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전산업개발 노조원들이 최대주주인 자유총연맹의 지분매각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
▲ 한전산업개발 본사 사무실 앞에서 시위 중인 노조원들. |
지난 3월 한전산업 최대주주인 연맹측이 상장 1년 만에 경영권 매각을 선언하면서 문제는 불거졌다. 연맹은 주식상장 후 주식매각 대금과 주주배당금으로 총 900여 억 원이 넘는 고수익을 챙겼다. 이밖에도 연맹은 한전산업 소유 건물을 매각해 수익금을 챙기고 회사 영업이익을 연맹의 빚을 탕감하는 데 사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전산업 노조 측은 연맹의 주식매각 추진 배경에 대해 “연맹이 (주식처분으로) 배당금이 반으로 줄어들어 더 이상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거액의 매각금을 챙기기 위해 주식매각을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2의 론스타’로 불리며 먹튀 구설에 오른 연맹의 한전산업 주식매각 논란 속으로 들어가 봤다.
#잘못된 만남
서울 소공동 한전산업 본사 앞에는 연맹의 주식매각 반대를 주장하는 노조원들의 천막농성이 24일째(5월 30일 기준) 이어지고 있다. 5월 30일 천막 안에서 만난 노조 관계자는 “시작부터 잘못됐다”며 말을 꺼냈다. 이 관계자는 “전기 검침과 아무 상관없는 NGO단체가 한전산업을 인수한 것은 명백한 특혜이자, 잘못된 관행이었다. 그 결과가 종국에 오늘날의 ‘먹튀’ 매각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연맹이 한전산업을 인수한 것은 지난 2003년이었다. 한국전력은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한전산업 지분 51%를 연맹에 매각했고, 매각대금은 665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당시 연맹(권정달 총재)은 인수금액의 1%인 6억 6000만 원만 자기자본으로 조달했다. 나머지 대금은 사전 사업권 수의계약과 은행대출로 충당했다.
#수익만 챙긴 최대주주
인수 후 한전산업은 연맹의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매년 주주 배당금으로 40억~60억 원이 지급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2010년 주식상장 후에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상장 후 지분 20%를 매각한 대금만 358억 원에 달했다. 보통 기업은 신규상장 시 새로 주식을 발행해 투자금을 마련하는데 연맹은 기존 주식 소유분을 팔아 치워 막대한 이익을 얻었던 것이다. 이렇게 지난 9년 동안 연맹이 받은 주주배당금과 지분 매각대금을 합한 금액은 총 977억 원에 달했다.
연맹은 또 한전산업의 건물자산도 팔아치웠다. 연맹은 2006년 서울 흥인동의 회사 소유 건물과 토지를 1500억 원에 매각해 650억 원의 수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연맹이 가져간 주주배당금은 260억 원이었다.
문제는 한전산업이 건물과 토지 자산을 처분할 만큼 경영상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전산업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170억 원을 기록하는 등 매년 흑자경영 구조를 이뤄왔기 때문에 건물을 매각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결국 연맹의 수상한 경영 행태는 2008년 당시 권정달 총재가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되면서 드러났다. 연맹은 한전산업 인수 후 자산 매각 및 영업이익으로 인한 수익을 배당금 명목으로 가져갔고, 그 자금으로 인수 당시 들어간 대출금과 이자를 갚는 데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마디로 빚을 내 인수해 한전산업의 비용으로 연맹의 인수대금을 갚은 셈이었다.
노조 측은 이러한 연맹의 행태에 대해 ‘제2의 론스타’나 다름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물론 연맹은 한전산업의 최대주주로 경영권을 확보한 상태다. 투자자금 마련을 위해 자산을 매각할 수도 있고, 경영난에 매각을 진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한전산업의 경영 상태와 연맹이 보여준 자금운영 상황을 살펴보면 딱히 경영을 위한 조치는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에 연맹은 투자나 직원 복지에는 인색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노조는 연맹이 인수 당시 약속한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 9년 동안 직원 임금인상 분은 약 6%에 그쳤다. 그나마 동결되는 해가 많았고 대부분 2~3%의 인상에 그쳤다.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고 꼬집었다.
#매각하는 이유
2010년 주식처분 이후 연맹의 지분 소유분은 31%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주주배당금으로 벌어들이던 연맹의 수익도 10억대로 반 토막 났다. 이것이 노조 측에서 주장하는 매각 이유 중의 하나다. 주식도 팔고 건물도 팔고 기존 자산들을 차례로 팔아 치운 뒤 말 그대로 먹고 튀는 ‘먹튀’의 전형적인 행태라는 것이다.
노조가 주장하는 또 다른 주식 매각의 이유는 돈이다. 연맹이 보유하고 있는 1000만 주(31%)의 매각 대금은 78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노조는 최근 연맹이 KT본사 사옥 입찰에 뛰어든 것을 주목하고 있다. 연맹은 주식매각과 사옥 입찰 건은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노조 측은 결과적으로 다른 곳에 투자하기 위해서 한전산업을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새 주인도 못 믿어
노조원들이 주식매각 반대에 나선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불투명한 매각절차 때문이다. 경영진은 주식매각을 추진하면서 직원이나 노조원들에게 아무런 소식조차 전하지 않았다. 노조 측이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회사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왔다.
연맹 측에서는 5개 회사의 경쟁 입찰을 통해 한라그룹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 측은 “확인한 결과 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한라그룹 컨소시엄 단 한 곳뿐이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한라그룹 컨소시엄과 입을 맞춘 뒤 이뤄진 밀실계약이라는 주장이다.
한라그룹의 인수 방법에도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노조 측 주장에 따르면 한라그룹 컨소시엄은 과거 연맹이 한전산업을 인수할 당시와 똑같이 일부 금액만을 자기자본으로 출자하고 나머지는 은행 대출이나 투기자본을 끌어들여 경영권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전산업 노조원들은 오는 6월 29일로 예정된 주식매매절차 종료일을 앞두고 총파업 투표를 진행한 결과 76%의 찬성으로 파업안을 가결한 상태다.
매각 논란에 대해 연맹 측은 지난 6월 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한전산업이 앞으로 바이오매스 사업 등 신규사업 발주에 투자해야 할 부분이 많다. 약 750억 원의 자금이 필요한데 최대주주로서 연맹은 그만한 여력이 못된다”며 “한전산업을 에너지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기업에 매각하는 것이 한전산업을 위한 길이라 생각해 매각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