 갈등으로 인한 분란은 총선 직후 조기 봉합됐지만 박근혜 정부 때는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대통령 임기 초반부터 대통령 중심의 주류 권력과 이에 맞서는 세력의 갈등이 시작되더니, 치유는커녕 다툼의 상처가 악화하는 추세로 나간 것이다.
2016년 제20대 총선을 2년 앞둔 2014년 여름.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당대표로 당선된 김무성 의원을 밀지 않고 낙선한 서청원 의원 쪽에 서는 모습을 보였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던 자신의 당내 장악력을 과신한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풀이했다.
현직 대통령의 힘을 밀어내고 당대표가 된 김무성 당시 대표는 2016년 총선 관련해 상향식 공천을 들고 나왔지만, 당 내부 권력의 중심에 있던 박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전언이다. 생각을 굳힌 박 대통령은 측근인 이한구 전 의원을 공직자후보추천관리위원장으로 내세워 “진짜 친박만 가려내겠다”는 소위 ‘진박 공천’에 나섰다.
2015년 원내대표 재임 당시 국회법 개정 파동 등으로 대통령 뜻을 거스른다는 비판에 휩싸이며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던 유승민 전 의원부터 불똥이 날아들었다. 유 전 의원은 대구 동구을 지역구에서 높은 지명도를 올리는 현역 의원이었지만 공천 도장이 찍히지 않았고, 유 전 의원과 가깝다고 알려진 여러 의원들도 공천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에 김무성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당헌·당규에 의해 공정한 공천이 이루어지지 않은 6개 지역구의 후보들에게 공천 승인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뒤 그의 부산 지역구로 잠행, 이른바 ‘옥새 들고 나르샤’ 파문까지 생겨났다. 공천 파문이 심각해면서 유승민 전 의원을 비롯해 현재 국민의힘 원내대표인 주호영 의원 등이 새누리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야권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으로 분열된 상태여서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공천 파동을 겪은 정당에 국민들은 당근 대신 채찍을 들었다.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으면서 목표 의석 수 180석에 한참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1당 지위마저 민주당에 내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유승민 주호영 등 탈당한 의원들이 총선 뒤 복당됐지만 수년간 이어진 감정의 골로 인한 분란의 불씨는 쉽게 제거되지 않았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해 연말 탄핵소추되자 유승민 의원 등을 중심으로 33명의 의원들이 새누리당을 대거 탈당한 뒤 2017년 초 바른정당을 창당, 보수정당은 둘로 쪼개졌다.
“유승민 김무성 주호영 의원 등 진박 공천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줄줄이 탈당 대열에 서 바른정당을 만들면서 보수정당이 크게 분열했다. 진박 줄세우기가 당대표 선거, 국회의원 공천까지 이어지면서 갈등의 불씨를 키웠고 탄핵이라는 급작스런 권력 공백으로 당내 제어 기능이 상실되자, 이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는 결과를 가져온 보수정당의 대분열이 일어났다.” 바른정당 당직자 출신의 한 인사는 단추를 한번 잘못 끼운 것이 얼마나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역사는 반복? 이번엔 다를까
전당대회 국면에 들어간 국민의힘은 요즘 ‘윤심’ 논란에 휩싸여있다. ‘친윤 맏형’ 권성동 의원이 갑자기 당대표 불출마를 선언하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한 차가운 태도로 짐작해볼 때, 윤석열 대통령이 윤심을 ‘김장연대’ 김기현 후보에 두고 있다는 기류가 당내에서 일반화된 것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보수정당의 과거 총선 직전 기억을 소환하면서 집권여당 주류 세력에 맞서 기존 경로를 전환해보려는 원심력의 출현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반윤’ 또는 비록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친윤 교정 세력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세력이 등장한다면 친윤에서 멀어진 나경원 전 의원, 친윤이라고 하기엔 접점이 적은 안철수 의원, 강한 반윤을 표방하는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연대하는 모양새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수도권에서 인지도가 높은 데다, 과거 전당대회를 볼 때 국민의힘 최대 지지층 밀집지역인 대구·경북(TK)에서도 일정 부분 득표를 올렸던 터라 세력 확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급격히 늘어난 젊은 청년 당원들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이준석 전 대표와 유 전 의원이 가까워 이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하지만 여당의 과거 분열 사례와 현재를 직결시키기에는 환경이 다르다는 분석도 많다. 무엇보다 주류 권력의 정점이자 여당 1호 당원인 윤 대통령에 대한 TK 등 정통 보수층 지지도가 탄탄하고, 제1야당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강도 높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여야 대치 국면에서 분열 없는 결집을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가 더 크다는 것이다.
더욱이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정상적 국정 수행이 어렵다는 공감대가 여당 지지자들에게 강하게 형성돼, 현상 타파를 위한 원팀 요구가 내년 총선 국면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기존 권력 경로를 뒤바꿀 만한 원심력을 만들어낼 에너지의 축적 명분이 부족하고, 명분이 설사 만들어진다 해도 원심력을 만들어낼 ‘간판스타’ 역시 드물다는 것이다.
과거 바른정당이 만들어졌을 때는 ‘탄핵 극복을 위한 보수 쇄신’이라는 명분이 있었고, 대통령 후보로 뛰어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거물도 존재, 원심력이 작용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딴판이라는 게 당 내부의 주류 의견이다.
국민의힘 한 다선 의원은 “과거 국민의힘이 집권하던 시절 내부에서 심하게 다퉜을 때는 야당이 분열돼있거나 우리가 국회 다수당인 웰빙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겉만 여당일 뿐 실제는 야당이라는 위기의식이 있다”며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내 주류와 겨뤘던 그룹이 패배한다 해도 과거 바른정당이 가출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사례를 경험했기 때문에 탈당·분당 등의 분열이 재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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