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중국 밀항을 시도하다 검거된 궁평항. 화물선 이미지와 합성. 최근엔 허점을 노린 화물선 밀항이 증가 추세다. 일요신문DB |
<일요신문>은 일선에서 밀항범죄를 단속하고 있는 해경 수사관을 직접 만나 최근 발생하고 있는 밀항범죄의 모든 것을 파헤쳐봤다.
‘79.’지난 2005년 이후 우리 해경이 검거한 국내 밀항사범의 숫자다. 여기에는 최근 화성 궁평항에서 중국 밀항을 시도하다 검거된 김찬경 회장과 그 수행원도 포함되어 있다. 79명은 순수 밀항자들로 이외에도 밀항을 알선하다 적발된 브로커들의 수는 더 많다. 이렇게 적발된 밀항사범 이외에 밀항에 성공한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자는 지난 5월 31일, 일선에서 밀항사범을 단속하고 있는 해양경찰청 외사기획수사계 박남희 계장을 만나 국내 밀항범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박 계장은 지난 5월 4일 미래저축은행 김 회장을 직접 검거한 주역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밀항범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건설 및 생산직 노동자나 윤락여성 등 해외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생계형 밀항’과 국내에서 범죄를 저질러 도주하기위해 국경을 넘는 ‘범죄형 밀항’이 그것이다. 국내에서 적발되고 있는 밀항범죄는 전자인 생계형 밀항이 대부분이다. 최근 7년간 해경에 검거된 79명의 밀항사범 중 71명이 취업 혹은 강제추방 뒤 재취업이 목적이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대부분 국내 보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본이었다. 이런 경우 밀항은 보통 지리적 여건상 부산과 통영 등에서 이루어진다.
이에 대해 박 계장은 “과거보다 일본 현지와 국내의 임금차가 좁혀지자 밀항사범의 수도 어느 정도 줄었지만 여전히 비율로 따지면 취업을 목적으로 일본행 밀항을 시도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라고 설명했다.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취업 목적의 일본행 밀항과 달리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는 경우는 국내에서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하는 사례가 많다. 최근 검거된 김찬경 회장이나 지난 2008년 중국으로 밀항한 조희팔의 경우가 이러한 범죄형 밀항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으로 밀항만 성공하면 현지 신분증 혹은 여권 위조가 손쉽기 때문이다.
최근 김 회장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밀항범죄는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3~8월 경 사이 해경은 부산 등지에서 30명에 달하는 대규모 밀항조직을 일망타진한 바 있다. 당시 사례를 비춰보면 이러한 밀항알선 조직 내에는 밀항 기도자를 모집하는 ‘밀항 알선책’, 이들을 밀항선이 정박해 있는 항만구역으로 인도하는 ‘육상 운반책’, 해외 밀항 목적지까지 인도하는 ‘해상 운송책’ 등 크게 세 가지 역할로 구분된다. 이들은 각자 면밀한 역할 분담을 통해 밀항기도자들을 이끈다. 최근 이러한 조직들이 밀항을 알선할 경우 1인당 최소 700만 원에서 최대 1500만 원까지 시세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밀항범죄도 수사당국의 단속을 피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루트’의 변화다. 박 계장은 “지난 과거 밀항조직은 40노트 이상 속력을 낼 수 있는 소규모 고속 선회 어선을 주로 이용했다. 하지만 해경이 단속을 강화하고 특히 전과사례가 있는 선박이나 알선책들을 수시로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루트의 범죄가 어려워졌다. 때문에 최근에는 이러한 고속 선회 어선 대신 대규모 화물선을 루트로 잡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화물선을 밀항사범의 운송루트로 이용할 경우 우리의 단속에 한계가 있다. 일단 어선이 정박해 있는 일반 항만과 달리 화물선 같은 경우 외부 통제가 실시되는 항만보안구역에 정박해 있다. 밀항기도자가 운반책을 통해 해당 구역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실상 단속이 어려워진다. 또 이렇게 화물선 루트를 이용할 경우 화물선 내 항해사나 이양사, 혹은 일부 선원들이 개인적으로 몰래 이들의 뒤를 봐주기 때문에 단속이 어렵다. 현재 이 같은 화물선 밀항을 단속하기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관련 기관과 협조해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라고 덧붙였다.
▲ 영화 <황해>에서 주인공이 밀항으로 황해를 건너는 장면. |
한국은 3면이 드넓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만큼 밀항사범들이 빠져나갈 루트나 방법 또한 다양한 셈이다. 따라서 조직적 알선책들을 통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밀항범죄자들과 수사당국의 쫓고 쫓기는 싸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초라한 노인이 바로 그일 줄이야…
지난 5월 4일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을 검거한 해양경찰청 외사기획계 박남희 계장이 털어놓은 당시 검거기는 한 편의 ‘추적물’이나 다름없었다.
“지난해 11월 중순, 처음 첩보를 입수했다. 당시만 해도 저축은행 고위급 인사가 밀항을 준비하고 있다는 수준이었다. 12월부터 밀항알선책들을 밀착 미행하며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서서히 그 실체가 드러났다.”
김 회장은 조직폭력배 출신 밀항알선총책 이 아무개 씨에게 밀항을 의뢰했고, 박 아무개 씨와 엄 아무개 씨 등 알선책 2명이 김 회장 밀항 작전에 투입됐다.
“원래 김 회장은 2, 3, 4월 모두 세 차례 밀항을 시도했다. 2월은 알선책 쪽에서 준비가 덜돼 연기됐었고, 3월은 당시 열렸던 저축은행 관련 재판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김 회장의 요청으로 연기가 됐다. 4월에는 몇몇 저축은행 인사들이 검찰에 소환돼 분위기가 좋지 않아 미뤘다. 결국 5월 3~4일에 화성 궁평항에서 이들이 움직일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고 검거작전에는 수사관 7명이 낚시꾼, 어부 등으로 위장해 투입됐다. 결국 일당 검거에 성공했다.”
당시 박 계장은 현장에서 밀항 일당을 검거했지만 이들 중 누군가 저축은행 고위급 인사라는 정보만 있었지, 신분파악이 전혀 안됐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김 회장과 그의 수행원 오 아무개 씨는 배 안에 있었다. 김 회장은 행색이 무척 초라했다. 설마 그 사람이 저축은행 고위급 인사일 것이라곤 전혀 눈치를 못 챘다. 김 회장에게 ‘왜 배 안에 있냐’고 묻자 그는 ‘밀항이 아니라 단지 추워서 배 안에 들어와 있었을 뿐’이라고 말하더라. 일당들을 검거해 경찰서에 데리고 왔는데도 김 회장은 신분 밝히기를 꺼렸다.”
박 계장은 당시 아찔했던 순간을 회고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알선총책인 이 씨가 모든 것을 전부 뒤집어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처음에는 알선총책 이 씨가 모든 것을 뒤집어쓰려고 했다. 이미 사전에 입을 맞춰놓은 것이다. 그런데 검찰에 요청해 검거된 피의자들의 신분조회를 했는데 놀랍게도 초라한 행색을 한 그 노인이 200억을 대출한 사실이 나왔다. 그 사람이 바로 김찬경 회장이었다. 당시 변호사가 찾아와 김 회장을 빼가려고 했는데 신분조회를 허술하게 했다면 정말 놓칠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신분이 확인되자 김 회장이 깊은 한숨을 쉬더라.”
이후 김 회장은 낙담한 듯, 조사 과정에서 순순히 진술에 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김 회장의 몸 상태는 무척 안 좋았다고 한다. 실제로 김 회장은 당시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면서 유치장 안에서 자살까지 시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