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랜드가 운영하는 스포츠 패션 브랜드 뉴발란스 명동점. 이랜드는 명동에만 20여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이랜드그룹의 시작은 작은 보세 옷가게였다. 지난 1980년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잉글런드’라는 이름으로 패션업계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지금은 54개에 이르는 브랜드를 보유한 막강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랜드는 유통 외식 건설 레저 엔터테인먼트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업을 확장시키며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랜드의 영향력을 피부로 실감하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그 배경에는 이랜드만의 독특한 전략이 숨겨져 있다. 보통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사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비싼 모델이나 광고에 주력하지만 이랜드는 매장 확대를 통한 홍보를 고집하고 있는 것. 경쟁이 치열한 SPA(패스트패션) 브랜드만 예외다.
이러한 이랜드의 특징은 서울 명동거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현재 이랜드는 명동에만 ‘뉴발란스·티니위니·미쏘·로엠·스파오·헌트이너웨어’ 등 20여 패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이너웨어에서부터 운동화까지 이랜드 브랜드로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쇼핑이 가능할 정도다. 또한 몇몇 브랜드는 명동에서만 2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랜드 계열의 외식 브랜드 ‘애슐리’와 ‘리미니 피자몰’까지 합세해 쇼핑에서부터 먹을거리까지 파고들고 있다.
이처럼 단일 그룹이 명동에서 수십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이랜드뿐이다. 그러나 명동에서의 이랜드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이랜드의 대표 패션브랜드인 스파오와 로엠에서 만난 쇼핑객들에게 “이랜드의 계열사임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한 이는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이랜드를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인 명동을 선점하고도 이토록 낮은 인지도를 보이는 것은 어떤 매장에서도 이랜드 간판을 달지 않기 때문이다. 매장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랜드’라는 작은 글씨마저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을 숨기고 있었다. 이랜드 관계자는 “다른 기업들도 모기업을 강조하기보다는 브랜드를 강조한다. 각 브랜드는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랜드의 전략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다. 명동 상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도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명동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는 “최근 몇 년 사이 명동이 글로벌화하면서 국내외 기업들이 모두 눈독 들이고 있다. 하지만 임대료 문제가 늘 걸림돌이 됐는데 이랜드는 거침없이 들이밀어 꽤나 잡음이 일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명동은 워낙 상권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대부분 월세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요즘에는 계약기간도 1~2년으로 상당히 짧아졌는데 다들 만료시점이 도래하면 상당히 예민해진다”며 “심할 때는 50%까지 월세가 오르는 경우도 있어 이제 막 자리를 잡는 업체들이 두 손 두 발 들고 나가는 경우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이랜드는 기존의 업체가 더 이상 못 버티게 만들어 눈총을 받는다”고 전했다. 통상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 건물주와 재계약 협상을 벌이는데 이랜드가 여기서부터 관여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중개업자 한 아무개 씨도 “몇 년 전 내가 계약을 성사시켰던 의류업체가 이랜드한테 자리를 빼앗겼다며 하소연한 적이 있다. 건물주가 계약만료가 다가오자 재계약이란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고 월세 1억 원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하더라”면서 “알고 보니 이랜드가 그 금액을 줄 테니 자신들에게 임대를 하라고 했던 것인데 실제로 얼마 뒤 이랜드의 매장이 들어섰다”고 말했다.
이처럼 ‘명동 월세 대란’에 이랜드가 한몫했다는 불평은 명동 어디를 가도 흘러나왔다. 이랜드가 몸값 비싼 모델이나 광고를 하지 않는 대신 매장 임대료에는 과감하게 투자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더욱이 명동뿐만 아니라 신촌·이화여대 일대를 비롯해 신사동 가로수길까지 이랜드의 ‘핫 플레이스’ 점령은 계속되고 있는 상황. 타 브랜드와 사뭇 다른 이랜드의 전략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평소엔 ‘짠물’ 경매엔 ‘큰손’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은 알 수 없는 속내를 가진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다. 공식석상에서도 그의 자리는 늘 여동생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이 대신하고 있어 ‘은둔의 경영자’라는 수식어가 생길 정도다.
박 회장의 특성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수식어는 ‘짠돌이 경영인’이다. 연중 절반을 해외에서 보내는 박 회장이지만 절대 고급 숙박시설을 찾지 않으며 비행기도 늘 이코노미석만 고집한다. 한 이랜드 직원은 “근검절약을 대놓고 강조하진 않지만 회장님이 몸소 실천하고 계시니 직원들도 눈치를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렇게 ‘짠’ 박 회장이 평소의 모습과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는데 유명 소장품 경매현장과 인수·합병(M&A)을 추진할 때다. 최근에는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까지 탐내면서 재계를 놀라게 하더니 지난 4월에는 미국의 신발 유통업체 CBI(Collective Brands Inc.)에 2조 원이라는 ‘통큰’ 배팅을 걸어 또 한 번 주목받았다. 그러나 두 곳 모두 M&A에 실패하며 항간에는 이랜드의 자금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박 회장이 경매시장에서 큰손으로 변신한다는 점도 놀랍다. 지난해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882만 달러(약 101억 원)에 낙찰 받았고 일주일 뒤엔 오슨 웰스의 오스카 트로피도 10억 원가량에 손에 넣었다. 이랜드는 관광·레저분야에 킬러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으나 박 회장의 개인 취향도 한몫했을 것이란 말이 나돈다. 이랜드 관계자는 “(해당 물건들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답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