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4일 저녁 6·15남북정상회담 12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손학규 상임고문(왼쪽)과 문재인 의원이 서로 딴 곳을 바라보고 있다. 손 고문은 “같은 방식으로 두 번 이길 수 없다”며 문재인 대선후보를 향해 한층 각을 세우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민주통합당 추미애 대선후보경선준비기획단장의 취임 일성이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야권 대선 후보들은 없다. 완벽한 규정이라는 게 애초 존재하기 힘들고 어떤 식으로든 규정이 만들어지면 대선 후보 간에 명암이 갈릴 수밖에 없다. 현재 야권에서는 ‘박근혜’ 같은 독보적인 1위 주자가 없다는 점에서 경선 룰 개정은 그 자구 하나에 따라 후보들의 당락이 뒤바뀌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대선후보 선출시기와 관련해 민주통합당은 당헌을 180일 전 선출 규정을 80일 전 선출로 바꿨다. 당헌대로 대선후보를 선출하면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의원에게 가장 유리하다는 타 대선후보의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기간(7월 27일~8월 12일)을 피했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등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선 경선 규칙은 후보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후보 지지율이 10% 이하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경선 규칙은 더욱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당장 7월 정국의 최대 화약고로 변할 수 있다.
# 결선투표제 도입하나
“결선 투표제가 당내 대선 경선에서 실현 가능하면 이보다 더 좋은 흥행 보증수표는 없을 것이다.”
민주통합당 한 당직자 말이다. 결선투표제는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 방식으로 경선 1등 후보와 2등 후보가 다시 한 번 경선을 치른다는 것이다. 후보 간 다양한 합종연횡이 가능하고, 엎치락뒤치락 하며 드라마틱한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다. 민주통합당은 이 제도를 도입한 적이 없지만 흥행과 후보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제격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MBN 정치아카데미 전계완 대표는 “후보들의 의지가 있다면 1차 관문인 예비경선(컷오프) 이후 5~6명으로 본 경선을 치르고, 경선 참여 국민들이 1등, 2등 후보를 정하고 다시 한 번 투표를 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며 “이 경우에 참여 인원이 민주통합당 목표대로 200만 명을 넘으면 아주 좋은 제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현행대로 국민참여경선을 할 경우 사실상 경선을 두 번 치러야 하는 문제가 있어 절대 시간이 부족하고 국민 참여가 두 번씩 가능한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또한 출마 여부를 아직도 밝히지 않는 안철수 원장이 당 밖에서 경선을 요구할 경우 예비경선, 본경선, 결선후보, 다시 안 원장과의 단일화 투표를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9월 말경에 당내 대선 후보가 결정되는 일정 속에서 물리적으로 이런 절차를 소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선 후보 캠프 한 관계자는 “결선투표제가 논의되려면 안 원장을 제외한 민주통합당 내 대선후보 캠프부터 먼저 공식 출범을 해야 한다”며 “흥행은 곧 국민 참여로 이어지기 때문에 서둘러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선투표제가 실제로 이뤄진다면 1위가 예상되는 문재인 고문에 대적할 만한 후보를 비노연대에서 대표 주자를 한 명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박스기사 참조).
# 모바일투표 보정 방법
“사견을 전제로 모바일 투표는 하지 않아야 한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 당 대표 경선 이후 모바일 투표의 부작용을 이렇게 표현했다. 추미애 후보경선준비위원장도 대의원투표 30%, 권리당원과 당원, 시민선거인단의 모바일 및 현장투표의 70% 반영비율은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친노그룹의 조직적 참여로 민심을 반영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진영 학자 최장집 고려대 교수도 이에 대해 “나쁜 의미에서 혁명적 변화”라고 지적하며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반시민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고 모바일에 능숙한 특정계층이나 정치참여에 능동적인 특정정파에만 유리하다는 것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친노그룹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이해찬 대표의 경우처럼 향후 대선후보 경선도 현행 모바일 투표를 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둘 경우 특정 후보에게 상당히 유리한 제도가 될 전망이다.
인구와 연령에 맞춰 표심을 보정해주는 제도도 보완이 시급하다. 지난 당 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후보, 김한길 후보의 당락이 결정된 것도 이 제도의 허점 때문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득표율 차이가 인구보정제도, 연령보정제도 등과 같은 제도적 결함으로 인해 당 대표 뒤바뀌기가 실제 발생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디오피니언 안부근 소장은 이에 대해 “지난 전대에서 김한길 후보가 0.5%포인트 차이로 패한 것도 지역과 연령 별 보정제도 때문이다. 만약 결선투표까지 갔다면 당연히 김한길 후보가 이겼을 것이다. 지역보정 등에서 미세하게 차이가 난 것이 승패의 갈림길이 되었다. 이 역시 올바른 당심 반영을 위해 보완을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최근 “똑같은 유권자가 1표를 행사하는데 부산의 1표는 전남의 20표에 해당하는 제도로 대선 경선을 치를 수 없다”고 말했다. 대의원, 당원, 일반시민 참여비율부터 인구 보정제도 전체를 손질하는 문제 등은 향후 추미애 후보경선준비위원장이 반드시 풀어야 할 난제다.
앞서의 안부근 소장은 이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이 제도가 여론조사 기법을 일부 준용했지만 투표와 여론조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보통선거, 평등선거에 위배될 소지가 있는 이 제도를 신속하게 정비해야 한다”라고 전제하면서 “절대 투표자수, 절대 인구를 기준으로 보정제도를 시행할 것이 아니라 서울을 1로 보고 호남은 최대 1.5, 영남은 최대 0.5와 같은 방식으로 최대 최소치 보정비율 안에서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 좁아지는 안철수 입지
경선규칙과 관련해서 안철수 원장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문재인 고문을 비롯한 안 원장 연대론자들이 ‘야권의 좋은 자원’으로 위치를 인정하고 있지만 민주통합당 내 후보 강화론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실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이 시작되면 당내 후보 중심으로 경선 판이 구성되기 때문에 안 원장이 지금 같은 상태로 당 밖에 머물면 대선 후보 기회를 원천적으로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측도 안 원장의 민주당 경선 패배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본선에서는 문재인 고문과의 맞대결을 주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2면 박근혜 대권전략 문건입수 기사 참조).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안철수 원장이 대통령이 되려는 의지가 확실히 있으면 지금이라도 당내 경선에 참여해 대통령으로서 자질을 검증받는 게 훨씬 유리할 것”이라며 “높은 지지율 때문에 야권의 관심을 받는 것만으로 대선 시험대를 통과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는 최근 강기정 최고위원이 이종걸 의원의 ‘민주통합당, 안철수 원장 가설 정당 만들어 원샷 경선’ 주장에 “페이퍼정당이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이 전열을 정비해 강한 정당을 만들어 대선승리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여기에는 손학규, 정세균 전 대표, 김두관 경남도지사, 정동영 고문 등이 동참하는 분위기여서 안 원장의 입지는 시간이 갈수록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각 대권주자들이 경선 룰 개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 미세한 조정 여부에 따라 승패가 확연하게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의 경선 룰 개정 논란은 대선후보 경선 전쟁이 이미 물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진동 언론인
‘결선투표제’ 최대 수혜자는
비노연대 김두관 추대 유력
현재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 경선 구도는 문재인 대 반 문재인 구도로 정리된다. 당내 주자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고문에 비노연대가 맞서는 형국인 셈이다. 최근 경선 룰 개정을 둘러싸고 비노연대에서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기하는 것도 문 고문을 잡기 위한 비노연대의 ‘비수’라고도 할 수 있다.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비노연대 주자들이 합종연횡을 통해 한 명의 후보를 밀어줘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먼저 문재인 고문은 자신이 ‘당연히’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될 것으로 보고 향후 연대 대상을 안철수 원장으로 잡고 있다. 그가 공동정부론을 내세운 것도 안 원장과의 외부연대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비노연대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외부로 눈을 돌리기보다 ‘자강론’을 내세운다. 내부 주자들 간의 연대를 통한 자당후보의 강화만이 대선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안철수 원장에 대해 적대적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런 전략의 차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비노연대의 자강론은 그들만의 합종연횡을 통한 대표주자의 선발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각 주자들은 누가 ‘대표 선수’가 될 것인지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하지만 각 진영의 분위기를 취재해본 결과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먼저 정세균 고문 측은 자신이 ‘대표 선수’가 되면 좋겠지만 이번 경선에서 훌륭한 조연으로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경선에서 최대한 세를 불려 보겠지만 막판에 상황이 정리되는 분위기로 가면 결국은 김두관 경남지사 지지로 갈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높다”라고 말했다. 정 고문은 외부영입보다 민주당 자체 후보의 강화론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김 지사와의 연대 또는 지지가 유력하다.
다른 한 대선후보도 마지막 최종선택의 순간이 오면 다른 친노주자보다 김두관 지사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대구지역 이 후보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예선에서 김 지사와 우호적 관계를 이어갈 것이고 만약 최종순간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김두관 지사가 가장 유력한 연대대상”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비노연대 주자들 사이에서 김두관 지사 지지로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향후 대선후보 파이널은 문재인-김두관의 양자대결(결선투표제가 도입될 경우도 이에 해당함)로 정리될 수 있다.
성기노 기자·고진동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