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WBC 주장 이종범 이번엔 해설위원으로 참여…박병호는 20대에 주장 맡아 화제 오르기도
대표팀 주장은 소속팀 주장보다 더 어려운 자리다. 각 팀에서도 내로라하는 스타 선수들이 모여 대표팀을 이룬다. 처음으로 같은 유니폼을 입고 손발을 맞추는 사이도 많다. 국가대표 단골 멤버이자 대표팀 최고참인 김현수는 이 선수들을 한데 묶어 소통할 수 있는 적임자다. 이강철 감독은 김현수의 주장 선임을 발표하면서 "선수들끼리 상의해서 결정한 주장이다. 김현수는 국제대회 경력도 많고 성격도 서글서글해 주장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만족스러워했다.
#김현수, 최적의 국가대표 주장
김현수는 명실상부한 한국 대표 타자 중 한 명이다. 특히 15년간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큰 힘을 보탰다. 이번 WBC가 벌써 10번째 국제대회다. 올림픽 2회(2008년, 2021년), 아시안게임 3회(2010년, 2014년, 2018년), 프리미어12 2회(2015년, 2019년), WBC 3회(2009년, 2013년, 올해) 출전 경력을 자랑한다. 2015년 프리미어12에서는 총 8경기에서 타율 0.333, 13타점을 기록해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김현수는 '국가대표'라는 자리의 영예와 무게감을 누구보다 잘 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단 이후로 김현수가 출전하지 않은 국제대회는 2017년 WBC가 유일하다. 당시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하고 첫 스프링캠프를 치르던 중이라 소속팀에 WBC 대표팀 차출을 부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때를 제외하면 단 한번도 국가의 부름에 고개를 내젓지 않았다. 2018년 LG로 복귀한 뒤에는 다시 붙박이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성적도 좋다. 국가대표 통산 타율이 0.362로 자신의 KBO리그 통산 타율(0.316)을 웃돈다. 역대 국가대표 최다 경기 출전(59경기)과 최다 안타(76개)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KBO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포상하기 위해 각 대회 규모와 성적에 따라 현역 등록일수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차등 지급하는데, 김현수는 이 포인트만으로도 한 시즌 인정 요건(145일)을 꽉 채워 두 번째 프리에이전트(FA) 자격 취득을 1년 앞당기기도 했다.
심지어 이번엔 4회 연속 대표팀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국가대표는 선수들이 '내가 나가겠다', '나는 빠지겠다'라며 선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누군가 나를 뽑아줘야 태극마크를 달 수 있고, 그래서 영광스러운 자리"라는 마음가짐이 뒷받침됐다. 한국 야구는 지난 두 번의 WBC 1라운드 탈락과 2년 전 도쿄 올림픽의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이번 대회에 총력을 쏟고 있다. 도쿄 올림픽 3·4위전 패배 후 눈물을 흘렸던 김현수도 각오가 남다르다. 어느덧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지만, 몸을 사리지 않고 대표팀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최근 일화가 있다. WBC 대표팀이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LA 공항으로 향하던 국내선 비행기가 기체결함으로 이륙을 중지하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선수단 일부는 다른 비행기로 무사히 LA에 도착했지만, 이 비행기에 탔던 이강철 감독과 코치 3명, 선수 18명은 LA까지 총 8시간 거리를 버스로 이동해야 했다. 투손에서 출발해 LA를 거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기까지 총 35시간이 걸린 것이다. 몸도 마음도 피로가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비행기에 함께 탑승했던 KBO 관계자는 "예기치 못한 고생인데도 선수단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륙 전 (결함을) 발견해서 천만다행'이라며 다들 웃어 넘겼다"며 "김현수가 밝은 분위기를 잘 이끌어줬다"고 귀띔했다.
#심재학과 김기태, 대표팀 주장의 출발
프로 최정예 멤버가 출전한 첫 국가대표팀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닻을 올렸다. 메이저리거 박찬호·서재응·김병현이 총출동했던 초호화 대표팀에서 첫 주장의 중책을 맡은 선수는 당시 LG에서 뛰던 심재학이었다. 리더십과 친화력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 있던 심재학은 빅리그와 KBO리그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아우르며 팀 분위기를 밝게 이끌었다. 당시 방콕 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은 "대표팀 팀워크가 최고였고, 하루하루 정말 즐겁게 대회를 치렀다. 결과도 금메달이어서 무척 기뻤다"고 회상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삼성 라이온즈 소속 김기태가 주장을 맡아 한국 야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수확하는 데 일조했다. 그가 한국 야구의 간판 거포로 활약하면서 홈런을 펑펑 때려내던 시절이다. 김기태는 선수 시절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형님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유명했다. 하나가 된 대표팀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숙적 일본을 꺾고 다함께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올해, 방콕의 주장 심재학과 시드니의 주장 김기태는 국가대표 코치 자격으로 여전히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이번 WBC 대표팀에 각각 퀄리티컨트롤(QC) 코치와 타격 코치로 합류해 '이강철 호'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초대 WBC 주장' 이종범의 위엄
이종범은 모범적인 주장의 좋은 예다. 소속팀 KIA 타이거즈에서도 그랬고, 대표팀에서도 그랬다. 이종범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 주장을 처음 맡았다. 당시 한국은 금메달을 따내 방콕과 시드니의 영광을 이어갔다. 그리고 4년 뒤 열린 2006년 초대 WBC는 주장 이종범의 위용을 그라운드 안팎에서 널리 알린 대회였다.
대회 초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1라운드 첫 경기인 대만전에서 4번 타자이자 주전 3루수였던 김동주가 어깨 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를 맞닥뜨렸다. 이때 주장 이종범이 팔을 걷어붙였다. 스스로 '군기 반장'을 자처하면서 쟁쟁한 빅리거들과 정면 대결을 앞둔 대표팀 선수들을 하나로 묶었다.
무엇보다 타석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해냈다. 4강 진출의 발판이 됐던 2라운드 일본과 경기에서 당시 일본 최고 마무리 투수였던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좌중간 2타점 결승 적시 2루타를 때려냈다. 타구가 외야 좌중간을 가르자마자 두 팔을 벌리고 포효하는 이종범의 모습은 여전히 WBC 최고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이종범은 내친 김에 3루까지 달리다 아웃됐지만, 관중과 더그아웃의 선수들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그를 기립박수로 그를 맞이했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박찬호, 이승엽과 함께 WBC 올스타팀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종범은 그 후 "나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나라를 대표해 열심히 뛰자는 다짐을 했다"며 "주장은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동료의 신뢰가 없으면 잘할 수 없다. 그런데 선수들이 너무 잘 따라줬다. 2006년에 함께한 WBC 멤버들에게 참 고맙다"고 했다.
이종범과 WBC의 인연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의 아들인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와 사위 고우석(LG)이 이번 대회를 통해 WBC 무대에 데뷔한다. 특히 올 시즌을 끝으로 MLB 진출을 선언한 이정후는 벌써부터 미국 언론과 구단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올해 LG 1군 주루코치로 활약하는 이종범 역시 구단의 허가를 얻어 일본 현지에서 아들과 사위의 경기를 지켜볼 수 있게 됐다. MBC 객원 해설위원 자격으로 도쿄돔을 찾아 WBC 한국 경기 생중계에 참여한다.
#올림픽과 WBC, 명암 교차한 진갑용
한국 야구의 업적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역사. 2008 베이징 올림픽 8전 전승 우승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만으로도 '기적'이라 여겼던 한국에 남자 구기 종목 최초의 금메달을 안긴 일대 사건이었다. KBO는 결승전이 열렸던 8월 23일을 '야구의 날'로 지정해 매년 기념하고 있다.
당시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의 주장은 포수 진갑용이다. 포수 선배였던 김경문 당시 대표팀 감독은 주저 없이 진갑용에게 주장 완장을 맡겼고, 대회가 끝난 뒤 주장에게 남다른 고마움을 표현했다.
사실 진갑용은 이 대회에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쿠바와 결승전에도 진갑용 대신 강민호가 선발 포수로 나서 선발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당시 한화 이글스)과 함께 8⅓이닝을 소화했다. 그러나 심판의 석연치 않은 볼 판정으로 한국이 끝내기 역전패 위기에 몰렸던 9회말 1사 만루서 강민호(삼성·당시 롯데 자이언츠)가 퇴장 명령을 받았다. 모두 울분에 차 있던 그 순간, 진갑용이 무릎을 절룩거리며 다시 마스크를 썼다. 마운드에 올라온 투수 정대현과 힘을 합쳐 공 3개만으로 천금 같은 병살타를 솎아냈다. 주장의 책임감이 빚은 투지였다. 베이징 하늘에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흐르는 순간, 백전노장 진갑용도 끝내 눈물을 보였다.
다만 2013년 열린 제3회 WBC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당시 대표팀 사령탑은 진갑용의 소속팀이었던 삼성의 류중일 감독이었다. 류 감독은 '베이징 신화'의 기운이 이어지길 기대하며 다시 주장으로 진갑용을 선택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표팀 성적이 좋지 않았다. 예선 1라운드에서 2승 1패를 거두고도 점수 득실차에서 뒤져 3위로 탈락했다. 대표팀은 2라운드가 열리는 일본으로 가지 못하고 대만에서 곧바로 귀국했다.
#대표팀 주장을 거쳐간 선수들
이들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대표팀 주장을 거쳤다. 희비도 극명하게 교차했다. KBO리그 정상급 외야수로 활약했던 박재홍은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주장을 맡았다가 동메달에 머무는 아쉬움을 남기고 대표팀을 떠났다. 한국이 준우승했던 2009년 WBC 대표팀 주장은 투수 손민한이었지만, 정작 대회 출장 기록은 없다. 대회를 앞둔 대표팀 전지훈련에서 어깨 통증이 재발해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대신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을 격려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투수 봉중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4번 타자 박병호(KT 위즈·당시 넥센)가 각각 주장으로 활약했다. 봉중근은 2010년 대회 첫 경기인 대만전에서 엔트리 착오로 갑자기 등판할 수 없게 된 선발 투수 윤석민 대신 부랴부랴 첫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대만전은 늘 금메달로 가는 중요한 고비다. 봉중근이 첫 단추를 잘 꿴 덕에 대표팀은 금메달이라는 결과물을 얻었다.
박병호는 국가대표팀 역사에서 처음 탄생한 20대 주장이었다. 그가 젊은 나이에 주장을 맡은 이유는 단 하나, "야구를 너무 잘해서"다. 그는 그해 홈런 52개를 때려내며 한국 대표 홈런 타자로 자리를 굳혔다. 박병호는 시즌 막바지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도 김현수, 강정호와 클린업 트리오를 이뤄 또 한 번의 금메달을 일궜다.
정근우도 '모범 주장' 가운데 한 명이다. 현역 시절 국가대표 붙박이 2루수로 활약한 그는 2015년 프리미어12에서 처음으로 주장으로 뽑혔다. 한국이 일본 선발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의 공을 치지 못해 고전할 때는 특유의 근성과 활기로 선수들을 격려했고, 준결승에서 일본에 극적인 9회 역전승을 거뒀을 때는 유쾌한 세리머니로 분위기를 더 띄웠다. 한국은 홈 텃세가 심했던 일본을 제압하고 프리미어12 초대 우승국으로 기록됐다.
김재호(두산 베어스)는 2017년 WBC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았다. 당시 대표팀엔 김재호 외에도 이대호, 박석민(NC 다이노스), 서건창(LG·당시 넥센), 이용규(키움·당시 한화) 등 10개 구단 주장 중 5명이 포함돼 있었는데,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2년째 두산 주장을 맡고 있던 김재호를 국가대표 캡틴으로 선택했다. 김재호가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기에 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유는 충분했다. 일단 당시 WBC 대표팀에는 2016년 통합 우승을 일군 두산 소속 선수들이 8명이나 발탁됐다. 최종 엔트리 28명 중 두산 선수들의 지분이 3분의 1보다 많았던 거다. 그다음으로 선수 수가 많았던 NC, KIA(이상 3명)와도 차이가 컸다. 또 투수들에게는 주장을 잘 맡기지 않는 전통, 김재호라는 선수 개인의 역량 등도 중요하게 고려됐다. 김 감독은 "대표팀에 고참 선수들이 많지만, 그들은 그동안 대표팀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기에 주장까지 맡기기엔 무리가 있다"며 "중간급인 김재호가 소통을 잘해줄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김재호는 주장 역할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다만 대표팀이 또 한 번 1라운드에서 탈락한 탓에 씁쓸한 뒷맛을 삼켜야 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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