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과학수사팀. |
▲ 검찰이 수거한 증거품. |
피의자 오원춘 씨가 사건 장소에 머문 것은 지난 2011년 2월 이후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 각지를 돌며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왔던 오 씨는 수원 집 근처 인력사무소에서 지난해 3월과 10~11월경에 두어 번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인력사무소에 보관된 오 씨의 외국인등록증 사본에는 오 씨가 방문취업(H-2)자격으로 국내에 체류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9월 처음 국내에 입국한 오 씨는 지난해까지 모두 7~8번 정도 중국에 다녀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때마다 등록증을 갱신했던 오 씨는 올해 9월 3일까지 체류기간이 남아 있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던 오 씨는 공사장에서 ‘곰방’(흙이나 벽돌을 나르는 기구)을 졌다. 인력사무소 대표 A 씨는 당시 오 씨에 대해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다. 한국말도 잘했다”고 기억했다. 또 A 씨는 “다른 인력 사무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 듣기로 오 씨가 노임문제로 그쪽 사장과 다툼이 있었다고 하더라. 당시 사장은 근태가 불량한 오 씨에게 일감을 주기를 꺼려했는데 오 씨가 왜 일을 안 보내주냐고 따져 실랑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오 씨에게 접근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며 과거 오 씨의 일화를 설명했다. A 씨는 특히 “그 사장이 오 씨에게 ‘너 언젠가 크게 사고 치겠다’는 말을 했다”며 오 씨의 과거 행적을 귀띔했다.
현재 검·경 수사팀은 그동안 오 씨의 행적에 대해 파악하고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하지만 조용한 성격에 주변과 왕래가 많지 않았던 오 씨의 행적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러 사건 당일을 자세히 기억하는 주민들도 드물었다. 하지만 현장을 찾은 기자는 주민들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오 씨가 피해 여성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하기 위해 봉지를 사러 나간 시각이 당초 새벽 5시로 알려졌지만 주민들의 말은 달랐다. 주민 B 씨는 “오 씨가 봉지를 사기 위해 집 앞 가게에 갔다가 검은 봉지가 없어서 ○○마트에 갔는데, 그 시각은 저녁 12시 전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오 씨는 검찰 조사에서 피해자를 5시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사체를 유기하기 위해 봉지를 사러 나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민의 말처럼 오 씨가 저녁 12시 전에 봉지를 사러 갔다면 또 다른 추론이 가능해진다. 만약 살해 전에 봉지를 샀다면 오 씨의 범행은 우발적이 아닌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진행됐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4월 12일에는 검찰의 현장조사가 이뤄졌다. 검찰은 이날 오 씨의 집에서 여죄 부분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중점적으로 수거해 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경 모두 오 씨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좀처럼 여죄는 드러나지 않고 답답한 상황만이 전개되고 있다.
현장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오 씨의 집 주변에는 수많은 마을 주민들이 나와 구경을 했다. 구경꾼 중 한 사람이 “바로 옆에 집이 있는데 비명 소리도 못 들었냐”며 인근 지역민들을 다그치자 어디선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우리도 고통 속에 죄인처럼 살고 있다”며 항변하면서 잠시 소란이 일기도 했다.
사건현장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B 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그만 좀 하고 가라”고 소리쳤다. B 씨는 “기자들이 새벽이고 밤이고 찾아와 어떻게 된거냐고 묻는 통에 우리도 힘들다. 여기에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다 한마디씩 한다. 신고 안하고 뭐 했냐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목숨을 외면한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우리도 힘들다. 하지만 현장을 봐서 알겠지만 철문이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닫으면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뿐만 아니었다. 현장에서는 중국동포 및 조선족들과 지역민들 간에 갈등의 조짐도 감지됐다. 기자는 오 씨의 행적을 살피기 위해 평소 그가 즐겨 찾던 중국음식점을 찾았지만 별다른 얘기를 듣지 못했다. 사장은 “한 달에 한두 번 가게에 와서 양꼬치에 술 두어 잔을 먹고 갔다. 듣기로는 오 씨가 중국 내 몽골에서 왔다고 한다. 조용한 편이라 별로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늘 혼자 왔었다”고 말했다. 또 오 씨가 주로 찾던 조선족이 운영하는 술집 사장도 “오 씨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우리 가게에 온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을 못 믿고 외국인들은 자신들에게 피해가 미칠까봐 쉬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C 씨는 “이 동네를 싹 다 밀고 다시 만들지 않는 이상, 이 상처가 아물겠느냐”며 한탄했다. 이처럼 수원 여성 납치살해사건 현장은 제2, 제3의 피해자를 양산하며 악몽과 고통의 여진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