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왕 삼성 법무팀 사장(왼쪽), 홍석조 전 광주고검장 | ||
그래서인지 삼성은 지난 7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법무팀을 구조본에서 분리해 운영할 것임을 밝혔다. 구조본에서 나와 계열사 소속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삼성 주변에선 삼성물산 소속으로 들어갈 것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특정 계열사 산하에 편입될 경우 구조본 시절에 비해 외형적 위상은 약해지는 셈이다.
구조본의 3각편대 역할을 해온 재무팀 기획팀 홍보팀 중 재무팀과 기획팀이 축소되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지난해 ‘반 삼성’ 정서가 확산되면서 구조본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자 홍보팀과 법무팀이 불협화음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재계 전반에 퍼졌던 바 있다. 홍보팀의 상대적 위상 강화가 법무팀의 그룹 내 입지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삼성측의 최근 움직임을 지켜보는 다수 재계 인사들은 삼성이 법무팀을 강화시킬 가능성에 더 주목한다. 이건희 회장의 귀국 직후 이 회장과 삼성은 국민 앞에 고개 숙이는 보습을 보이며 사회환원 기금조성과 복지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에서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법무팀 규모에 대한 논란과 삼성차 채권단과의 소송 문제였다.
지난 7일 기자회견장에서 이학수 본부장은 “법무실이 비대해졌다는 지적이 있으나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경우 변호사가 1천 명이 넘는다”며 의연한 자세를 보였다. 이는 앞으로 삼성에 닥칠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인 법무팀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내부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삼성 에버랜드가 ‘비자발적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될 경우 에버랜드 소유의 삼성생명 주식을 대량 처분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이건희-이재용 승계구도와 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 이 같은 사태들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위해서라도 법무라인 약화를 상정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 이학수 부회장 | ||
일각에선 삼성 법무팀이 로펌 형태로 확장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소문대로 법무팀이 삼성물산 산하로 편입될 경우 삼성물산의 주력분야인 무역 부문을 다루면서 자연스레 해외업체들에 대한 법률 자문의 기회도 많아질 수 있다. 삼성그룹 내에서의 위상은 구조본 소속 시절보다 다소 약화될지 몰라도 국내외 업체들의 법률 자문을 담당하는 로펌 형태로 거듭나면서 성장을 꾀할 수도 있는 셈이다.
지난해 접촉설이 나돌았던 서울고검장 출신 인사에 대한 영입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인사는 사시 12회로 법무팀 이종왕 사장(17회)에 비해 검찰경력면에서 더 화려하다. 이학수 본부장이 변호사 1천 명을 보유한 GE를 예로 든 것과 관련해 변호사 숫자를 늘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삼성 법무팀의 변호사 수는 15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홍석조 전 광주고검장(사시 18회)의 행보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건희 회장의 사돈이자 홍석현 전 주미대사의 동생인 홍 전 고검장은 지난해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공개한 안기부 도청 녹취록에 ‘떡값 전달책’으로 등장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결국 수사당국이 떡값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해 면죄부를 받았지만 올 초 스스로 검사복을 벗었다.
삼성 법무팀 향후 운용과 홍 전 고검장의 행보를 관련 지어 해석하려는 호사가들의 기대(?)와는 달리 홍 전 고검장은 향후 자신의 행보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1~2년 정도 그냥 쉬고 싶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 법무팀이 외적 팽창을 시도할 경우 이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시선은 삼성측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삼성은 노무현 대통령 사시 동기인 이종왕 사장을 비롯해 공격적인 법조계 인사 영입으로 법무팀을 강화시키면서 ‘삼성공화국’론의 빌미를 제공했다. 계열사 산하로 편입시킨 뒤에도 법무팀의 양적 팽창이 계속될 경우 이에 대한 냉소적 여론이 끊이지 않을 수 있다.
최근 삼성측이 밝히는 ‘무료 법률 지원’ 방침은 법무팀에 대한 여론을 의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학수 본부장의 기자회견 다음날인 8일 삼성측은 향후 법무팀이 공익적 성격이 강한 법률봉사단을 만들어 무료 변론활동을 펼칠 것임을 밝혔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상대로 형사사건에 대한 무료변론 활동을 펼치면서 이미지 개선작업에 나설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팀의 무료변론 활동이 구체화돼서 “국선변호인들보다 낫다”는 평이라도 듣게 된다면 법무실 강화에 대한 비난여론을 희석시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될 경우 그동안 악화된 삼성그룹에 대한 정서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란 자체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