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 안팎의 자진사퇴 압력에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는 이석기 의원(위)과 김재연 의원이 지난 6월 5일 국회 의정지원단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지난 6월 7일 국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혁신비대위 회의에 모습을 드러낸 강기갑 위원장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강 위원장 측근은 “회의 직전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발표할 문구 하나 하나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자리에 앉은 강 위원장은 6월 6일 통진당 서울시당 당기위원회가 발표한 이석기·김재연 의원 등에 대한 제명 결정과 관련, “시간을 끌기 위해 (이 의원 등이) 이의신청을 하지 않기 바란다. 이제 그만 수습하고 새벽을 열기 위해 결단하고 뛰어야 한다”고 밝혔다. 강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사퇴한다면, 중앙 당기위원회를 통해 당원으로 남을 기회가 있다”며 이 의원 등을 향해 자진사퇴를 거듭 요구하기도 했다. 혁신비대위 측은 6월 말로 예정된 당직선거 이전에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구당권파는 신당권파를 거세게 비난하고 나섰다. 김재연 의원은 “독재정권 사법부에서나 있을 법한 정치적 살인행위다.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적극 대응하겠다”면서 “제명 결정은 상당 부분 왜곡된 보고서에 근거한 것이며, 추가 진상조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일사천리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6월 5일 국회 개원 일주일 만에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출근을 했던 이석기 의원 역시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몇몇 의원들로 하여금 “뻔뻔하다”라는 소리까지 나오게 했던 환한 미소도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의원은 “시국재판도 변론 기일을 연기하거나 방어권과 변론권을 충분히 부여한다. 왜 급하게 처리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그동안 운동권 인사들은 시국재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시국재판 운운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일단 이 의원 등은 서울시 당기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한다는 입장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부당한 절차로 이뤄진 제명이다. 이의신청은 당연하고 법적대응도 고려 중”이라고 귀띔했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중앙당기위가 심사를 하는데, 여기서 제명이 확정되면 당 소속 의원 13명 과반인 7명 이상이 찬성을 하면 최종 결정된다. 현재 통진당 의원 분포를 보면 신당권파 6명, 구당권파 5명, 중립성향 2명이다. 중립성향 의원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셈이다.
제명이 확정돼 출당이 되더라도 이 의원은 무소속으로서 의원직을 유지할 수는 있다. 이 의원 역시 무소속으로서의 의정활동까지 염두에 두고 이를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한다. 얼마 전 이 의원은 의정활동을 계속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건(의정활동 준비는) 뭐 국민이 지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해야 한다고 본다. 그건 의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국민 여론이 악화됐을 땐 ‘진성 당원’의 뜻을 앞세우더니 이제 와서는 국민을 거론한다. 운동권 특유의 궤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처럼 내부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구당권파 일각에서 “이석기 의원을 버리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구당권파 인사는 “더 이상 이 의원을 안고 가기 힘들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궁지에 몰린 당으로서는 이 의원을 포기하고 뭔가를 얻어내야 하지 않겠느냐. 신당권파와의 ‘협상용’으로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혁신비대위 관계자는 “이 의원이 자진사퇴하면 협상의 활로가 마련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 의원 거취가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기류 뒤에는 구당권파 사이에 퍼지고 있는 이 의원에 대한 ‘실망감’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구당권파 인사는 “비례대표 부정선거가 터지고 폭력사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이 의원 동정론이 절대적이었다. 오히려 이 의원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그런데 이 의원과 관련해 재산 형성 등 개인적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고 털어놨다.
사실 구당권파는 총선 이후 당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구당권파 중 유일한 재선 의원인 김선동 의원을 원내대표로, 당원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병윤 의원을 당 대표로 민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석기·김재연 의원이 출당될 경우 그러한 시나리오는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뿐 아니라 향후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구당권파는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최근 구당권파는 의원총회 소집을 시도했으나 신당권파 및 중도파가 모두 불참해 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된 바 있다. 구당권파 내부에서 이 의원을 내치고서라도 신당권파와의 물밑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대해 통진당 신당권파 인사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아니겠느냐. 구당권파가 이 의원을 사퇴시키는 대신 신당권파에게 일정 지분을 요구할 것으로 본다. 일단 당에서 입지를 구축한 뒤 다시 세력을 확장시키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당권파가 이 의원과 김 의원을 분리해 전술을 세우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 상황에서 이 의원은 힘들다 하더라도 김 의원 제명은 막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구당권파 인사는 “솔직히 말하면 우리로서는 김 의원이 더 아깝다. 이정희를 잃은 지금 김 의원만한 ‘상품성’을 갖춘 진보 여성 인사는 찾기 어렵다. 비록 상처를 입었지만 적극적인 의정활동 등을 통해 극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이 의원은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당권파는 청년비례대표 경선에서 선출된 김 의원의 경우 부정선거로 치러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비례대표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김재연 살리기’에 나설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구당권파가 ‘이석기 카드’를 제시하며 신당권파와 ‘딜’을 시도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이 의원은 그동안 구당권파의 실세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의원 역시 한 방송인터뷰에서 “(실세라기보다는) 핵심 일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도 구당권파 측 상당수는 이 의원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의원이 ‘몸통’은 아니고 ‘자금책’일 뿐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 의원을 ‘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의원으로선 구당권파로부터 ‘자진사퇴’를 요구받을 경우 ‘금배지’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이 의원을 비난하고 있는 때에 든든한 ‘우군’인 구당권파마저 등을 돌릴 경우 사실상 의정생활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이 의원 결심만이 남았다. 구당권파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면서 “신당권파의 행보도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신당권파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당권 장악에 나설 것이다. 기선을 잡은 상황에서 구당권파와 손을 잡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양측 간 사생결단식의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구당권파 역시 굳이 이 의원을 내칠 필요가 없지 않느냐. 향후 구당권파와 신당권파 간 협상에 따라 이 의원 사퇴 여부가 갈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라면만 먹고 일했다더니…
지난 3월 14일 4·11 국회의원 선거 후보 등록 당시 이석기 의원은 사당동 소재 아파트 3억 8500만 원, 여의도 빌딩 7억 7536만 원, CNP전략그룹 지분 3억 5000만 원, 현금 4095만 원, 예금 8996만 원에서 부채 8억 8000만 원을 제외한 7억 6128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운동권 출신 인사치고는 적지 않은 재산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를 놓고 이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소 라면과 김밥만 먹으며 하루 18시간씩 10년 동안 일을 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진상이 드러난 후 이 의원 재산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이 의원이 구당권파 핵심인 경기동부연합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진보매체 ‘민중의 소리’, 정치컨설팅업체 ‘CNP전략그룹’, 여론조사기관 ‘사회동향연구소’ 등을 설립해 운영해왔다.
특히 CNP전략그룹은 과거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매출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운동권과 거래해 돈 번 데가 없다”던 이 의원 주장이 거짓인 셈이다. CNP전략그룹은 지난 2월 CN커뮤니케이션즈로 이름을 바꿨다.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5월 31일 통진당 토론회에 참석해 “2008년 민노당 비상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보니 빚이 50억 원 있었다. 20억 원은 홍보비였는데 CN커뮤니케이션즈가 했다”고 폭로했다. 당이 이 의원 소유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얘기다.
특히 CN커뮤니케이션즈 매출은 지난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을 거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민노당 소속으로 대선과 총선에 출마했던 후보자들 홍보를 맡으면서 사세를 키웠던 것이다. 또한 2010년 6월 지방선거와 지난 4·11총선에서도 CN커뮤니케이션즈는 진보 진영 일부 후보자들의 홍보를 맡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밝힌 ‘4·11총선 지역구 후보자 수입·지출명세서’에 따르면 통진당 총선 출마자 51명 가운데 20명이 CN커뮤니케이션즈에 12억 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 의원이 민주노동당 등의 지원으로 벌어들인 돈을 개인 재산 증식에 사용했다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이 의원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 사당동 아파트를 2008년 5월, 빌딩은 2009년 4월 각각 매입했다. CN커뮤니케이션즈의 매출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 큰 폭으로 늘어난 직후다. 더군다나 CN커뮤니케이션즈는 사실상 이 의원 개인회사나 다름없다(전체 지분 5만 주 중 4만 9999주). 구당권파의 한 인사는 “이 의원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당내에서 이에 대한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