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안철수 원장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를 방문해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정치권 일각에서는 달라진 박 시장의 행보를 눈여겨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바로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원장과의 ‘관계’ 때문이다. 안철수 원장이 대선출마를 결심할 경우 ‘박원순 지원효과’가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박원순 시장의 달라진 강경 노선이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지난해 10·26 재보선에서의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은 ‘한국 선거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선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지지율 5%에 불과했던 그가 ‘대반전’을 일궈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안철수 원장이 있었다. 선거 20일을 앞두고 박원순 후보 지지를 표명하며 불출마를 선언, 박 시장의 ‘반전 승리’를 이끌었던 것. 이에 대해 ‘박원순의 승리’가 아닌 ‘안철수의 승리’라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극적인 선거 승리 이후 박원순 시장의 시정은 다소 조용하고 밋밋했다는 평가도 있다. 파격적인 시정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행보였다. 서울시청에서 20년 넘게 일해 온 한 직원은 “박원순 시장이 시민사회운동가 출신 시장이어서 다소 파격적인 시정을 펼칠 것으로 기대했었다. 인터넷 생중계로 취임식을 여는 등 이벤트성이 강한 정책을 펴기도 했지만 임기 초반 기대만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박 시장은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안을 발표한 ‘서울시메트로 9호선(주)’ 측에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시민사회운동가 특유의 결기를 내세우고 있다는 평가다. 박 시장은 한 인터뷰에서 지하철 9호선 문제에 대해 “서울메트로 9호선 측이 인상 통보를 하면서 자충수를 뒀다. 시민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 사과한다면 협상에 충분히 응할 생각이다. 이 문제를 더 끌어서 서울시가 오히려 계약 위반으로 문제가 되면 시민의 불편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입장”이라며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 시장이 ‘9호선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단순히 요금인상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는 분석이다. ‘서울시메트로 9호선(주)’의 2대 주주인 한국맥쿼리인프라가 이명박 대통령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10면 기사 참조). 이 대통령의 조카이자 이상득 의원의 아들 이지형 씨가 맥쿼리 계열사인 맥쿼리IMM자산운용의 대표를 지냈는가 하면, 한국맥쿼리인프라가 최대 주주로 참여했던 ‘우면산인프라웨이(주)’는 이명박 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와 우면산터널에 대해 MRG(최소운영수입보장제) 계약을 맺기도 했다. ‘서울시메트로 9호선(주)’과 맺은 MRG뿐 아니라 ‘우면산인프라웨이(주)’와 서울시와 맺은 MRG 계약 역시 서울시가 상당부분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MRG는 국가적으로 지난 2009년부터 전면 폐지한 상태다.
여기에 파이시티 인·허가 금품 수수 비리 의혹과 관련해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내부 감사를 실시하고 관련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은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개발사업 시행사인 파이시티가 사업 인허가를 받기 위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차관 등 MB계 실세 인사들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어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 및 새누리당에게까지 적잖은 여파를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박원순 시장이 적극적인 내부 감사를 벌인 이유 역시 파이시티 인·허가 사업 비리가 이명박 시장이 재임하던 시절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 시장 측이 구체적인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며 해명에 나섰으나, 이미 보도를 통해 당시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이 청탁 전화를 받은 사실이 공개된 바 있다. 강 전 정무조정실장은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오세훈 전임 시장의 최측근 인사다.
지하철 9호선 문제와 파이시티 비리 의혹과 관련해 박 시장이 적극적 대처에 나선 것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새누리당에선 “박 시장이 몸값을 높이기 위해 ‘여론몰이’에 나선 것 아니냐”며 폄하하는 분위기다. 다분히 새누리당에게까지 미칠 파장을 의식한 반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장 자리는 대선주자로 가기 위한 길목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을 공격하면서 박 시장 본인의 입지를 넓히려는 전략 아니겠느냐”고 못 박았다. 또 다른 인사는 “박 시장이 서울시민을 위한 정책에 힘을 쏟기보다는 전임시장들(이명박, 오세훈)의 비리를 찾아내는 데만 급급한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민주통합당 측에서는 박 시장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긍정적이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총선 이후 당내에는 현재의 민주통합당 대권 주자 중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맞설 상대가 누가 있겠느냐에 대한 회의론과 무력감이 팽배하다. 안철수 원장이 민주통합당으로 들어오지 않더라도 박원순 시장을 ‘메신저’로 해 안 원장과 대선 연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야권 성향의 한 정치평론가 역시 “민주통합당은 박 시장이 향후 안철수 원장을 지지하며 야권 내에서 세력을 만들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포석을 해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안철수 원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박 시장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해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원순 시장은 안철수 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경우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현재 민주통합당 소속인 그가 외부 주자인 안철수 원장을 지원하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박 시장 역시 “민주통합당 당원으로서 예비 대선후보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누구를 예컨대 100% 지지한다 이렇게 얘기하긴 굉장히 어렵다. 더군다나 서울시장으로서 이번 대선에 개입할 수 있는 수준은 제한돼 있다. 정신적인 지원은 몰라도 물리적 지원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박원순 시장―안철수 원장의 관계가 오는 대선에서 어느 정도의 폭발력을 가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치전문가들은 대체로 박원순 시장 ‘개인’의 지원으로는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안철수 지원효과만큼의 파괴력을 가져오진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박원순 시장을 매개체로 한 민주통합당 내 일부 세력이 이탈할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안철수 원장은 기존 정당에 몸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제3지대에서 새로운 당을 만들 경우 민주통합당 내의 중도 세력들이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박원순 시장이 자신의 스탠스를 두고 고민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직은 먼 듯한 이야기지만 야권 내 일각에서는 박원순 시장을 장기적인 대권주자로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안은 박 시장의 몸값을 키워 안철수 원장의 ‘킹메이커’로서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이 쥐고 있는 카드에는 지하철 9호선, 파이시티, 앞서 언급한 우면산 터널 문제 외에도 가든파이브, 서초동 사랑의 교회 등 전임 시장 시절에 불법특혜 의혹이 제기됐던 문제들이 줄줄이 들어 있어 박 시장 스스로가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갈 폭발력을 갖추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관련 비리에 대해 박 시장이 전면전을 펼 경우 박원순 시장 개인의 주가도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박 시장의 행보에선 단순히 시장직에 머무르진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조국 총리에 김난도 장관…
안 원장은 각계 전문가들 및 정치권 관계자들과 물밑 접촉하며 대선 레이스를 위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안 원장이 이르면 6월 말 공개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민주통합당 입당이 아닌 제3세력을 규합해 야권 단일화에 나설 것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현재 안 원장이 어떠한 인사들과 교류하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박경철 안동 신세계클리닉 연합원장, 강인철 변호사 등이 안 원장 측근으로 거론되는 정도다. 몇몇 대학 교수들과 전·현직 국회의원들 실명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확인은 되지 않고 있다. 안 원장의 한 측근은 “누구를 만나는지 우리도 잘 모른다. 다만, 여야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들으면 깜짝 놀랄 보수 인사도 있다”면서 “이들이 향후 안 원장의 핵심 싱크탱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안 원장 조언그룹에 속한 몇몇 교수들이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을 꾸려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어 관심을 끈다. 앞서의 안 원장 측근은 “총선 전 서울 소재 대학의 K 교수가 안 원장에게 그러한 내용을 제안한 바 있다. 안 원장과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유력 인사들이 많다. 이들을 주축으로 ‘드림팀’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조국 서울대 교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교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말하자면 ‘조국 총리’에 김난도 김택진 등이 장관을 맡는 드림팀을 상정해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안 원장 주변에서 섀도 캐비닛 얘기를 꺼내고 있는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여러 관측을 내놓는다. 민주통합당 중진 의원은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것 아니겠느냐. 또한 지지층을 넓히기 위한 것으로도 보인다. 즉, 내각 명단에 특정 세력 혹은 연령대에 인기가 높은 인사를 포함시키면 그만큼 세도 늘어나게 된다.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쉽지 않은 방법이다. 리스트에 포함된 인사들과 관련해 구설이 불거질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안 원장이 질 수밖에 없다. 또 한국 정치 현실상 ‘나눠먹기’라는 비난이 나올 수도 있다. 안 원장의 인재풀이 그만큼 넓을지도 의문”이라면서 “실현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안 원장 조언그룹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드림팀 구성 제안은 현실성 여부를 떠나 그의 정치 진입이 그만큼 더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