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4일 대구ㆍ경북 경선에서 1위한 김한길 후보가 이해찬 후보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5월 21일 울산 경선을 시작으로 5월 31일 전북 경선으로 마무리된 민주통합당(민주당) 당대표 경선 전국 순회 대의원 투표 결과 1위 김한길 후보와 2위 이해찬 후보가 보인 격차는 이처럼 미미했다. 서울ㆍ인천ㆍ경기 등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3개 광역시·도당 대의원 5043명이 참여해 1인2표 방식으로 치른 이번 순회 경선에서 김 후보는 2263표(득표율 22.4%)를 얻었고 이 후보는 2053표(20.4%)를 얻었다. 경선이 시작되기 전 모든 후보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이해찬 대세론’은 온데간데없고 김 후보와 이 후보가 예측불허의 초박빙 승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안갯속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권 대의원과 정책대의원들의 투표가 6월 9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임시전국대의원대회 현장에서 한꺼번에 치러지는 데다 반영비율이 70%로 대의원 투표(30%)의 2배가 넘는 당원·시민선거인단 투표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서울ㆍ인천ㆍ경기 등 수도권 대의원수는 전체 대의원(1만 5006명)의 57.8%(8666명)에 달하고, 정책대의원도 전체의 17.3%(2600명)을 차지한다. 당원ㆍ시민선거인단 투표는 오프라인 현장투표(6월 5∼6일)와 모바일 투표(6월 8일)로 나뉘어 실시되지만 이 역시 결과 발표는 6월 9일 이뤄진다. 각 후보들은 정확한 판세를 모르는 상황에서 9일간의 혈투를 치러야 하는 셈이다.
당초 이해찬 후보의 독주 양상으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됐던 이번 당대표 경선이 김한길 후보와 이 후보의 양강 구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의외다. ‘이해찬-박지원 연대’에 대한 당내 거부감이 ‘이해찬 배제투표’로 나타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선 전 초반 이해찬 후보가 ‘이-박 연대’를 비판하는 김한길 후보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등 ‘김한길 프레임’에 말려든 것도 위기를 자초한 원인이다. 이ㆍ김 후보가 거칠게 충돌하는 바람에 이 후보에 도전하는 7명의 후보 중 한 명이었던 김 후보가 ‘이해찬 대항마’로 부상해버린 것이다. 당내에선 이미 치러진 13개 광역시ㆍ도 대의원 투표 중 10곳에서 김 후보가 승리한 점을 근거로 ‘김한길 대세론’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지난 6월 1일 오전 이해찬 후보가 갑작스럽게 국회 정론관을 찾아 기자회견을 연 것도 이 같은 당내 기류와 무관치 않다. 이 후보는 회견에서 “제가 많이 부족했다. 저의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면서 “저에 대한 따가운 질책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해찬-박지원 역할분담론’에 대한 소통이 부족했고, 진의가 전달되지 않아 아픔을 겪고 있는 것 같다”며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박 연대’에 대해 당내 대선주자들은 물론 당권주자들까지 일제히 비판을 쏟아내 왔지만, 이 후보가 공개적으로 반성의 뜻을 밝힌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날 회견을 지켜본 한 민주당 당직자는 “좀처럼 마이크를 잡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이 후보가 일부러 기자회견을 열고 ‘이-박 연대’에 대해 잘못을 시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 후보가 어두워진 당대표 경선 전망 때문에 초조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이 후보가 수세에 몰리고 김한길 후보가 승기를 잡은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아직 누가 당대표가 될지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두 후보 간 격차가 너무 적고 고려해야 할 변수들은 많기 때문이다.
12만 3286명이 몰린 시민선거인단의 표심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당원선거인단은 16만 5101명에 달하지만 이들의 표심은 대의원들의 표심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후보와 이 후보 중 누가 이기더라도 큰 격차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2030세대 등 젊은 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시민선거인단에선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도 있다. 특히 5월 28일까지만 해도 5만 명에도 못 미쳤던 시민선거인단이 29∼30일 이틀 동안 폭증한 것을 두고 “막판 조직적인 참여가 있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멤버였던 정봉주 전 국회의원을 지지하는 ‘정봉주와 미래 권력들(미권스)’ 회원들이 한꺼번에 선거인단으로 등록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종걸ㆍ강기정 후보는 미권스 측이 자신들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권스를 비롯한 친노(친노무현) 성향 조직의 회원들이 선거인단에 대거 포함돼 있을 경우 김한길 후보보다는 이해찬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후보 측이 김 후보에 대해 “사립학교법 개악에 협조했었다”고 주장하는 등 김 후보의 정체성을 문제 삼고 나온 것도 친노 성향 조직들을 의식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 및 새누리당과 선명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김한길이 아니라 이해찬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한길-김두관(경남도지사) 연대설’ ‘김한길-손학규 연대설’ 등이 ‘이-박 연대’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박 연대’가 난타당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대선후보 문재인(상임고문)’을 상정하고 있다는 의혹을 샀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김한길 후보가 또 다른 대선주자인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손학규 상임고문과 연대하는 것도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김한길 후보가 ‘김-김 연대설’ ‘김-손 연대설’에 대해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정동영 등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분들이 ‘김한길이 대선후보 경선을 관리하면 공정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저를 찍어줬을 수 있다”며 “그러나 김한길과 다른 대선후보 간 짝짓기가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은 대의원의 뜻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역풍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