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진 미래저축은행. 지난 5월 예금자들이 가지급금을 찾기위해 은행을 찾은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6월 8일 미래저축은행의 전 직원 A 씨는 “퇴직금제도 환원 작업이 은행을 살리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김찬경 회장의 도피자금 마련을 위한 사기인 셈이 드러났다”며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A 씨는 또 은행 내부문서에서 예치금 계좌의 잔액이 서로 다른 점 등 은행 관계자의 주도적인 개입 정황이 포착됐다고 주장했다. 미래저축은행 사태의 새로운 뇌관으로 등장한 퇴직금 미지급 파문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5월 말 금융당국의 저축은행 2차 구조조정 소식이 금융계를 강타했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경영개선을 위해 BIS 자기자본비율 5% 미만의 부실은행들을 선정·퇴출하겠다고 발표했다. 98개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조사가 실시됐고 미래저축은행을 비롯해 2~3개의 부실은행들은 퇴출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당시 미래저축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이 -10.17%로 영업정지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때부터 미래저축은행은 퇴출을 모면하기 위해 김 회장 소유의 골프장 처분 계획을 발표하고 하나캐피탈로부터 투자유치에 나서는 등 자금 확보에 나섰다. 여기에 직원들의 퇴직금도 회사를 살리는 데 쓰였다. 미래저축은행은 저축은행 2차 구조조정 대상을 면하기 위해 퇴직연금제도를 폐지하고 중간정산을 통해 지급받은 퇴직급여충당금 80여억 원을 회사 자금으로 회수했다. 이 과정에서 미래저축은행 관계자는 직원들의 퇴직금을 회수해 가며 “회장님 골프장 매각대금 2000억 원과 금융권으로부터 투자 받으면 바로 돌려주겠다”고 직원들을 안심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 미래저축은행 전 직원이 낸 진정서. |
그렇다면 각서를 받을 정도로 회사가 책임회피를 염려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초 미래저축은행은 직원들의 퇴직금을 유상증자에 사용할 계획이었다. 은행 측은 퇴출은행 발표에 앞서 자기자본비율 회복을 위해 총 1137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계획을 수립했다.
문제는 미래저축은행이 직원들의 퇴직금을 회수해 가면서 유상증자에 투자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6월 13일 기자와 만난 A 씨는 “애초에 자본금 유상증자를 위해 퇴직금이 쓰인다는 것을 알면 직원들의 동요가 있을 것을 우려해 회사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직원들을 속인 것이다”고 주장했다.
퇴직금 정산이 끝나자 은행은 본격적인 유상증자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해 9월 21일 경영지원팀은 유상증자 실시 관련 제출 서류를 각 부서에 전달하며 각 부서장들에게 직원들이 주식청약의향서에 각자의 퇴직금액을 기재하고 26일까지 청약대금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실제로 미래저축은행의 퇴직금 추계현황을 살펴보면 414명 직원의 퇴직금 중간정산금액은 약 81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각 직원들에게 추가로 투자를 권유한 사실도 드러났다.
A 씨는 “퇴직금이 1650만 원이었는데 회사에서는 1700만 원을 채워서 내라고 했다. 다른 직원들도 액수를 맞춰서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직원들의 퇴직금도 모자라 사비를 털어서 투자를 하게 만든 셈이었다.
이후 직원들은 퇴직금을 회사에서 알려준 지정 은행계좌로 입금했지만 문제는 또 다시 발견됐다. 유상증자 과정에서 경영지원팀이 퇴직금 관리를 허술하게 한 것이다. 보통 은행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실제 계좌와 내부관리 예치금 계좌의 잔액을 똑같이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은행이 관리하는 예치금계좌는 부식비 등 세세한 항목까지 적을 정도로 꼼꼼히 기록된다.
그런데 예치금 계좌의 9월 21일부터 29일까지 입출금내역이 기록돼 있지 않은 점이 발견됐다. 반면 9월 29일 유상증자를 위한 B 계좌에는 1137억 원이 입금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A 씨는 “직원들이 입금한 계좌의 입출금 내역이 없다는 것은 결국 직원들의 퇴직금이 유상증자 계좌로 들어간 정황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80억 원이 유상증자가 아닌 김 회장 도피 자금으로 흘러들어 갔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경영지원팀은 주식청약서 및 주식인수증을 해당직원에게 도장 날인만 받고 회수해 간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문제는 이 과정에 경영지원팀이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점이다. 원래 예치금 계좌 관리는 자금팀 직원만이 확인·관리할 수 있다. A 씨는 “자금팀 직원 말에 따르면 경영지원팀에서 계좌를 달라면서 9월 21일부터 경영지원팀이 예치금 계좌를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내부문서에서 경영지원팀이 퇴직금 관련 업무를 통솔한 정황이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경영지원팀에서 각 부서장들에게 전달된 ‘퇴직급여제도 변경에 따른 동의명부 제출 요청서’가 작성된 시점은 8월 29일 오후 5시로 나타났다. 그런데 은행장의 사인을 받아야하는 ‘퇴직금제도 환원을 위한 일정 진행(안)’은 이보다 늦은 오후 8시에 작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A 씨는 “결국 은행장 사인도 나기 전에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받았다는 것은 은행장도 모르는 일을 경영지원팀이 만들어 진행한 뒤 은행장에게 보고만 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경영지원팀을 비롯해 은행 경영진들은 저축은행 수사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그때마다 ‘김 회장의 지시로 했다’는 말로 면피를 받았다. 하지만 퇴직금제도 환원 작업이 경영지원팀 등 은행의 핵심부서 관계자들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날 경우 저축은행 사태의 책임은 김 회장뿐만 아니라 회사 경영진 전체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