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7일 대선출마 선언을 마친 문재인 고문이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문재인 캠프가 인재를 모으기 위해선 ‘친노 색깔 빼기’가 가장 큰 숙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민주통합당(민주당) 범친노(친노무현)계로 분류되는 한 수도권 중진의원은 최근 민주당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선후보 경선 전망을 얘기하며 이같이 말했다. 1997년·2002년 두 차례의 정권 창출, 2007년의 실패를 현장에서 지켜본 그의 말 속엔 ‘이래선 안되는데…’ 하는 근심이 짙게 묻어났다. 그를 걱정하게 만드는 대선주자는 물론 ‘친노의 적자’인 문재인 상임고문이다.
이의원의 근심은 지난 6월 17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 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긍정적 지표에도 불구하고 문 고문이 정책이나 메시지 등을 통해 이렇다 할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 이 의원은 “문재인의 가장 큰 약점은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라는 것”이라며 “그럴수록 콘텐츠로 자신이 준비된 지도자라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문재인 브랜드’라고 부를 만한 게 딱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손학규(상임고문)나 김두관(경남도지사)만도 못한 것 같다”며 혀를 찼다.
이 의원의 말 속엔 문 고문이 본격적인 대권행보에 뛰어든 뒤에도 ‘개인 문재인’일 때와 별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평가가 담겨 있다. ‘개인 문재인’이 아닌 ‘문재인의 사람들’을 겨냥한 발언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문재인 캠프’에 대해서는 외화내빈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겉보기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속은 별 볼일 없다는 얘기다. 아직 ‘문재인 캠프’가 공식 출범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런 평가처럼 문 고문의 지원 그룹은 일단 막강해 보인다.
우선 문 고문을 돕는 현역 국회의원이 30여 명에 달한다. 김경협·김상희·김윤덕·김태년·김현·도종환·민홍철·박남춘·박범계·박수현·배기운·부좌현·서영교·윤후덕·이상민·이학영·장병완·전해철·홍영표·홍익표 의원 등이 ‘담쟁이 포럼’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중 전해철(전 청와대 민정수석)·박남춘(전 청와대 인사수석)·김현(전 청와대 춘추관장)·서영교(전 청와대 춘추관장) 의원 등은 ‘노무현 청와대’에서 문 고문과 함께 한솥밥을 먹은 사람들이다. 여기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이해찬 대표와 한명숙 전 대표, 문희상 상임고문 등도 보이지 않게 문 고문을 돕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현역의원이 아니더라도 ‘담쟁이 포럼’에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은 만만찮다. 한완상 전 부총리가 이사장을 맡았고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 등 각계 노무현 정부 핵심 인사들뿐 아니라 시민사회, 문화예술계, 학계 등 각계의 명망가들이 총망라돼 있다.
하지만 정작 ‘문재인 캠프’에서 손발 역할을 해야 하는 실무진은 제대로 구성되지도 않은 상태다.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전 청와대 비서관이 공보팀장, 윤건영 전 청와대 비서관이 수행팀장, 소문상 전 청와대 비서관이 정무팀장, 정만호 전 청와대 비서관이 메시지팀장 격으로 일하고 있지만 아직은 한 사람이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는 어수선한 상황이다.
민주당 대선주자 중 여론조사 1위인 문 고문의 선거캠프가 이처럼 외화내빈에 시달리고 있는 데에는 선거캠프 구성에서부터 이른바 ‘친노 프레임’을 깨겠다는 문 고문의 구상이 적잖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계파를 초월한 선거캠프를 구성하려다 보니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친노그룹에서 이른바 ‘부산파’를 대표하는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선거캠프에서 보직을 맡지 않고 외곽에서 문 고문을 돕기로 방향을 정했다. 캠프 좌장 격으로 신계륜 의원이 임명됐고 비서실장엔 윤후덕 의원, 대변인에는 도종환·진선미 의원이 기용된 것도 이런 ‘친노 색깔 빼기’의 일환이다. 이들 모두 친노그룹으로 분류되지만 ‘친노의 핵심’이라고 볼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친노그룹의 배타성 때문에 인재가 안 모인다는 가혹한 평가도 나오고 있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자발적으로 문 고문을 돕고 싶어 찾아갔던 사람들이 캠프에 결합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자신도 같은 경험을 했다는 이 인사는 “말로는 ‘친노 프레임’을 깨겠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폐쇄성이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이 인사는 결국 범친노그룹의 대선주자인 김두관 경남도지사를 돕는 쪽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문재인 캠프’가 더딘 걸음을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손학규 고문과 김두관 지사 쪽의 분위기는 고무적이다. 오는 7월10일쯤 대선 출마를 선언할 예정인 김 지사 역시 공식 선거캠프는 꾸리지 않은 상태이지만, 말 그대로 ‘출발 신호’만 나면 달려 나갈 사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현재 ‘김두관 캠프’라 부를 만한 곳은 김 지사의 싱크탱크 격인 자치분권연구소다. 강병원 홍보위원과 박재구 대변인, 김세종 정책실장 등이 핵심 멤버다.
하지만 ‘김두관 캠프는 무지개 연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출신 성분이 다양한 인사들이 여기저기서 김 지사의 출마 선언만을 기다리고 있다. “여의도에만 김 지사를 돕는 사무실이 10곳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각종 외곽조직이다. 김태랑 전 국회 사무총장과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을 주축으로 한 생활정치포럼이 6월 28일 대전에서 창립대회를 가졌고, 7월 1일에는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조성우 전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등을 중심으로 한 ‘피어라 들꽃’이 서울에서 창립행사를 열었다. 또 권영우 특보가 이끄는 ‘모두 다함께(모다함)’도 전국 조직망 구축을 완료하고 대대적인 출범식을 준비하고 있다. 모다함에는 5만 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모두 현역 도지사로서 정치 행보에 제약이 뒤따르는 김 지사를 대신해 ‘김두관의 가치와 브랜드’를 설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활발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배경에 대해 김 지사의 한 측근은 “‘문재인 캠프’가 동문회라면 ‘김두관 캠프’는 동호회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동문회는 같은 학교 출신들만 들어가는 폐쇄적 조직이지만 동호회는 기호가 같은 사람은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개방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측근은 “친노그룹에 대한 반감이 강한 호남지역에서도 김 지사에 대한 비토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손학규 고문은 김 지사처럼 여의도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오랜 정치 경력을 반영하듯 탄탄한 선거캠프를 꾸려놓고 가장 먼저 치고 나가는 양상이다.
최원식 의원과 김영철 전 시민방송 RTV 대표가 비서실장을 맡았고 김영춘 전 의원과 민병오 전 민주당 정책실장이 전략팀에 배치됐다. 강석진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이 공보특보를 맡은 가운데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 송두영ㆍ김주환ㆍ김경록 전 민주당 부대변인 등이 공보팀에 포진했다. 정책팀에는 손낙구 전 보좌관 등이, 정무팀에는 강훈식 특보 등이 배치됐다.
손 고문을 돕는 현역 의원은 김동철·김우남·신학용·양승조·오제세·이낙연·이찬열·이춘석·임내현·조정식·최원식·한정애 의원 등 10여 명에 불과하지만 실무진들이 잘 갖춰져 있다 보니 벌써부터 적잖은 성과물들이 나오고 있다. 손학규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저녁이 있는 삶’이 대표적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족의 의미를 되찾게 하겠다는 이 정책공약은 정책팀과 메시지팀이 합작해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아직 선거캠프의 역량을 판단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오는 8월 17일쯤에야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의원은 “‘손학규 캠프’의 경우 이강철 전 수석을 비롯해 기존의 ‘손학규 사람들’조차 떨어져나갈 정도로 외연 확장이 안 되고 있고, ‘김두관 캠프’에는 정치권에서 퇴출당한 구세력들이 적잖게 결합해 있기 때문에 교통정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문재인 캠프’의 역량이 실망스럽다는 데에는 당내 인사들 사이에 별 이견이 없다. 문 고문에 대해 걱정을 늘어놨던 중진의원은 “이변을 막기 위해선 이제 문재인 고문 스스로 왜 문재인이 ‘박근혜(전 새누리당 대표)의 대항마’로 출전해야 하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 고문과 ‘문재인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박공헌 언론인
▲ 손학규 고문. 유장훈 기자 |
‘문재인, 보고 있나’
선거는 ‘메시지 전쟁’이다. 단 한 사람의 대통령 자리를 놓고 경합하는 대선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공감을 이끌어내든 공분을 불러일으키든 국민들의 마음을 때리는 메시지가 없다면 선거에서 승리하기란 쉽지 않다. 모든 후보들이 자신의 브랜드로 내세울 만한 메시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선거 전문가는 물론 카피라이터, 심리학자 등에게까지 손을 내미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시지는 그러나 그럴 듯한 말솜씨, 글재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수사(레토릭)를 넘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메시지여야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어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메시지는 후보 개인은 물론 선거캠프의 수준을 반영하는 척도”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면에서 민주통합당(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쏟아낸 메시지들을 평가하면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미 오래 전부터 정치권에 몸담아 온 손학규·정세균 상임고문이 준비해 놓은 꾸러미를 하나 둘씩 풀어놓고 있는 반면 중앙정치 초년병인 문재인 상임고문과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상대적으로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손 고문은 벌써부터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메시지를 자신의 브랜드로 키워가고 있다. 이는 근무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손 고문은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으로의 초대’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릴레이 정책공약 발표회를 시작했다.
손 고문은 지난 18대 국회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을 대표발의해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이후에도 관련 토론회와 공청회 등에 적극 참여하면서 협동조합이라는 정책 대안을 선점했다. 이는 또 다른 브랜드인 ‘진보적 성장’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정세균 고문도 비록 지지율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대권 도전을 겨냥한 정책 대안과 메시지를 상당 부분 축적해 놨다. 지난해 책으로도 펴낸 <분수 경제론>은 그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는 서민·중산층과 중소기업을 키워 경제의 힘이 분수처럼 아래로부터 위로 치솟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문재인 고문과 김두관 지사는 아직까지 다분히 추상적이거나 다른 주자들과 유사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 고문은 대선 출마선언 때 “낙수효과(위에서부터 아래로 성장의 효과가 퍼져나간다는 이론) 같은 낡은 생각이 양극화와 성장 잠재력 약화를 낳는다”고 밝혔지만, 이는 정 고문의 ‘분수 경제론’과 판박이다. ‘아시아 슈퍼그리드’, ‘3차 산업혁명’ 등의 메시지도 각각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제러미 리프킨의 구상이다.
김두관 지사도 ‘신 3균주의(균등한 정치, 균등한 경제, 균등한 교육)’,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백성은 가난한 것에 분노하지 않고 불평등한 것에 분노한다는 의미)’ 등의 메시지를 내놨지만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정책 대안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