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T·에스파 시상식서 ‘스태프에 감사’만 언급…스타 입장 따라 거대 팬덤 지분 대결 영향 미칠 수도
#‘SM=수만’이었지만…
이수만 전 SM엔터 총괄 프로듀서는 지금까지 SM엔터 그 자체였다. 그의 이름 ‘수만’의 약자를 따서 기업명을 지었듯, SM엔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SM엔터 소속 아티스트와 직원들을 그를 전적으로 믿고 따랐다. 한목소리로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경심을 표했다. 하지만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최대주주 지분을 하이브에 넘기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2월 18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써클차트 뮤직어워즈 2022’ 시상식. 현재 SM엔터를 대표하는 그룹인 에스파와 NCT가 참석해 각각 올해의 가수상 디지털 음원 부문(7월)과 올해의 가수상 피지컬 앨범 부문(1분기)을 수상했다. 단상에 오른 에스파 멤버 4명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되더라도 멋진 음악으로 돌아올 테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회사 식구 분들과 언니, 오빠들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응원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NCT 도영은 “NCT가 이렇게 좋은 상을 받게 된 것은 멤버들과 우리를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 그리고 오래 같이 곁에서 함께 해주는 형, 누나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형, 누나들만 있으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상할 것이 없는 수상소감이다. 하지만 SM엔터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들의 수상소감에서 ‘이수만’이라는 이름 석 자가 빠졌기 때문이다. SM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은 트로피를 거머쥘 때마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를 향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빠뜨린 적이 없다. 대신 공통적으로 ‘형·누나’ 혹은 ‘언니·오빠’를 언급했다. 이는 그들과 함께 일하는 매니저나 A&R팀 등 SM엔터 스태프를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형·누나’ 혹은 ‘언니·오빠’로 언급된 SM엔터 직원들의 입장은 어떨까. 2월 13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내 ‘SM엔터 라운지’에서는 이번 경영권 분쟁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을 묻는 투표가 진행됐다. 220여 명이 참여했고, 현 경영진인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와 신주 인수를 앞두고 있는 카카오를 지지한다는 의견이 85%(191표)였던 반면, 이 전 총괄 프로듀서와 하이브 연합에 표를 던진 이는 15%(33표)에 불과했다.
2월 17일에는 SM엔터 유닛장 이하 재직자 208명으로 구성된 ‘SM엔터 평직원 협의체’가 ‘불법, 탈세 이수만과 함께하는 하이브, SM엔터에 대한 적대적 M&A 중단하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하며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SM엔터와 핑크블러드(SM엔터 팬의 별칭)를 버리고 도망쳤지만, 우리는 서울숲에 남아 SM엔터와 핑크블러드를 지킬 것”이라고 다짐하며 “팬, 주주, 투자자에게 우리가 처한 제대로 된 상황을 알려야 SM엔터 고유의 문화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 하이브에 대해 이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SM엔터 직원들을 향해 현재 SM엔터를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들이 “감사드리고 응원한다”고 말한 것은 사실상 이번 사태에 대한 그들의 의중을 밝힌 셈이다.
#샤이니 키 "회사가 뒤숭숭"
우회적으로 속내를 밝히는 것과 직접적으로 입장을 내는 것은 다르다. 팬들을 움직일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룹 샤이니의 멤버 키는 최근 리패키지 앨범 발매와 더불어 진행한 행사에서 “회사가 뒤숭숭하다. 콘서트를 하고 싶은데 누구한테 얘기해야 할지”라고 토로했고, 소녀시대의 멤버 태연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다들 열심히 산다”고 심경을 드러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정도의 감정 토로였다. 앞서 오랜 기간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 동행해온 가수 겸 배우 김민종과 유영진 프로듀서가 공개적으로 이 전 총괄 프로듀서를 지지한 것과는 다른 모양새다.
그러나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그들이 분쟁에 직접 뛰어드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 그들이 가진 상징성과 영향력을 따져봤을 때 그들의 이름을 앞세운 기사가 쏟아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당연히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고, 어느 정도 이미지 실추를 각오해야 한다. 게다가 어느 쪽이 경영권을 쥐느냐에 따라 이런 입장 표명이 향후 활동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SM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의 망설임은 팬들의 망설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거대 팬덤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성명서를 통해 입장을 내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 경영진과 카카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 하이브가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지지하는 가수들에게 더 유리한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탓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장기간 업계 리딩 그룹이었던 SM엔터는 그룹 BTS(방탄소년단)를 앞세운 하이브에 주도권을 내준 후 상당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하이브에 지분을 넘기며 사실상 자회사나 계열사로 편입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한 반감은 상당하다”면서도 “하이브가 경영권을 쥔 뒤 이 전 총괄 프로듀서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소속 아티스트나 팬들의 입장 정리 역시 쉽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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