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사전에 자진사퇴란 없다’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으로 당에서 제명 조치된 이석기 의원. 국회에 등원해 의정활동을 이어가며 자진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이 의원은 자신이 소속된 당의 결정이나, 여론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나대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사퇴 공방이 이어질 경우 과연 그가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회 등원 뒤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는 이석기 의원의 등원 뒤 3일 행적을 샅샅이 따라가 보았다.
▲ 지난 6월 5일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국회에 첫 등원하는 이석기 의원. 이종현 기자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국회에서의 첫 인터뷰 이후 자신의 사무실인 국회의원회관 신관 520호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사무실에서 신문을 읽으며 한 시간가량 머문 뒤 9시부터 예정된 통합진보당 의원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이 자리에는 이 의원을 비롯해 구 당권파 출신인 오병윤 김선동 김미희 이상규 김재연 의원이 참석했는데 총회 성립을 위한 과반수를 넘지 못해 간담회로 대체됐다. 이날 총회에 불참한 노회찬 의원 측 관계자는 “오늘 간담회는 전날 갑자기 통보받은 일이었다. 노 의원은 지역의 다른 일정이 예정되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간담회가 끝난 직후 지난달 중앙위원회 전자투표 표결에 반발해 분신한 박영재 당원의 병문안을 위해 한강성심병원으로 행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박영재 당원의 진정성이 나로 인해 왜곡되는 것이 우려스럽다. 언론에 진정성이 다르게 전달되는 게 안타깝다”며 그간 발걸음을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병문안을 마치고 나와서는 환자의 가족들과 오찬을 나눈 뒤 의원회관으로 복귀했다.
이 의원은 오후부터 언론과의 인터뷰 일정을 모두 고사했다. 그는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사퇴 여부에 대한 언론 인터뷰는 사양한 채 자신의 정치적 의도에 부합되는 인사들만 접촉하는 듯 보였다. 이 의원은 오후부터 집무실에서 일부 당원들과의 접견만 허용했다. 오후 4시가 지나서는 통합진보당 청년당원으로 추정되는 대학생들이 대거 이 의원의 집무실을 찾아 활기를 띠었다. 이 중에는 지난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당시 ‘머리끄덩이녀’로 오인돼 트위터에서 비난 여론을 받았던 여대생도 포함돼 있었다. 이 학생은 “무슨 용건으로 찾아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디 신문사인지 묻고는 별다른 대답 없이 사라졌다.
그의 집무실 밖에서는 보좌진 구성을 위한 회의가 이어졌다. 현재까지 등록된 이 의원의 보좌진은 총 4명으로 이 중에는 이정희 전 공동대표의 보좌관을 지낸 김정엽 씨와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전략가로 알려진 김영욱 전 진보정치연구소 부소장 등이 속해 있다. 이들은 같은 층에 위치한 김미희 김재연 의원실의 보좌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신상털기가 우려된다” “들어와서 일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되면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게 의원님 이야기”라는 등의 대화가 이어졌다. 저녁 7시경에는 비서진 면접을 위해 한 여성과 간이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이 의원은 집무실에 들어간 지 7시간이 지난 저녁 8시 반경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위해 무작정 사무실 밖에서 ‘버티기’를 하던 기자를 배려(?)해 보좌진들이 잠깐 인사라도 하라는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저 때문에 고생하신다”며 악수를 건넸다. “당 안팎의 사퇴압박으로 어려움이 많겠다”는 질문에 “정상적인 의정 활동을 위해 당 내 상황이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며 “견뎌내야죠”라고 짧게 덧붙인 뒤 집무실로 돌아갔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견뎌낸다’는 한마디에는 ‘끝까지 버텨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묻어나왔다. 보좌진과 함께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운 이 의원은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회관을 나섰다. 첫날 의정활동 치고는 빡빡한 일정인 셈이다.
▲ 6일 당기위에 참석한 황선·조윤숙 비례대표 후보와 김재연 의원(앞줄 왼쪽부터). 유장훈 기자 |
현충일인 다음 날, 이 의원 측 공보담당관은 그날 스케줄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공휴일이기에 특별한 스케줄이 없고 국회에 나오지 않으실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실제 이 의원은 자신의 제명 조치가 결정되는 서울시 당기위원회에도 김영욱 보좌관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채 나타나지 않았다.
기자는 이 의원이 여의도 모처에서 측근들과 함께 당기위원회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수소문에 나섰다. 먼저 이 의원이 소유하고 있는 국회의사당 역 인근 J 빌딩과 한 달 전 J 빌딩 인근으로 사무실을 옮긴 CN커뮤니케이션즈(이석기 의원이 2005년에 만든 ‘CNP전략그룹’의 새 이름. 이 의원은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 2월 대표직에서 사퇴했다)를 찾았으나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이날 CN커뮤니케이션즈 금영재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의원이 최대주주인 건 맞지만 경영에서 물러난 상태이기에 회사에 올 일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CN커뮤니케이션즈는 이 의원이 4만 9999주, 금 대표가 1주를 가지고 있어 사실상 이 의원이 ‘막후’에서 회사를 움직이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금 대표는 이 의원의 국회 입성에 맞춰 사무실을 여의도로 옮긴 이유에 관해서 “양재동 빌딩 임대기간이 만료되면서 자연스럽게 오게 됐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금 대표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그쪽과 일을 많이 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 전체적으로 따지면 큰 규모는 아니다. 다만 전 대표(이석기 의원)가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 의원은 당선 이후에도 여전히 회사 관계자들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의원이 마지막까지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었던 사회동향연구소의 경우 민주노동당 성남시위원장 출신인 조양원 씨가 사내이사로 등재되어 있고 취재 도중 CNP전략그룹의 자회사였던 길벗투어가 최근 행사 대행업을 업종으로 추가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관해 신당권파 측 관계자는 “CN커뮤니케이션즈의 경우 이름을 바꾸긴 했어도 당원들과 언론에 너무 노출됐다. 비교적 덜 알려진 길벗투어를 통해 당 내에서 이루어질 연수와 각종 행사 등을 수주하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그 배후에 이 의원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의원의 제명조치와 관련해 오후 2시부터 마라톤 회의를 이어간 서울시 당기위원회 위원들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당규 위반으로 인해 이석기 김재연 의원과 조윤숙 황선 비례대표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결정하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석기 의원의 의정활동 둘째 날은 당에서 제명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저물어갔다.
▲ 7일 당의 제명 조치에 대해 답변하는 이석기 의원. 이종현 기자 |
제명조치가 내려진 다음 날 아침, 이 의원은 국회로 첫 출근했던 지난 5일과 같이 신관 로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미소가 사라진 담담한 표정이었다. 지난밤 당 제명조치와 관련, “계엄 하에 군사재판도 이렇게 졸속으로 강행 처리하지는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인 뒤 “이의신청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히며 5층으로 향했다.
이날 이 의원은 자신과 함께 제명 조치된 김재연 의원과 조윤숙·황선 후보자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당에서 제명된 다른 세 사람이 오후 1시 30분 기자회견을 예고하며 본청에 머물고 있는 사이 이 의원은 기자회견 직전 수행비서와 함께 의원회관을 빠져나가며 취재진을 따돌렸다. 오전에 이어 오후 기자회견장에서도 이 의원을 만나지 못한 몇몇 기자들은 “초선임에도 대선주자 급으로 얼굴 보기가 어렵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놨다.
이 의원은 당의 제명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전에 자신의 사무실에 국회 예산정책처 직원을 불러 국회 예산 사용과 국가 재정 전반에 관한 브리핑을 들었다. 사실상 자진사퇴할 뜻이 없음을 자연스런 ‘의정활동’으로 내보인 것이다.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만난 구 당권파 지지자 역시 “이 의원은 출당을 받아들일 분이 아니다. 출당되더라도 반드시 복당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직접 서울 지역 위원장들을 찾아다니며 제명조치에 관한 논의와 함께 6월 말 예정된 전당대회 전략을 논의했다. 신당권파 측 관계자는 “일단 자신의 제명과 관련해 최대한 시간을 끌며 곧 있을 당직 선거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 측이 어느 지역 어느 위원장들을 만나고 있다는 등의 전언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라고 밝혔다.
6월 8일에도 이석기 의원은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이어갔다. 그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국회에 출근하던 그때, 진보논객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한 라디오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 이들은 당내 민주주의를 위배했고, 잘못된 선거의 결과로 비례대표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석기 의원은 그의 인터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그때처럼…남의 집 ‘전전’
이석기 의원은 부정선거 파문 이후 자신의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동가식 서가숙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그의 거주지는 자신의 소유로 된 동작구 사당동의 D 아파트. 그는 여기에서 총선 전까지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 아파트를 지난 2008년 5월에 6억 500만 원에 구입한 뒤 그해 7월 농협으로부터 3억여 원의 근저당 설정을 한 것으로 돼 있다. 총선이 끝난 뒤부터 이 의원의 형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최근 한 일간지에서 이 의원 형과의 인터뷰를 싣자 며칠 전부터는 형마저 자취를 감췄다는 게 아파트 경비원과 주민들의 증언이다. 한 아파트 주민은 “이 아파트에 이 의원이 사는지도 몰랐다. 최근 기자들이 많이 오면서 그런 사람이 사는지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서울시 당기위원회 제소를 피하기 위해 경기도로 주소를 이전한 이후 현재 19대 총선 당시 성남시 분당갑에 출마했던 통합진보당 전지현 예비후보의 집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준호 비서관은 이에 대해 “그 집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곧 옮길 예정이다. 현재 상황이 정확한 거주지를 밝힐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의원이 CN커뮤니케이션즈 금영재 대표의 집(용인시 기흥구)과 사회동향연구소 조양원 이사의 집(성남시 수정구) 등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금 대표와 사회동향연구소 측은 이 같은 사실을 적극 부인했다. 이를 두고 한 인터넷 매체 기자는 “과거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활동으로 2년 가까이 도피생활을 했던 전력이 떠오른다”라고 꼬집었다.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