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신문은) 어느 사실을 사실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관련된 다각적이고 포괄적인 진실을 발굴해서 제공할 수 있다. 주간 저널리즘의 이상이요, 힘이요, 무기요, 생명이다. … 일요신문의 역할을 기대하고 싶다(박권상 칼럼, <일요신문>의 창간에 부쳐).”
꼭 20년 전인 1992년 4월 15일. 새로운 <일요신문>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신문의 절반, 읽기 쉽고 보기 편한 타블로이드 판형. 권력의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특종과 기획을 담아내 이례적으로 재판까지 찍으며 30만 부를 발행했다. <일요신문> 창간호부터 20호까지, 그때 그 시절을 추억했다.
1992년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총선과 대선이 한꺼번에 치러진 ‘정치의 해’. <일요신문> 창간호가 나온 시점은 3·24 14대 총선이 막 끝난 뒤였다. ‘민자 패배, 민주 승리, 국민 약진’으로 요약되는 총선 이후, 시민들의 눈은 이제 12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맞춰져 있었다.
<일요신문> 창간호는 ‘김영삼 김대중 역시 선두’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머리기사로 올렸다. 당선 가능성 38.6%로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1위를 차지, ‘YS 대세론’의 실체를 확인했다. 김대중 민주당 공동대표는 야권 후보로 1위에 올랐지만 당선 가능성에서는 11.1%로 YS에 한참이나 밀린 2위를 차지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차기 대통령 자질을 묻는 질문에 73.0%가 ‘경제 안정’을 택했지만 경제대통령을 자처,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정주영 국민당 대표 당선 가능성은 4.0%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일요신문>은 5호, 6호, 20호에 대선 관련 여론조사를 꾸준히 실으며 민심의 향배를 가늠했다. 또한 이종찬 신당, 김우중 신당 등 소용돌이치는 대선 경선정국의 맥을 짚었고 고비마다 DJ(10호, “전두환 관련 세 가지 비화”) 정주영(17호, “김우중 씨는 정당도 수의계약하려는가”) 등 대권주자를 직접 인터뷰해 속내를 들여다봤다.
<일요신문> 창간호 기사 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권정달 전 민정당 사무총장과 도영심 의원의 밀회”를 폭로한 권 전 총장 전 부인 용 아무개 씨의 고백인터뷰였다. 이에 대해 도 의원은 “친한 것은 사실이나 용 씨 주장은 억지”라고 반박했고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권 전 총장은 <일요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둘은 이듬해 결혼했다.
<일요신문> 창간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큰 사건은 성폭행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이른바 ‘보은 진관 사건’이었다. <일요신문>은 창간호에서 법정진술을 2면에 걸쳐 자세하게 실으며 충격적 사건의 전모를 전했다. 13호 항소심 지상중계에 이어 20호에서는 최후진술 전문을 게재했다. 여론은 들끓었고 항소심에서 김보은 씨는 집행유예, 김진관 씨는 징역 5년형을 받았다.
당시 재계의 가장 큰 이슈는 <일요신문>이 ‘6공 최대 이권사업 어디로 가나’(2호)에서 다루기 시작한 제2이동통신 사업이었다. 당시 4대그룹이 배제된 상태에서 선경 포항제철 코오롱 동양 등 6개 컨소시엄이 경쟁에 뛰어들었고 8월 선경그룹이 사업자로 선정되자 특혜 의혹이 일었다. 최종현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과 사돈이었기 때문. <일요신문> 20호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1.9% ‘특혜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정도였다. 최 회장은 결국 사업권을 반납했고 1994년 제2이동통신이 아니라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하며 통신업에 진출, 현 SK텔레콤을 일궜다.
부동산 쪽의 최대 관심사는 평촌 산본 분당 등 신도시였다. 1989년 수도권 5개 신도시건설계획이 확정되고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됐지만 문제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일요신문> 14호는 ‘인력난·자재난·자금난·교통난, 4대난 속 강행되는 6공 최대 졸작품’이라고 썼다. 분당의 첫 입주 아파트가 누수와 균열로 안전진단을 받고 출퇴근에 4~5시간이 걸리며 학교 등 기반시설도 변변찮은 등 총체적 난국. 15호에선 ‘신도시 교통특집’을 통해 통근시간 절약 방법을 짚을 정도였다. 지금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찬사를 받는 곳의 추억이 아련하다.
<일요신문>에는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기사가 많다. 9호에 실린 ‘5대그룹 사원 대우 살짝 비교해보니’가 대표적. 월급은 대졸 초임 남자 기준 대우그룹(㈜대우)이 59만 4000원(상여금 650~700%)으로 가장 많았다. 상여금은 800%의 삼성(삼성물산)이 가장 높았고, 승진은 럭키금성그룹이 대졸-대리 3년, 대리-과장 2년 등으로 가장 유리했다.
<일요신문> 3호에서는 ‘새로운 놀이문화공간’인 노래방 소개가 눈에 띈다. 1991년 12월 서울에 첫 선을 보인 이후 당시 300여 곳으로 늘어날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 중이었다. 노래방 이용료는 곡당 500원(입실료 30분 1000원)부터 입실료 없이 30분에 무조건 5000원 등 형태도 다양했다. 한편 그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고(3월) 미국에서 ‘LA 폭동’이 일어났다(4월). 8월엔 중국과 수교했고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