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당일 CCTV에 잡힌 피의자들과 이들을 따라가는 피해자. KBS뉴스 캡처 |
숨진 김 씨와 연인 사이였던 박 씨는 고등학생이던 이 군에게 방문과외를 해주던 과외 선생이었다. 이 군은 숨진 김 씨를 40여 차례 칼로 찌른 장본인이다. 이 군은 선생님이던 박 씨에게 ‘사령카페’를 알려주면서 가입을 권유한다. 사령카페는 ‘오컬트 문화’의 일종으로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가입해 있는 곳이다. 박 씨는 순식간에 오컬트 문화에 빠져들게 되고 남자친구였던 김 씨까지 끌어들이게 된다.
오컬트(Occult)는 ‘숨겨진 것’ 또는 ‘비밀’을 의미하는 오쿨투스(Occultu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과학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초자연적 현상(미스터리, 외계인 등)이나 그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즘 국내에서는 어린 중·고등학생들에게 급속히 퍼지게 되면서 악령, 귀신과 같은 분야의 특정 문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사령(死靈·죽은 자의 영혼)카페’가 급속히 등장하기도 했다.
박 씨가 사령카페 회원들로 구성된 스마트폰 대화방에 남자친구인 김 씨를 초대하게 되면서 엽기적인 인연은 시작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김 씨는 박 씨가 사령카페에 심취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겨 그녀를 빼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 과정에서 카페회원들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그러자 박 씨는 결국 대화방을 나가게 되고 김 씨와도 결별을 하게 된다.
원래 박 씨는 만화 캐릭터 의상을 그대로 따라 입고 노는 ‘코스프레’ 동아리에서 이 군과 홍 양을 만나 이미 친해진 상태였다. 김 씨와 갈등을 빚기 시작한 이후 김 씨를 제외한 이들 세 명은 따로 채팅 대화방을 만든다. 이에 불만을 품은 김 씨는 이 군에게 ‘신상을 털어 공개해 버리겠다’ ‘사령카페 소굴’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난해 갈등을 증폭시켰다. 홍 양에게는 계속해서 이 군과 헤어지라는 문자도 보냈다.
김 씨의 계속된 협박과 연락에 화가 난 이 군과 홍 양은 결국 그를 죽이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평소 이 군과 잘 알고 지냈던 윤 씨도 끌어들였다. 윤 씨는 예전에 ‘코스프레’ 동아리에서 이 군과 친해진 사이였는데 숨진 김 씨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음에도 살인에 동조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의 연인이었던 박 씨 또한 이러한 과정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박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숨진 김 씨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며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라는 표현을 썼다. 사전에 살인 의지를 외부에 알린 셈이다. 이에 김 씨를 살해한 가해자들은 ‘확인 완료’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박 씨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그들이 흉기를 소지한 사실은 몰랐다. 설마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사건 발생 전날 이 군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만날 것을 약속했다. 당시 김 씨는 이 군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는 취지로 만남을 약속했지만 김 씨와 이 군 모두 사과를 할 생각도 받을 생각도 없었다. 김 씨는 살해 당하기 전 다른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목적은 ‘레카’(여자친구 박 씨의 아이디) 구출(사령카페에서 빼내오겠다는 뜻). 무력 따위 안 써. 조용히 빼내오는 거야”라는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이 군 역시 이미 윤 씨와 범행도구와 실행계획을 모두 준비한 상태였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윤 씨와 이 군, 홍 양 등 3명에 대해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숨진 김 씨의 전 여자 친구인 박 씨에 대해서는 살인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박상률 프리랜서
▲ 영화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 |
자녀 굶겨 죽인 이유가…헉! “잡귀 쫓아내려고”
드물기는 하지만 오컬트 문화와 관련된 사건은 이미 몇 차례 발생한 적이 있다. 지난 2011년 3월,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빌딩 10층 옥상에서 나 아무개 씨(여·33)가 투신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 종로경찰서는 나 씨가 네이버에 개설된 오컬트 카페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나 씨는 자살하기 전 가족들에게 “누군가 나에게 악한 기를 불어 넣어줬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전남 보성에서는 부부가 세 자녀를 때리고 굶겨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부부는 잡귀를 몰아낸다는 구실로 성경을 멋대로 해석해 자녀를 폭행하고 아무런 음식도 주지 않았다. 부부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자녀들을 폭행한 이유에 대해 “잡귀를 쫓아내기 위해서”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컬트 문화는 주변에서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잘 알려진 영화 <엑소시스트(Exorcis)>와 <오멘(Omen)>은 세계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오컬트 영화다. <엑소시스트>는 어린 소녀의 몸에 깃든 악령과 신부와의 대결을 그린 작품으로 이 작품은 공포영화 중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악령이 여자 아이의 몸을 지배해서 싸운다는 내용은 요즘 문제시되고 있는 국내 사령카페에 게시된 글들과 비슷하다.
영화 <오멘>은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악마가 한 가정을 위협에 빠뜨린다는 내용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악마를 없애기 위해 자식과 목숨을 걸면서 싸우지만 결국 악마로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아버지마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이다.
국내에서 오컬트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여고괴담>이다. 여고생 친구들이 밤에 교실에 모여 ‘분신사바’라는 주문을 외치며 귀신을 부르는 장면은 오컬트 문화의 대표적인 행위다. 결국 귀신을 부른 친구들은 끔찍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작품 완성 1년여 만에 개봉이 예정되어 있는 <미확인 동영상>이라는 영화도 오컬트 영화로 분류된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저주 걸린 동영상이라며 구해온 미확인 동영상을 본 후 섬뜩한 광기에 사로잡혀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의 두 사건들과 소개한 네 편의 영화 모두 오컬트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특이한 점은 악령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결국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