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현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 축구 예선전 한국 대 말레이시아 경기에 출전한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다음날 새벽 2시 20분경, 이들의 레이더망에 40대 여성 박 아무개 씨가 걸려들었다. 박 씨는 당시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홀로 타고 강남구청 대로를 지나 청담동 소재 자신의 집으로 귀가하던 중이었다. 김동현과 윤찬수는 박 씨의 자택 지하주차장까지 미행했다. 박 씨가 막 차에서 나오려던 순간 두 사람은 피해자를 흉기로 위협하며 납치에 성공한다. 기존의 RV 승용차와 납치한 박 씨의 벤츠 승용차 2대를 각각 운전한 두 사람은 박 씨의 신용카드를 빼앗아 100여 만 원을 강탈했다.
하지만 범행 전력이 전무했던 두 사람의 강도행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피해자 박 씨는 차가 서행하는 틈을 타 새벽 5시께 탈출에 성공한다. 두 사람은 혼비백산해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다. 박 씨는 마침 옆을 지나던 택시를 잡아타고 기존에 타고 있던 승객과 기사의 도움을 받아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용의자 인상착의를 확인하고 주요 거점을 차단해 20여 분 만에 두 사람 검거에 성공했다. 한밤중 어설픈 전직 운동선수들의 납치강도 행각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두 사람은 현재 구속된 상태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기자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강남경찰서 사건 담당 수사관을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우선 두 사람의 범행은 사전에 충분히 계획됐던 것으로 보인다. 담당 수사관은 “지금까지 피의자는 우발적 범행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승용차를 두고 타인의 승용차를 훔쳐 탔다는 점, 가방에 포박용 케이블 타이, 테이프, 흉기를 준비했다는 점, 범행 당시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사전에 모의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 CCTV에 찍힌 김동현 납치 장면. |
범행동기와 공범 윤찬수와의 관계는 여전히 이번 사건의 의문점으로 남고 있다. 김동현과 친분이 있는 한 축구계 인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이런 생각을 내비쳤다.
“승부조작 사건 이후 김동현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랬듯 김동현도 자숙의 시간을 보내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리하게 범행을 저질렀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범행 동기가 대출액 1억 때문이라고 하는데 과연 김동현이 그만한 돈이 없어서 그런 범행을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원과 성남 등 국내 빅클럽과 해외팀에서 10년을 보낸 선수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도 있고 부모님 형편도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뭔가 더 숨겨진 내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인 범행 가담 이유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윤찬수의 행적도 의문 투성이다. 아무리 친분이 두텁다하더라도 이런 강력범죄에 도움을 줬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 내지는 이번 사건에 제3자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피의자 조사는 초기 단계다. 두 사람의 구체적인 범행 동기 및 공범 윤찬수의 가담 이유 등 이 사건을 둘러싼 궁금증은 결국 최종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승부조작·납치 ‘자책골’ 두 번
이번에 특수강도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김동현은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친 한국의 차세대 골잡이였다. 그는 현역 시절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 덕분에 ‘한국의 비에리’로 불렸다. 2004년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를 거쳐 2006년에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승선했다. 프로에서도 수원·성남 등과 같은 국내 명문클럽에서 활약했으며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에는 포르투갈과 러시아 등 유럽무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상무 복무 시절이다. 김동현은 지난해 K리그와 컵대회 등 모두 8경기에서 승부조작을 주도했으며 관련 경기 복권에 베팅해 4억 원가량의 수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그는 지난해 9월 군사재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승부조작 가담에 이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축구팬들은 또 다시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김동현의 부모님이다. 승부조작 연루 당시 김동현의 아버지는 사과문을 통해 아들을 대신해 적극적으로 용서를 빌기도 했다. 담당 수사관에 따르면 이번 사건으로 부모님은 현재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기자와 통화한 지인 역시 “예전부터 알던 아버님은 무척 올곧은 분이시다. 이번 사건으로 충격이 크실 것이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국의 비에리’로 불리던 유망주의 끝없는 추락이 축구팬들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