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변신에 김기현 나홀로 레이스, 안철수-천하람 단일화 모락모락…윤 대통령 민생행보 김기현에 고무적
후보들이 치열한 지상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소리 없이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의 공중전이 김기현 후보를 후방 지원하는 강화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김·황, 헤어질 결심
당초 정치권에서는 김기현 후보가 고령의 전통적 지지층 당원들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는 황교안 후보와 쉽게 원팀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김 후보 측은 이를 바탕으로 대세론을 조기에 확정짓고 결선투표 없이 마무리 지을 전략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황 후보는 이번 전당대회 국면에서 과거 이미지는 물론, 예상됐던 행보조차 완전히 달리하며 김 후보에게 고춧가루를 강하게 퍼붓고 있다. 황 후보는 김 후보의 이른바 ‘울산 KTX 역세권 시세차익’ 의혹을 지난 2월 13일 제주 합동연설회에서 다른 후보들보다 앞서 제기했다.
이 의혹은 지난 2007년 KTX 울산역세권 연결도로 노선이 당초 계획과 달리 김 후보 소유 임야를 지나도록 휘었고, 이 과정에서 김 후보가 1800배에 가까운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황 후보는 연일 이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황 후보는 2월 20일 공식 입장문까지 내면서 김 후보 의혹 해명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즉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황 후보는 “전형적인 권력형 토건비리 문제”라며 “땅을 언제 샀느냐가 아니라 왜 도로를 김 후보 땅으로 휘어지도록 바꿨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 후보는 김 후보가 2004년 울산 남구을 국회의원 당선 이후 원내부대표 등 당내 주요 직책을 맡았고, 2008년 재선된 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간사를 역임한 경력 등을 들어 “김 후보가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도로 방향을 원안과 달리 자신의 땅 쪽으로 끌고 왔다는 의혹이 문제”라고 김 후보를 정조준했다. 반면 김 후보는 일관되게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이라는 입장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2월 22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황 후보의 변화에 대해 가치를 부여했다. 이 전 대표는 “황교안 전 대표가 (21대) 총선 트라우마를, 소위 ‘부정선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예전의 냉철함을 찾아가시는 것 같다”며 “완전히 사람이 달라졌어요”라고 평가했다.
이어 “보통 ‘안철수가 달라졌다’라는 소리는 많이 듣지만 그 체감과는 다른 수준으로 황교안 전 대표가 좀 달라진 것 같다”며 “김기현 후보 입장에서는 사실상 연대우군까지 생각하고 있던 황교안 전 대표로부터 그런 공격이 들어와서 굉장히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황 후보의 변신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맞물려 있다. 김 후보와 연대해 돌아올 정치적 보상보다는 독자행보를 통해 얻을 실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연대해서 김 후보를 밀어줘본들 향후 자신이 정치적 지분을 획득할 가능성이 없는데, 정치적 전리품도 챙기지 못하는 동맹을 굳이 형성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황 후보가 독자노선을 걸을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김 후보는 동맹군이 없는 나홀로 전투를 치러야 할 판이다. ‘친윤 그룹’ 좌장이라 할 수 있는 장제원 의원과의 연대, 나경원 전 의원과의 어깨동무 등 파죽지세의 연대를 해왔던 터인데, 막판 연대전선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이에 따라 대세론 확산에 일단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로서는 황 후보의 곧은 성격을 잘 알기에 연대 협상을 붙일 만한 작은 불씨도 못 만들어내고 있다. 더욱이 김 후보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황 후보를 향해 “의혹이 사실이 아닐 경우 정계은퇴하라”고 압박까지 해, 두 사람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해석이 나온다.
#안·천, 적과의 동침
천하람 후보의 후방 지원세력인 이준석 전 대표와 안철수 후보 사이의 껄끄러운 관계를 정치권은 잘 알고 있기에 안철수·천하람 연대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적과의 동침’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신호가 끊임없이 나온다.
천 후보는 안 후보에게 참사를 겪은 이태원 상권 회복을 위한 공개일정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천 후보는 2월 21일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금주 내로 이태원을 찾아 저희가 상품권을 사용하고 언론 간담회를 하며 이태원 상권 회복을 위한 여러 고민을 하려 한다”며 “안 후보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제가 10만 원어치 상품권을 구매했고, 안 후보 재산을 고려하면 한 100만 원어치를 구매해야 한다고 했더니 껄껄 웃더라”라고 전했다.
하지만 안 후보 측 윤영희 대변인은 다음날 논평을 통해 천 후보 제안에 대해 “특정 후보끼리만 모여 이벤트를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억지스럽다”며 일단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험지에서 지역 활동을 하는 정의롭고 참신한 천 후보의 대안 제시 능력과 비전이 궁금하다”고 천 후보를 치켜세웠다.
안철수·천하람 후보는 최근 여러 장면에서 서로 우호적인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다. 안 후보는 2월 20일 2차 TV토론에서 자신의 주도권 토론 시간에 “호남에서 원외 당협위원장을 하는 의도를 높이 산다”며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인 천 후보를 띄웠다. 천 후보가 토론회장을 떠나며 “덕담 감사하다”고 화답하자, 안 후보는 활짝 웃으며 “이제 한 팀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두 후보는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단 손사래를 치고 있다. 이태원 동행을 제안했던 천 후보는 2월 22일 KBC라디오 ‘백운기의 시사1번지’에 출연해 “천·안이든, 안·천이든, 연대는 없다. 어떤 연대를 하겠다는 것은 과한 언론의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기현 후보가 황교안 후보를 품어내지 못하면서 당대표 선거 1차 투표에서 과반 달성이 결국 어려울 것이라는 판세 전망은 안·천 연대 가능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1차 투표 이전 두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은 지극히 낮지만, 결선투표에서 안 후보든 천 후보든 2위 후보에게 세를 몰아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안·천 연대 가능성은 당대표 선거뿐 아니라 최고위원 선거 판세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최고위원 선거에 큰 기대를 거는 이준석계에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안·천 연대 연기가 피어오르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표가 최고위원 투표에서 이준석계인 김용태·허은아 최고위원 후보, 이기인 청년최고위원 후보를 찍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공중전 변수
‘1강’으로 불리는 김기현 후보 지지율은 상당 부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에 기댄 것이다. 때문에 김 후보 대세론은 윤 대통령 지지세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윤 대통령의 왕성한 민생행보가 당대표 후보 간 지상전 결과를 뒤엎을 만한 공중전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관심사다.
윤 대통령은 연일 민생현장을 찾거나 오랜 적폐 사례로 지목돼온 일들에 대해 강력한 대처 방침을 내놓으면서 ‘해결사 대통령’ 면모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의 큰 걱정거리로 떠오른 소아의료 공백 사태와 관련해 2월 22일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을 찾아 “아이들 건강을 챙기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 책무”라며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전날은 건설사들의 골칫거리인 것은 물론, 시공비 상승·입주지연의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는 건설현장 폭력 행위에 대한 근절 방침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거대 노동조합의 오래된 악습 행태에 대해 연일 성토하면서 노동 개혁에 대한 의지도 연일 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2월 20일 노조 회계 투명성에 대해 “국민의 혈세인 수천억 원의 정부지원금을 사용하면서 법치를 부정하고 사용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행보는 ‘대통령과 원팀’을 선거 구호로 내건 김기현 후보에게는 고무적이다. 1호 당원인 윤 대통령 중심으로 당·정·대가 힘을 모아 국정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명분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후보의 낮은 인지도, 땅투기 의혹까지 한꺼번에 타격해 없애버리는 융단폭격의 힘도 낼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세가 최근 가파르고 노조 개혁 방안까지 나오면서 젊은층의 반응도 좋다. 대통령 임기 초반 전당대회 전례를 보면 당원들은 지상전에서 나타나는 전세 추이보다는 공중전을 주시하는 경향이 컸는데, 비록 의도되지 않는 것이라 해도 최근 윤 대통령의 행보는 이러한 추세를 강화하는 효과를 보는 것 같다. 김기현 후보의 지지율이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비교적 강한 추세로 1강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공중전의 힘이 지상전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후보 간 지상전 공방뿐 아니라 공중전 변수도 잘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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