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된 공범 6명 중 4명은 면탈자 모친…‘작전’ 펼친 김 씨 건당 300만~1억 1000만 원 수수
김 씨를 통해 허위로 뇌전증(간질) 증상을 연기해 병역 감면 또는 면제를 받아낸 병역면탈자 가운데에는 의사와 골프선수, 프로게이머 코치 등이 포함됐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기소된 22명 가운데 공범 6명이다. 병역면탈자의 주변 인물들로 6명 가운데 4명은 의뢰인의 어머니이고 2명은 친구다.
병역 브로커 김 씨는 2020년 2월 행정사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병역 브로커 구 씨로부터 뇌전증을 허위로 만들어 병역 면탈을 받는 수법을 알게 된다. 구 씨를 도우며 범행 방법을 습득한 김 씨 역시 병역 브로커로 활동하게 됐다. 병역 브로커 구 씨 사건을 병무청과 합동수사하던 서울남부지검이 또 다른 병역 브로커인 김 씨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수사가 확대돼 결국 기소에 이르게 됐다.
기본적으로 브로커 김 씨는 의뢰인들이 실제 뇌전증 환자인 것처럼 발작 증상 등을 연기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1~2년가량 병원을 꾸준히 다니며 뇌전증 치료 의료 기록을 남겼는데 더 완벽한 범행을 위해 주변인까지 활용했다. 가족과 지인, 친구들이 의뢰인이 뇌전증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목격한 것으로 꾸미면 병원과 병무청을 속이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최근 법무부가 공소장을 국회로 제출하면서 그 내용이 언론에 공개됐는데 기소된 병역면탈자 어머니들의 역할이 검찰 공소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0년 11월 23일 자정 즈음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119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아이가 자고 있는 모습이 이상해 자세히 봤더니 정신을 잃고 몸을 떨고 있다”며 “팔 다리가 뻣뻣하다”고 말했다.
신고자인 A 씨 어머니는 구급차에 함께 올라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A 씨 어머니는 “아들이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몸을 떨고 있었고, 팔다리가 뻣뻣했다”고 말했다. A 씨 역시 “잠을 자고 있는데 2분 정도 동안 경련했다. 한두 달 전에도 경련이 있었다”고 증상을 밝혔다.
A 씨와 그의 어머니가 말한 증상은 발작 등 전형적인 뇌전증 증상으로 병원에서 ‘뇌전증’ 병명의 병무용 진단서를 발급 받았고, 이를 서울지방병무청에 제출해 재신체 검사대상인 7급 판정을 받았다.
이후 꾸준히 뇌전증 약을 처방 받으며 뇌전증 환자로 살아 온 기록을 남긴 A 씨는 서울지방병무청에 의무기록지를 제출해 2022년 1월 10일 병역판정검사에서 경련성질환을 사유로 보충역인 4급 판정을 받았다.
그렇다고 A 씨에게 실제로 뇌전증 증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A 씨의 어머니가 아들의 병역 면탈을 위해 병역 브로커 김 씨로부터 상담 받은 뒤 제시 받은 시나리오대로 뇌전증 증상을 꾸며낸 것일 뿐이다. 그 대가로 A 씨는 김 씨에게 930만 원을 건넸다.
B 씨 어머니 역시 같은 수법이었다. 2022년 5월 13일 서울 송파구 소재의 B 씨 사무실을 찾은 B 씨 어머니는 119에 신고를 했다. “애가 쓰러졌는데 의식이 없고 입에 거품이 있고 몸이 굳어 있다. 빨리 와 달라”는 신고 내용으로 A 씨 어머니의 119 신고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장소가 주거지에서 사무실로, 시점이 잠들었을 때와 쓰러진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당연히 B 씨 역시 실제로는 뇌전증 증상이 없었다.
다음 단계로 B 씨와 함께 병원을 찾은 B 씨 어머니는 “아들 사무실에 방문했더니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아들이 쓰러져 발작했다”며 “입원을 시켜야겠다”고 말했다. 여기 더해 20세 때부터 연간 3~4회 정도 발작이 있었다는 취지로 증상도 덧붙였다. 119에 신고를 하고 함께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간 B 씨 어머니는 확실한 증상의 목격자가 됐다.
그렇게 뇌전증 환자 행세를 한 B 씨는 ‘난치성 뇌전증을 동반하지 않은 상세불명의 뇌전증’이라는 병명의 병무용 진단서를 받아 서울지방병무청에 제출해 재신체 검사대상인 7급 판정을 받았다.
이번에는 응급실이다. 2022년 10월 23일 서울 동작구의 한 병원 응급실을 찾은 C 씨와 C 씨의 어머니는 “오늘 자정쯤 아들이 방에서 컴퓨터를 하던 중 의식을 잃었다. 3분 동안 경련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D 씨는 2021년 3월 23일 오후 10시 즈음 서울 양천구 소재의 한 공원에서 발작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누군가 그 모습을 보고 119에 신고해 구급차로 병원 응급실에 후송됐다. 병원에서 D 씨는 의사에게 “오늘 공원 벤치에 앉아 게임하다가 경련한 것 같다. 행인이 쓰러진 나를 보고 119에 신고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D 씨는 꾸준히 뇌전증 치료 병원 기록을 남겼고, 11월에 ‘난치성 간질을 동반하지 않은 상세불명의 뇌전증’으로 병무용 진단서를 발급받아 병무청에 제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2년 3월 비로소 전시근로역인 5급 판정을 받았다.
이번 사례에선 D 씨 어머니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존재감은 분명했다. D 씨 어머니는 병역 브로커 김 씨에게 범행 시나리오를 받아 아들 D 씨에게 전달했다. 공원에서 쓰러진 모습을 보고 119 신고를 한 이 역시 그냥 행인이 아닌 브로커 김 씨였다.
D 씨는 현직 의사로 2011년 처음 병역 판정에서 신체등급 3급 현역을 받았고 5년 뒤 두 번째 검사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신체등급 2급이 나왔다. 다시 6년 뒤 세 번째 병역 판정검사에서도 신체등급 3급 판정이 나와 2021년 4월부터 3년 동안 공중보건의로 복무할 예정이었다. 바로 이 시점에 D 씨 어머니가 브로커 김 씨를 만나 시나리오를 건네받아 아들에게 전달했다.
D 씨는 김 씨에게 그 대가로 1억 1000만 원이나 되는 거액을 건넸다. D 씨는 이번에 적발된 이들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낸 의뢰인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씨가 병역면탈자들로부터 받은 대가는 건당 300만~1억 1000만 원으로 총 수수액은 2억 6610만 원이다. 최고가 작전(?)이었던 까닭인지 브로커 김 씨까지 행인을 가장한 목격자로 직접 참여해 119에 신고까지 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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