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5일 최시중 전 위원장이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인허가 문제와 관련, 시행사인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에 출두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권재진 법무장관(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등 현 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거물급 인사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MB가 서울시장 퇴임 직전인 지난 2006년 5월에 서울시가 도시계획위원회 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이시티에 대한 대규모 점포 건설을 허용하는 시설 변경을 승인했다는 점에서 사건 불똥이 MB에게까지 튈 조짐마저 일고 있다.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살아있는 권력 심장부를 정조준하고 있는 ‘파이시티 게이트’ 사건의 핵심 뇌관 및 숨겨진 또 다른 시한폭탄을 짚어봤다.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사건이 전형적인 ‘권력형 게이트’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것은 현 정권 실세들을 비롯한 이 사건에 등장하는 화려한 인사들 때문이다. 우선 MB의 최측근인 최 전 위원장과 ‘왕차관’으로 통했던 박영준 전 차관이 이 사건에 깊숙이 연루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파이시티 개발 사업과 관련해 금품로비를 받은 혐의로 4월 26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 전 위원장은 파이시티 측에서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인허가 로비와는 무관하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브로커 이 씨에게 인허가 로비 명목으로 11억여 원을 전달한 이 전 대표의 진술과 최 전 위원장에게 최소 5억 원 정도를 전달했다고 인정한 이 씨의 진술, 로비 자금의 흐름을 입증하는 계좌추적 자료 등 각종 증거들을 바탕으로 최 전 위원장이 받은 돈의 대가성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갤럽 회장 시절인 지난 2004년 말 브로커 이 씨를 통해 이 전 대표를 처음 만난 최 전 위원장은 이 씨를 통해 수시로 5000만 원에서 1억 원씩 금품을 전달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2005년엔 이 전 대표가 한국갤럽 회장 사무실을 방문해 1만 원권 현금이 담긴 쇼핑백을 최 전 위원장에게 직접 건네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지난 25일 대검에 최시중 전 위원장이 모습을 보이자 언론노조원들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임준선 기자 |
박 전 차관도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으로 있던 2008년 1월 10억 원을 건넸다는 이 전 대표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박 전 차관 쪽에서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해 2008년 1월 24일 10억 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이 같은 진술을 뒷받침하는 계좌내역 등도 검찰에 제출했는데 검찰은 이 돈이 브로커 이 씨의 계좌를 거쳐 박 전 차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특히 돈 전달 시점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이란 점을 감안할 때 이 대통령 당선축하금 성격으로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어 검찰수사 추이에 따라 상당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박 전 차관은 또 지난 2007년 당시 강철원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파이시티 사업이 잘돼 가는지 알아봐달라”고 요청한 의혹도 받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강 전 실장에게도 여러 번 파이시티 관련 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차관과 강 전 실장은 국회에서 오랫동안 보좌관 생활을 함께 하면서 막역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25일 박 전 차관의 서울 용산구 자택과 대구의 주민등록상 주거지, 대구 선거사무소 등에 대해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벌인 대검 중수부는 조만간 박 전 차관을 소환조사한 뒤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이 전 대표가 로비 자금으로 61억 원을 브로커 이 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만큼 지금까지 드러난 11억 5000만 원 외에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에게 건네진 돈의 액수 및 대가성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또한 브로커 이 씨에게 전달된 60억대 로비 자금 중 상당액이 또 다른 정권 실세와 고위 관료들에게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도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 씨는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파이시티 사업 투자자를 모집하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최 전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지난 2009년 김학인(구속)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EBS이사 선임을 대가로 2억 원대의 금품을 받아 최 전 위원장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10월 갑자기 사직서를 내고 부인과 함께 출국한 뒤 현재까지 외국에서 체류 중이다.
또 다른 정권 실세 및 일부 권력기관장들도 이 사건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전 대표는 2010년 경찰 수사를 받게 되자 최 전 위원장을 찾아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권재진 법무부 장관에게 부탁해 사건을 무마해달라고 청탁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지난해 11월경에는 이 전 대표가 최 전 위원장에게 ‘채권은행 관계자의 지분 요구 등 압박을 막아 달라’고 청탁하자, 최 전 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직접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여기 민원인이 있으니 잘 살펴보라”고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MB의 또 다른 측근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파이시티 인허가를 심의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이었던 것으로 확인돼 구설에 오르고 있다. 곽 위원장은 2005년 12월 파이시티 부지에 대해 서울시 도시계획위가 용도를 변경한 회의에도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MB의 대선 핵심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사업 계획을 기안하는 데도 깊이 관여한 곽 위원장은 현 정부 초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거쳐 2009년부터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현 정권 핵심 실세라는 점에서 파문이 큰 편이다.
MB의 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도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은 브로커 이 씨의 집 등을 압수 수색한 결과 정관계 인사들의 명단이 포함된 ‘비망록’과 ‘경조사 화환 및 축의금 리스트’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망록에는 이 씨가 지난 2007~2008년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을 각각 수십여 차례 만난 것 외에 이 의원과도 수차례 만난 사실이 일시, 장소와 함께 기록돼 있다고 한다. 이 씨는 최 전 위원장, 이 의원 등과 동향인 포항 출신으로 최 전 위원장과는 구룡포중-대륜고 동문이다. 당시 이 씨는 스스로 ‘영포라인’이라며 인맥을 자랑하고 다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최 전 위원장을 비롯한 현 정권 핵심 실세와 일부 권력기관장까지 연루된 의혹이 제기되면서 권력형 게이트 형태를 갖춰가고 있는 파이시티 사태는 MB에게까지 그 불똥이 튈 조짐이다. 서울시가 도시계획위원회 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이시티에 대해 대규모 점포 건설을 허용하는 시설 변경을 승인한 시점이 2006년 5월로 이명박 시장 퇴임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시는 터미널 연면적보다 4배나 넘는 판매 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해주는 중대 결정사안을 시장 임기 종료를 불과 50여 일 앞두고 밀어붙인 셈이다. 이러한 특혜 시비는 오세훈 시장 때까지 지속됐으나 2008년 도시계획위원회를 거쳐 2009년 마침내 건축허가가 떨어졌다.
복수의 서울시 관계자들은 파이시티 개발 사업의 핵심은 2006년 5월에 고시된 용도지역 변경이고, 사실상 이 고시로 사업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단언한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최 전 위원장이 서울시에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을 했다면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MB에게 직접 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전 대표가 브로커 이 씨를 통해 최 전 위원장에게 로비 자금을 집중적으로 건넨 시기가 2005년부터 2006년 초이고, 당시 최 전 위원장이 믿고 청탁을 할 만한 서울시 인맥은 MB가 거의 유일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관측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파이시티 개발 사업과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때 정무라인에 있던 사람들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이뤄진 것 같다”고 말해 박 전 차관 등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정무라인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로비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서울시는 자체 감사를 진행 중이며 박원순 시장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력해 진실을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정권 실세들과 정부 핵심요직 인사들까지 직·간접적으로 연루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파이시티 게이트’ 사건은 급기야 MB한테로 향하면서 현 정권을 총체적 위기 국면으로 몰아놓고 있다.
과연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검찰의 서슬퍼런 사정 칼날이 이번엔 ‘대어’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지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과메기 라인’ 썩은내 진동
봄날은 갔다. MB정권 개국 공신으로 정권 최고 실세그룹으로 군림해온 영포라인 인사들이 줄줄이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잇달아 터진 대형 비리사건에 이들이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에 입김을 행사하며 최대 권력으로 군림하던 이들의 몰락은 이 대통령의 권력 쇠락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우선 6인회 멤버로 정권 실세 중 실세로 꼽힌 최시중 전 위원장의 추락이 눈에 띈다. 이상득 의원의 대학 동기로 MB의 정치적 멘토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던 최 전 위원장은 결국 이번 파이시티 게이트로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영준 전 차관은 경북 칠곡 출신이지만 영포라인 실세로 꼽힌다. 그는 그동안 SLS그룹 로비, 다이아몬드 스캔들, 불법사찰 등 각종 대형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한 번도 사법처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파이시티 게이트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영일대군’ 이상득 의원도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 의원은 이국철 SLS그룹 회장과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로비 명목으로 7억 50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박배수 보좌관이 구속 기소된 사건과 여비서 계좌 뭉칫돈 사건에 연루된 의혹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이 의원은 파이시티 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도 브로커 이 씨의 비망록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어 또 다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검찰은 저축은행으로부터 영업정지 청탁과 관련해 4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확인 중이다.
영포라인은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등의 배후로도 거론되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일부 공무원들의 범죄가 아닌 정권 차원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지목되는 이유도 영포라인 인사들의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포라인으로 박 전 차관의 비선으로 통했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총리실 민간인사찰 은폐 의혹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다.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으로 구속됐던 김충곤 전 점검1팀장도 구룡포 중학교 출신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으로 구속된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으로부터 2년간 매달 50만 원씩 상납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조재정 고용노동부 노사정책실장도 포항 출신 인사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 복합유통센터 ‘파이시티’가 들어서기로 돼 있던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용지 전경. 파이시티 채권단은 포스코를 시공사로 확정하고 곧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1조 원대 PF대출에 ‘허우적’
정권 말 초대형 권력형 게이트 뇌관으로 부상한 파이시티 개발 사업은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터에 전체 면적 75만 8606㎡ 규모의 복합유통센터를 짓는 사업이다. 사업내용은 지하 6층, 지상 35층짜리 오피스 빌딩 2개 동과 터미널·물류센터 1개 동으로 구성되며 연면적 14만 3682㎡의 쇼핑몰과 12만 1199㎡ 규모의 백화점·할인점을 입점시켜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유통센터를 짓는 것이다. 공사비만 2조 4000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건설 사업이다.
▲ ‘파이시티’조감도 |
인허가 과정에서 파이시티는 금융권에서 1조 450억 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았다. 시설물들이 차질 없이 매각될 경우 3조 3288억 원 상당의 매출을 기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자금난과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서 사업은 난항을 겪게 된다. 용도변경 이후 건축심의 과정에서 행정절차가 지연되자 대출금과 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것이다. 게다가 2010년 2월과 6월에는 연대보증을 섰던 시공사 대우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면서 파이시티는 연대보증한 대출자금에 대한 상환 압박에 시달렸고 애초 기대를 모았던 장밋빛 청사진은 점점 멀어져갔다.
파이시티가 이자와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은행 등 채권단은 2010년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고, 이에 파이시티는 우리은행을 고소하는 등 파국으로 치달았다. 결국 지난해 12월 파이시티에 대한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채권단은 현재 대출금을 출자전환 한 상태다. 사업 시행권과 부지 또한 모두 채권단에 넘어갔다.
파이시티 채권단은 지난해 5월 시공사를 다시 선정하기로 했고, 올 3월 포스코건설이 새 시공사로 확정됐다. 이 사업은 오는 6월께 공사를 시작해 2015년 준공 예정이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