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조직들 대부분은 국내가 아닌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때문에 국내 수사당국이 이들을 체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이들 조직 내부 시스템과 조직원들에 대한 정보 자체가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자는 최근 중국 현지에서 보이스피싱 조직과 가까이서 접촉하고 있다는 탈북브로커 L 씨로부터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있는 이들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L 씨는 직업 특성상 현지 조선족들과 많은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들 중 자연스레 조직원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고 한다. L 씨와의 인터뷰는 여건상 이메일과 유선으로 진행됐다.
L 씨에 따르면 현재 중국 연길에만 보이스피싱 조직이 무려 40여 개가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조직은 보통 7~8명가량으로 이루어진다. 조직의 실질적인 수장인 ‘책임자’를 정점으로 실제 피싱에 나서는 4~5명의 ‘실무자’, 이들을 관리하는 ‘관리자’, 한국 현지서 피싱한 돈을 인출하는 ‘인출자’ 등으로 이루어진다. 국내에는 이러한 조직원들을 모집하고 알선하는 전문브로커들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L 씨는 “조직원들은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뒤섞여 있다. 직접 피싱에 나서는 ‘실무자’의 경우 대부분 한국인들이다. 실무자들 중에는 종종 여성들도 있지만 타국에서 범죄행위를 해야 한다는 위험부담 때문에 대부분 남성들이다. 한국에서 주로 인출기를 통해 돈을 인출해 중국에 전달하는 인출자들은 CCTV에 얼굴이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10회 간격으로 교대된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하루에 낚아채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L 씨는 이에 대해 “일개 조직이 하루에 족히 5000만~1억 원은 벌어들인다. 경험이 많고 세가 큰 조직은 이보다 더 많이 번다. 대개의 경우, 책임자가 이 가운데 70%를 차지하고 나머지 30%를 두고 인출자와 실무자 등이 나눠 먹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피싱한 돈은 국내 대포통장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현재 중국 현지에서는 한국의 대포통장이 약 300만~400만 원 시세에 거래되고 있다. 주로 농협, 기업은행, 외환은행 통장들인데 이들 은행은 타 은행에 비해 감시시스템이 비교적 허술하다. 또 농협의 경우,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도 손쉽게 인출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애용하는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일부 조직의 경우 국내 경찰까지 매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L 씨는 이에 대해 “일부 조직은 한국 경찰을 매수하기도 한다. 보통 300만~500만 원 정도의 시세가 형성돼 있다. 이러한 경찰들은 조직원들이 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할 때까지 뒤를 봐주고 중국에 정보도 제공해준다. 또 신고가 들어와도 각종 구실을 만들어 수사를 늦춰주기도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수사당국 내부 감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직들이 연길에 몰리는 이유는 역시 한국어에 능통한 조선족들이 많고 조직 상호간 연계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L 씨는 “이러한 조직들은 대포통장 거래, 환전, 한국 현지 인출지역 및 경찰인력 정보를 상호간 공유하고 이용해야 한다. 또 연길은 중국 전체를 통틀어 일회용 핸드폰칩 값이 가장 싼 곳이다. 이러한 핸드폰칩은 피싱에 용이하다. 칩을 갈아 끼울 때마다 일회용 전화번호를 사용할 수 있고 국내 특정 관공서 번호까지 도용해 쓸 수 있다”라고 귀띔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