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박근혜 위원장의 닫힌 리더십을 보면서 10년 전 이회창 총재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국회사진기자단 |
하지만 요즘 잘나가는 박 전 위원장을 보면서 10년 전 그보다 더 잘나갔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10년 전 이회창 총재가 밟았던 측근정치와 그에 따른 신진세력 포용 실패, 그리고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 등의 전철을 박근혜 전 위원장이 정확히 되밟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친박계 내부에서는 “더 이상 무리할 필요 없고 상황관리만 잘하면 된다”는 기류가 점점 팽배해지고 있다. 일찍이 박 전 위원장의 집권을 점쳐온 그룹의 예상이 맞아 들어가자 친박계 내부의 적극 강경행보 목소리는 더욱 잦아들고 있다. 10년 전 이회창 대세론을 통해 오늘의 박근혜 대세론을 다시 들춰봤다.
대선의 해였던 지난 2002년 3월경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 총재는 불과 그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어떤 대권주자와의 지지율 경쟁에서도 10% 포인트 이상 격차를 보이며 대세론을 구가했다. 하지만 그 뒤 잇따른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 대세론에도 상당한 타격이 오기 시작했다. 당내에서는 “항공모함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 총재의 대세론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한 흐름을 처음으로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지금 대세론을 타고 있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당시 의원)이었다. 이 총재의 제왕적 리더십과 불공정한 경선 방식 등을 문제 삼아 박 의원은 2월 28일 탈당을 결행했다.
그런데 대세론의 둑이 터지고 내홍의 불길을 당긴 결정적 원인은 바로 이 총재의 측근정치 때문이었다. 이 총재는 대권도전 재수생임에도 2000년 16대 총선을 승리로 이끈 뒤 2년 넘게 지지율 1위를 달리다가 2002년 5월 거의 등 떠밀려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됐다. 이는 4·11 19대 총선 승리를 쟁취해낸 뒤 경선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현재의 박근혜 위원장 대세론과 상당히 유사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총재는 당시 대세론을 등에 업고 독불장군 식의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당 개혁을 요구하는 비주류를 포용하기보다 오만하게 정면 돌파만을 고집했다. 이런 결정적 판단 미스를 범하게 만든 주범이 바로 그를 둘러싸고 있던 측근들이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고참 정치부 기자는 이에 대해 “비주류 측이 계속해서 이 총재의 오만함을 지적하고 민심에 귀를 열라고 했지만 모두 묵살당했다. 당내 대표적 중진들인 ‘측근 3인방’ 등 ‘왕당파’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이 총재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대세론이 꺼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이 총재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이른바 ‘측근정치’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비주류였던 홍준표 의원은 측근정치의 폐해와 관련, “97년 대선 때는 측근 7인방이 발호했는데 지금 상황이 그때와 똑같다”라고 말할 만큼 측근정치는 상당히 큰 골칫거리였다.
그때 측근정치 3인방으로 지목된 하순봉 양정규 부총재와 김기배 전 사무총장 등은 보수성향의 중진들로서 이 총재를 두텁게 호위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지지 분포도상 이 총재가 개혁 쪽으로 기울 경우 더 큰 분란을 자초할 수 있다며 비주류 소장파의 개혁요구를 일축했다. 이는 현재 박정희 전 대통령 참모그룹 출신이 주축인 7인회가 박근혜 전 위원장의 멘토 역할을 자처하면서 과연 어떤 조언을 해줄 것인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2002년 대선 패배를 인정하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기자회견 모습. 임준선 기자 |
▲ 친박계 황우여 신임대표가 박근혜 위원장으로부터 당기를 이양받고 있다. 유장훈 기자 |
이들 이회창 측근그룹과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박근혜 전 위원장의 ‘7인회’의 공통점은 바로 ‘올드보이’라는 점이다. 이 총재나 박 전 위원장 모두 경력과 능력이 검증된 인사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중진 이상의 원로들을 중용했다. 하지만 개혁에 미온적이고 기득권세력을 대변하는 듯한 ‘원로’ 측근들의 이미지에 대해 당시나 지금이나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야당에서 “박근혜 7인회 면면은 수구꼴통”(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이라고 비난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새누리당에서조차 “7인회를 떠올리면 박근혜 전 위원장의 이미지가 상당히 낡고 수구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그런 사람들이 몰래 숨어서 도와줘도 시원찮을 판에 좌장격인 김용환 전 장관이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냐’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그만큼 대세론으로 오만해진 결과”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측근들의 정치개입도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회창 총재 시절에는 몇몇 중진 측근들이 막강한 금력을 바탕으로 인사와 조직책 선정에 적극 개입하는 등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박 전 위원장의 7인회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멘토’ 역할에 그친 것도 아닌 것으로 알려진다.
법조 경력이 있는 한 멤버는 박근혜-검찰 라인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멤버는 박 전 위원장에게 정치현안을 직보하는 채널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멤버는 새누리당의 당직자 인선에도 관여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무엇보다 7인회 좌장격인 강창희 의원은 친박계 지지를 등에 업고 19대 국회의장직에까지 올랐다. 박 전 위원장의 ‘오른팔’ 중 한 명이 국가 의전서열 2위에 오른 것 자체가 측근정치의 발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이회창 총재 시절 이너서클이나 박 위원장의 친박계 모두 폐쇄적인 조직을 유지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의 친박계는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패배의 아픔을 딛고 지금까지 끈끈하게 조직력을 다져왔다. 더구나 18대 총선에서 공천학살까지 당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친박계는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강한 생존력과 연대감을 보여주었다. 일각에서는 “친박계의 응집력은 현재 통합진보당 사태의 장본인들인 경기동부연합의 그것을 능가한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이를 두고 “당과 국회를 장악한 친박그룹에게서는 어딘지 교주를 모신 준-종교적 분위기마저 느껴지고…”라고 트위터에 쓰기도 했다.
이런 강한 결속력은 위기에서는 빛을 발하지만 ‘평시’에는 폐쇄적인 그들만의 조직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는 친박계의 핵심 A 의원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한때 친박계 내부 갈등의 주요 진원지였다. 그는 총선 공천 개입과 지도부 선정 영향력 행사 의혹 등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데도 박 전 위원장은 여전히 그를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는 그가 친박계의 주요 자금 파이프라인이라는, 특수한 지위가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
영남의 한 정치관계자는 이에 대해 “A 의원의 경우 이명박 정권과도 두루 사이가 좋았다.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대선후보 경선 패배 뒤 어려움에 빠져 있던 친박계 인사들을 거의 먹여 살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든든한 살림꾼 역할을 했다. 박 전 대표도 바로 그런 공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려울 때 친박 조직 와해를 막아준 그이기에 공천 전횡 등 일부 논란이 있어도 그대로 놔두고 있다는 것이다. 친박계가 몇몇 핵심을 중심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단단한 결속력을 쌓다 보니 외부인재들이 핵심에 들어가고 싶어도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 좌절하는 것이다. 결국 친박계와 박 전 위원장을 썩은 물에 고여 있게 만드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회창 총재는 또한 ‘이회창 프레임’에 갇혀 결국 대선에 패배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 총재의 리더십 스타일이 열린 게 아니라 소수 측근들의 정보만 믿고 그것에 따르는 닫힌 리더의 전형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대선에서도 이 총재 스스로가 ‘이회창 프레임’에 묶여 패배를 자초했다. 이는 박 전 위원장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원내대표 경선에서 소장파 남경필 의원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결국 자신을 충직하게 따르는 황우여 의원을 내세웠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아쉽다는 평가를 많이 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이 대선 행보를 할 때 ‘친박만의 리그’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마저도 오만함 때문에 차버렸다는 것이다. MBN정치아카데미 전계완 대표는 “‘박근혜 프레임’은 일부 측근들에게만 의존하는 비민주적 리더십과 인재를 두루 중용하지 않는 닫힌 리더십이라는 점에서 ‘이회창 프레임’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회창 총재는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박 전 위원장도 자신의 힘으로 ‘박근혜 프레임’을 극복해내야 이번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 하지만 친박계 내부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볼 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 박근혜의 대세론도 그 수레바퀴 속에서 굴러가고 있다. 새누리당의 뿌리가 이회창 대세론이 두 번 굴욕을 맛본 신한국당-한나라당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