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NC·SSG·한화 외국인 투수 이탈 ‘비상’…KT 마운드는 ‘부상병동’
물론 앞으로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여전히 100% 전력을 가동하지 못 한 팀이 대부분이라서다. 개막 전부터 주축 선수들의 부상 소식이 들려오더니 개막 직후에도 적지 않은 선수가 크고 작은 부상으로 쓰러졌다. 이들이 돌아온 뒤에야 진검 승부가 가능하다. 불펜 승리조가 통째로 빠진 KT 위즈나 내·외야 핵심 선수가 장기 이탈한 KIA 타이거즈는 좀처럼 상승 동력을 얻지 못해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외국인 에이스의 이탈
외국인 투수는 팀 전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한 시즌 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올 시즌은 4개 구단이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 첫 달을 치르는 악재에 부딪혔다. 두산은 새 외국인 투수 딜런 파일이 호주 스프링캠프에서 라이브 피칭을 하다 타구에 머리를 맞는 불운을 겪었다. 딜런은 현지 병원에 입원했다가 금세 무사히 퇴원했지만, 어지럼증이 남아 다른 선수들보다 호주에 5일 더 머물며 안정을 취했다. 이어 입국 후 국내 병원 검진에서 '4주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아 개막 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했다.
마운드 선수층이 두껍지 않은 두산 입장에선 딜런의 빠른 복귀가 절실하다. 그래도 이승엽 두산 감독은 확실한 회복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있다. "의사의 소견이 중요하다. 경기에 나가도 된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생각이다. 딜런도 착실하게 몸 상태를 끌어 올리고 있다. 지난 12일 잠실구장에서 세 번째 불펜 피칭 51개를 소화했고, 점차 투구 수를 늘려가며 첫 선발 등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감독은 "4월 중 복귀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재활 과정에서 투수 코치와 상의해 퓨처스(2군) 리그 실전 등판을 할 수도 있다"며 "이 부분 역시 의사의 의견을 들어본 뒤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NC 새 외국인 투수 테일러 와이드너와 SSG에 새로 합류한 에니 로메로 역시 아직 공 한 개도 던지지 못 한 상태다. 와이드너는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 선발 등판을 준비하다 허리디스크 신경증으로 이탈했다. 러닝 도중 갑자기 통증을 느껴 훈련을 중단하고 휴식했다. 개막 후 2주가 지났지만 기술 훈련도 시작하지 못 한 상태다. NC 입장에선 또 다른 외국인 투수 에릭 페디가 첫 3경기에서 리그 최정상급 기량을 보여준 게 위안거리다. 강인권 NC 감독은 "와이드너는 아직 보강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며 "오는 17일에 병원 재검진을 받는다. 그 후 기술 훈련 진행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SSG가 1선발을 기대하고 데려온 왼손 투수 에니 로메로는 어깨 통증 탓에 첫 등판 날짜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플로리다 1차 스프링캠프에서 인상적인 피칭을 했지만, 일본 오키나와 2차 캠프에서 연습경기를 치르다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추후 상황에 따라 SSG가 빠르게 교체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 김원형 SSG 감독은 "부상을 안고 있는 선수의 복귀 시점이 확실히 정해진다면 기다릴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다른 판단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두산, NC, SSG는 모두 외국인 투수 한 명 없이도 시즌 초반 좋은 페이스를 유지했다. 문제는 한화 이글스다. 새 외국인 투수 버치 스미스가 지난 1일 키움 히어로즈와 개막전 선발투수로 나섰다가 갑작스러운 어깨 통증으로 3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스미스는 0-0으로 팽팽히 맞선 3회 2사 1·2루 애디슨 러셀 타석에서 코칭스태프에게 교체 신호를 보낸 뒤 자진해서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병원 검진 결과 오른 어깨 근육이 미세하게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고, 다음 날인 2일 곧바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돼 치료와 재활을 병행해왔다.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뛴 스미스는 직구 최고 시속 155㎞를 찍는 강속구 투수다. 한화는 그에게 새 외국인 투수 몸값 상한액인 100만 달러를 안기며 큰 기대를 걸었다. 최근 수년간 외국인 투수들의 줄부상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터라 이번엔 스미스의 11년 전 부상 부위까지 초정밀 검진했을 정도로 메디컬 테스트에 정성을 쏟았다. 그런데도 믿었던 에이스가 첫 경기부터 탈이 나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스미스가 없는 동안 팀이 최하위로 처졌기에 더 그랬다.
천만다행으로 스미스의 공백이 장기화하진 않을 전망이다. 스미스는 지난 11일 한화의 광주 원정길에 동행했고, 12일 데릭 로사도 투수코치가 지켜보는 가운데 캐치볼을 마쳤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스미스가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 회복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도 최소 4~5이닝 동안 무리 없이 마운드를 지키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며 "당분간은 대체 선발 남지민을 계속 선발 로테이션에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수들 줄부상에 흔들린 마운드
외국인 투수 로메로가 이탈한 SSG는 지난 11일 또 다른 악재를 맞닥뜨렸다. 부동의 에이스 김광현이 왼쪽 어깨에 통증을 느껴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삼성과 원정 경기를 위해 대구까지 내려갔지만 어깨가 불편해 병원 검진을 받았고, 그 결과 왼쪽 어깨 활액낭염 염증이 발생했다는 소견을 들었다.
조짐은 있었다. 김광현은 지난 1일 KIA와 시즌 첫 경기에서 5이닝 4피안타 1실점을 기록해 개인 첫 개막전 승리와 역대 최소 경기 150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다음 등판인 8일 한화전에서는 3이닝 8피안타 5실점으로 고전했다. 김광현이 한국 무대 선발 등판 경기에서 3이닝만 던진 건 2018년 10월 KIA전(2이닝 5실점) 이후 처음이다.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광현은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해 마운드의 기둥 역할을 했다. 가장 부담이 큰 일본전 선발 투수를 맡기도 했다. 심신이 지친 상황에서 시즌을 시작했는데 어깨에 염증까지 생겼으니 휴식이 절실하다. SSG 관계자는 "열흘 정도 휴식하면 등판이 가능한 정도의 부상"이라고 했다. 김광현은 한 차례 로테이션을 거른 뒤 이르면 21일 복귀할 전망이다.
LG는 국가대표 마무리 투수 고우석 없이 시즌을 시작했다. 원인은 김광현과 같은 어깨 염증이다. WBC 대표팀에 선발됐던 고우석은 대회 개막 전인 지난달 6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오릭스 버팔로스와 평가전에 등판했다가 목 부근에 갑작스러운 통증을 호소하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다음 날 현지 병원에서 어깨 부근 단순 근육통이라는 소견을 들었지만, 대회 기간 내내 통증이 계속돼 WBC 본선 1라운드에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고우석은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뒤 구단 지정 정형외과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정밀 검진을 받았고,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 근육 중 하나인 극상근에 염증이 생겨 2주간 투구를 쉬고 약물 치료를 해야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후 재활군이 있는 경기도 이천 챔피언스파크에 머물며 재활과 투구 준비를 해왔다.
고우석은 지난해 42세이브를 따내면서 구원왕에 오른 리그 대표 강속구 마무리 투수다. KBO리그 역대 최연소 40세이브 기록도 갖고 있다. 올 시즌 우승에 사활을 건 LG는 강력한 소방수 고우석의 회복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염경엽 LG 감독은 당초 고우석이 '잠실 라이벌' 두산과의 시즌 첫 3연전(14~16일)에 복귀할 것으로 예고했지만, 계획을 바꿔 18일 NC전으로 복귀일을 늦췄다. 미세먼지 문제로 2군 경기가 잇달아 취소되면서 고우석이 실전 점검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헐거워진 뒷문 탓에 고전하던 LG는 곧 든든한 지원군을 맞아들일 수 있다.
KT 마운드는 '부상병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필승조로 활약하던 핵심 불펜 주권과 김민수가 각각 팔꿈치와 어깨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졌다. 둘 다 시범경기를 앞두고 통증을 호소했고, 최근 병원 검진을 받았다. 그 결과 주권은 오른쪽 전완근, 김민수는 오른쪽 어깨 극상근건이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대에 올라야 할 만큼 심각한 부상은 아니지만, 2개월 동안 휴식하며 회복 상태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주권은 지난 시즌 58경기에서 3승 3패 15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3.91을 거둔 주축 투수다.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지난 WBC에 중국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했다. 김민수는 지난 시즌 5승 4패 3세이브 30홀드, 평균자책점 1.90을 기록하면서 홀드 2위에 올랐다. 그의 공백은 KT 불펜에 큰 손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신인왕 출신 오른손 선발 소형준도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지난해 13승을 올리고 WBC 대표팀에도 승선했던 소형준은 두 번의 시범경기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6.14를 기록하면서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결국 정규시즌 첫 등판이던 지난 2일 LG전에서 2⅓이닝 동안 9실점 하고 조기 강판했다. 이어 휴식일인 3일 병원을 찾았다가 오른쪽 전완근 염좌 진단을 받고 2주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소형준이 빠진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엔 배제성이 투입됐다. 이강철 KT 감독은 "지난해에도 시즌 초반 부상 선수가 많아 어려움을 겪었는데, 올해도 힘든 상황이 됐다. 잘 이겨내겠다"고 했다.
이외에도 키움이 지난겨울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한 베테랑 불펜 원종현이 부상으로 4주간 공을 던지지 못하게 됐다. 한화와 개막 2연전에서 1⅔이닝 3실점(1자책점)을 기록한 뒤 팔에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갔고, 오른쪽 팔뚝 안쪽 근육을 다쳤다는 진단을 받았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팀을 옮긴 뒤 오랜만에 중요한 상황에 나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은 것 같다. 의욕이 넘쳐서 생긴 부상"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야수들도 부상자 대열 합류
KIA는 타선에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거액을 들여 영입한 중심 타자 나성범이 종아리 부상으로 최대 8주간 그라운드에 설 수 없게 됐다. 지난 2년간 전 경기를 소화하고 지난달 WBC에도 출전한 나성범은 귀국 후 종아리 상태가 악화해 시범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당초 가벼운 부상으로 여기고 회복을 기다렸지만, 통증이 계속돼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왼쪽 종아리 근육이 손상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4주간 무조건 휴식한 뒤 재활을 거쳐야 해 복귀까지는 두 달 가까이 걸릴 수도 있다.
'제2의 이종범'으로 불리던 2년 차 내야수 김도영도 왼쪽 새끼발가락이 골절돼 3~4개월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지난 2일 SSG전에서 베이스러닝을 하다 3루를 잘못 밟아 큰 부상으로 이어졌다. '천재형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던 김도영이 개막 두 경기에서 8타수 4안타를 기록하며 공·수·주에서 맹활약하던 참이라 KIA의 아쉬움은 더 컸다.
NC는 외국인 타자 제이슨 마틴이 지난 6일 내복사근 부상으로 이탈해 울상이다. 마틴은 4일 두산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가 옆구리가 좋지 않아 경기 직전 빠졌고, 5일 두산전에선 첫 타석을 소화한 뒤 다시 옆구리 통증을 호소해 다음 타석에서 대타로 교체됐다. 결국 우측 내복사근 미세 손상 진단을 받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현재 러닝 훈련은 하고 있지만, 몸을 비틀어야 하는 타격 훈련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강인권 감독은 "마틴은 상태가 호전되고 있지만, 아직 기술 훈련은 시작하지 못했다"며 "배팅을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키움도 내야수 송성문과 전병우가 부상으로 빠졌다. 송성문은 지난 2일 고척 한화전에서 악송구 실책을 범한 뒤 홧김에 라커룸 의자를 손으로 내리쳤다가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회복까지는 10주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개막 두 경기에서 6타수 무안타로 부진한 상황에서 수비 실수까지 나오자 스스로에 대한 울분을 표출하다 사달이 난 모양새다. 전병우는 얄궂게도 같은 날 1루에서 3루수 송성문의 악송구를 잡으려고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이다 허리 통증을 느껴 함께 1군에서 빠졌다.
KT의 핵심 외야수 배정대는 개막을 앞둔 지난달 26일 SSG와 시범경기 도중 투수의 공에 왼쪽 손을 맞아 새끼손가락 부근 골절상을 입었다. 핀도 박지 못하는 상태라 깁스를 하고 회복을 기다려야 하는데, 지난 10일 재검진에서 "아직 뼈가 붙지 않아 일주일 더 깁스로 고정을 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 기존 예상 기간인 5~6주보다 공백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이승엽 감독이 주전 외야수감으로 눈여겨 보던 두산 김대한도 지난달 28일 키움과 시범경기에서 주루 플레이를 하다 오른손 중수골이 골절돼 재활군에서 시즌 개막을 맞았다. 2019년 1차 지명으로 입단한 그는 일찌감치 군복무를 마치고 올해 주전 도약을 기대했지만 예기치 못 한 악재를 만나 한 달간 쉼표를 찍게 됐다. 또 다른 외야수 김인태도 지난 7일 광주 KIA전에서 2루로 달리다 KIA 내야수 류지혁과 강하게 충돌해 오른쪽 어깨가 탈구됐다. 회복까지 4주가 필요하다. 이승엽 감독은 "김인태는 팀에서 해줘야 할 일이 많은, 중요한 선수"라며 "열심히 하다 다쳐서 누구도 탓할 수 없다. 마음이 아프다"고 한숨을 쉬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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