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 KGCI, 지주사 전환 압박…DB하이텍 지분 추가 확보 위한 ‘실탄’ 여유롭지 않아
DB하이텍이 지난 3월 29일 제70회 정기 주주총회에서 물적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의결권 있는 주식 수는 53%, 참석 주주 주식 수는 87.1% 찬성해 통과됐다. 해당 안건은 기존 법인인 DB하이텍에 파운드리 사업을 남겨두고, 반도체 설계(Fabless)를 담당하는 브랜드 사업본부를 신설법인인 DB팹리스(가칭)로 만드는 내용이었다.
DB하이텍의 물적분할에 소액주주들은 주총에서 기존 주주가치 훼손, 기습 발표로 인한 짧은 숙려 기간 등을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DB하이텍은 주주보호방안으로 DB팹리스를 이른 시일 내에 상장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분할 후 5년 이내에 불가피하게 상장해야 할 경우 상장 진행 여부를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해 특별결의에 의한 승인을 얻기로 했다.
DB하이텍은 또 1주당 배당금을 지난해 3배 수준인 1300원까지 늘렸다. 별도로 1000억 원 규모로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했다. 분할 기일은 오는 5월 2일로 예정돼 있다. 분사에 반대하는 주주들을 위해 3월 29일부터 4월 18일까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으로 정했다. 매수 예정 가격은 4만 6480원이다.
DB하이텍이 물적분할을 통과시켰음에도 DB그룹은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DB하이텍이 행동주의펀드의 타깃이 돼서다. 금융권에서는 예전부터 DB하이텍의 지배구조가 취약해 언제든 행동주의 펀드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최대주주인 DB Inc의 지분율은 12.42%에 불과하다.
실제로 지난 3월 30일 유한회사 캐로피홀딩스는 DB하이텍 주식 312만 8300주를 매수해 지분 7.05%를 확보했다. 캐로피홀딩스는 케이씨지아이한국지배구조개선제2호사모투자 합자회사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이 합자회사의 최대 출자자는 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의 강성부 대표다.
KGCI가 개입하자 DB하이텍 주가는 크게 올랐다. 지난 3월 23일까지만 하더라도 종가 기준 4만 7400원이었던 DB하이텍 주가는 지난 4일 고가 기준 8만 3600원까지 올랐다. 8영업일 만에 주가가 두 배가량 뛴 것이다. 5일에는 7만 4400원에 장을 마쳤다.
이 주가가 연말까지 유지된다면 DB Inc는 지주사로 전환 신고를 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5000억 원 이상이고 자회사의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이면 지주사로 자동 전환되며 기업은 이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DB Inc는 DB하이텍 주가에 따라 지주사 전환 여부가 달라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DB그룹의 자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가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 즉 DB하이텍의 주식이기 때문이다.
DB그룹은 2021년 지주사로 전환된 바 있다. 2021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별도기준 자산총액은 6019억 원, 자회사 DB하이텍의 주식가액은 4007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DB하이텍 주가가 하락했던 2022년에는 자산총액도 별도기준 4287억 원으로 하락했고, 주식가액도 2047억 원으로 내려앉았다. DB Inc는 현재 지주사 적용 제외 신고를 한 상황이다.
DB그룹은 지주사 전환을 반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DB하이텍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는 자회사 발행주식총수의 50%를 2년 이내에 소유해야 한다. 단 자회사가 상장법인이라면 조건이 30%로 하향된다. 현재 DB그룹은 DB하이텍 지분을 12.39% 보유하고 있어 지주사 전환시 약 18%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이는 지난 5일 종가 기준 약 5945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DB그룹은 오는 2024년 DB Inc가 다시 지주사로 전환된다 해도 2년의 유예기간이 생겨 충분히 실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DB Inc의 지난해 유동자산은 약 1147억 원을 기록했다. 2018년도부터 800억 원대의 유동자산을 기록해오다가 지난해 300억 원가량 늘었다. 현금성자산이 100억 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하지만 DB하이텍의 지분을 확보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DB Inc가 자회사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KGCI와 경영권 다툼도 예상된다. KCGI가 약 3%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연대와 동맹을 맺으면 지분율이 합계 10%를 넘어선다. DB그룹은 계열사, 친인척, 계열사 및 발행회사 임직원 등 지분을 끌어모으면 17.78% 정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KGCI는 벌써 경영 간섭에 들어갔다. KGCI는 지분 확보와 동시에 일반 주주가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사안은 일반주주들만의 표결(Majority Of Minority, MoM)로 의사 결정하도록 정관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또 DB하이텍이 밝힌 자사주 매입이 우호 지분 확보 등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소각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일반주주들이 임명한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위원을 선임하고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보상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KGCI는 DB Inc의 지주사 전환도 압박하고 있다. 주가가 오를수록 DB Icn의 DB하이텍 지분 확보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KGCI는 “DB그룹은 자사주 매입·소각 및 자체 재원 마련을 통한 지분 추가 매입이나 주주총회 결의에 따른 주식교환 등을 통해 정당한 방법으로 지주회사의 지분율을 확대하여 지주회사 전환을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DB그룹은 KGCI의 입장에 별도로 답변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DB그룹 관계자는 “모든 게 현 주가가 유지된다는 가정이기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확답하기 어렵다”면서도 “내년에 지주사 전환을 하더라도 DB하이텍 지분 확보에 올해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DB하이텍 매각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직접적으로 지분을 매입하는 것 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고심해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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