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출마와 공천권 행사 문제없을 듯…4년 넘도록 1심 양승태·임종헌 벤치마킹 늘어
문제는 이런 재판의 장기화 경향이 총선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검찰 기소 후 1심 선고가 나올 때까지 무려 3년 2개월이나 걸렸다. 이재명 대표 사건 역시 재판부 예측대로 내년 총선 뒤에 선고가 나오게 되면 이재명 대표의 총선 출마와 공천권 행사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사건들의 재판이 장기화되는 것은 이제 법원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를 놓고 4년 넘게 1심이 진행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거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판사로 평생을 산 이들이 증인 신문 규모를 확대하고 재판장 편향성 등을 문제 삼으며 재판을 장기화하는 것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는 풀이다.
#“1심 선고까지 1~2년 걸릴 것 같다”
5월 11일 열린 이재명 대표 대장동 사건과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 공판준비기일에서 이 대표 측은 “한 푼이라도 부정한 돈을 받은 증거를 검찰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공소사실은 악의적으로 꾸며진 허구”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에 대해 전면 반박한 것. 함께 기소된 정진상 전 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 측은 “기록이 너무 방대해 검토에만 1년 정도 걸린다. 복사비만 1000만 원이 들 것 같다”고 강조했다.
혐의를 부인하면 자연스레 증가하는 것이 증인 신문이다. 검찰의 혐의를 인정할 경우, 증인이 검찰 수사 때 작성한 검찰 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면 되지만 혐의를 부인할 경우 재판부는 이를 일일이 불러 확인해야 한다. 20만 쪽이 넘는 수사기록과 100여 명에 이르는 참고인 등에 대해 재판부가 직접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재명 대표는 같은 법원 형사합의34부(부장 강규태) 심리로 진행 중인 허위사실 공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을 받기 위해 격주 금요일마다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주 1회 재판을 진행한다고 가정하면 2년이 넘게 걸릴 가능성이 높다. 재판부가 검찰과 이재명 대표 측에게 “1심 선고까지 1~2년 넘게 진행될 수 있다”며 재판 장기화 가능성을 미리 밝힌 이유다.
법원 안팎에서는 공판중심주의(유무죄의 심증 형성은 공판정에서 판사가 직접 심리한 것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하는 방향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10여 년 전부터 1심에서만큼은 검찰의 조서 등 수사기관의 일방적 주장을 믿기보다는 직접 재판부가 심리해 판단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정책을 끌고 왔기에 공판중심주의 측면에서 증인을 일일이 불러 확인하는 게 맞다”며 “그러다 보니 부작용으로 재판도 장기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정 전략으로 삼는 이들의 등장
이를 법정 전략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이었다. 각각 4년 3개월, 4년 6개월이 다 되도록 1심이 진행 중이다. 2018년 11월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은 5월 16일 열린 공판이 205회차였고, 같은 혐의로 2019년 2월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판은 17일 오전 열린 공판이 263회차에 달할 정도다.
재판 장기화를 선택한 것은 사법부의 보수화 색채가 짙어질 때까지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당장 2023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의 퇴임이 예정돼 있고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대법관 13명이 교체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2심은 물론, 대법원에서 유리한 판단을 받으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법원 정기인사로 재판부 구성원이 바뀌면 기존 증거 등을 다시 검토하는 절차도 밟았다. 모든 증언 녹취 파일까지 몇 달에 걸쳐 다시 듣는 절차가 진행되면서 수개월이 더 소모됐다.
정치권이 재판 장기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케이스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당장 이재명 대표만 하더라도 “김문기 씨를 알지 못했다”고 발언했다가 허위사실 공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사건을 제외하면 내년 4월 총선 전에 1심 선고가 나오는 것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5년간 선거에 나설 수 없지만, 2심·대법원까지 다툰다면 내년 4월 열리는 총선 출마나 공천권 행사에는 큰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자녀 입시 비리 등으로 기소됐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1심 선고가 나오는 데만 3년 2개월이 걸리면서 총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역시 2심·대법원까지 다툰다면 내년 4월 열리는 총선 출마까지 문제될 게 없기 때문이다.
#“법원 전체 변화 필요” 지적도
법원 안팎에서는 주요 사건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건에서도 ‘재판 기일’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형사합의 1심(구속 사건)은 114.1일(2014년)에서 138.3일(2021년)로 길어졌다. 선고를 받는 데까지 한 달의 시간이 더 필요해진 셈이다. 그나마 형사 사건의 경우 구속기간 만료(6개월)가 있기 때문에 재판이 늦어지는 게 덜한 편이다. 민사합의부 1심 사건은 2014년에는 접수부터 선고까지 평균 252.3일이 걸리던 것이 2021년에는 364.1일로 7년 만에 110일 넘게 늘었다.
판사들은 승진제도가 폐지되고, 재판연구원 등 지원 인력이 확충되지 않으면서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승진 제도가 없어지면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고, 공판중심주의로 늘어나는 업무량에 비해 판사 등 인력 확충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발생한 문제”라며 “누군가에는 재판 장기화가 전략일 수도 있겠지만 국민 대다수는 빠른 판단을 받는 게 더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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