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부권 발동은 예상됐던 일이었다. 간호법 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법안에 반대해온 국민의힘은 곧바로 윤 대통령에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윤 대통령에 직접 법안 관련 내용을 보고하며 거부권을 건의했다. 고위당정협의회도 거부권 행사에 뜻을 모으면서, 대통령실도 이에 호응하는 반응을 내보냈다.
이번 거부권 행사는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20일 만이다. 또한 4월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한 달여 사이 두 번째 거부권 행사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삼권분립 위반’이라고 맹비난하면서 재투표 방침을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모든 국민이 아시는 것처럼 간호법 제정은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 당시 공약이었다”며 “헛공약, 공약파기 등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이로써 간호법 제정안 재의 안건은 5월 말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거부권 행사 법안이 다시 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통해 간호법 재의안에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시키기로 당론을 정했다. 115석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반대를 던지면 가결은 불가능해, 간호법 제정안은 폐기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간호협회가 총파업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간호협회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단체행동에 나섰다. 간호협회는 불법진료에 대한 의사의 업무지시를 거부하는 준법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간호사 면허 범위에 해당하는 진료행위만 하겠다는 것. 현행 의료법에는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간호사인 이른바 PA(진료보조) 간호사가 없다. 그럼에도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이미 1만여 명의 PA 간호사가 불법 의료행위를 관행적으로 해왔다.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도 벌이고 있다. 간호협회가 간호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4%가 운동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간호법 재추진과 함께 정부·여당에 투표로 심판하겠다고 선언했다. 총선기획단을 꾸려 간호법을 파괴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단죄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영경 간호협회 회장은 “마지막까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한 파업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직적인 연차 투쟁을 통해 단체행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호협회의 단체행동으로 ‘의료대란’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앞서 간호협회가 5월 8일부터 14일까지 윤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시 단체행동에 의견조사를 실시했는데, 간호사 98.6%가 ‘적극적으로 단체행동에 동참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PA 간호사들이 준법투쟁에 나설 경우 수술실 등 의료기관 운영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행히 ‘준법투쟁’ 사흘째에도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큰 혼란이 일지 않았다. 하지만 대규모 규탄대회를 기점으로 단체행동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호협회는 5월 19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전국 간호사와 간호대학생, 간호인 가족 등이 참여하는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다만 5월 16일부터 18일까지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직무수행 부정평가 이유에 ‘간호법 거부권 행사’가 3%로 집계됐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간호협회가 아직 본격적으로 집단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직무수행 부정평가 요인에 ‘거부권 행사’가 나왔다. 의료공백이 현실화되면 최근 상승하고 있는 윤 대통령 지지율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부는 간호협회의 집단행동 모니터링을 비롯해 의료계 관계자들을 만나 현장 안정화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간호사들의 이번 단체행동은 법을 어기는 게 아니라 법을 지키겠다는 취지기 때문이다. 조규홍 장관은 5월 16일 브리핑에서 “간호사의 처우 개선은 국가가 책임지겠다. 보다 많은 현장을 직접 찾아 어려움을 함께 느끼며 필요한 정책을 추진해나가겠다”며 “간호사분들이 환자 곁을 계속 지켜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원론적 입장만 내놨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업무강도 완화, 근무환경 개선 등 간호계 달래기에 집중하고 있다.
앞서 야권 관계자는 “솔직히 일반 국민들은 간호법 제정안의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민주당에서는 간호법의 취지와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또한 현재는 간호조무사들이 의료연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간호법을 재추진할 때는 간호조무사협회의 의견을 듣고 입장을 반영한 법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의사들은 의료법 개정안 정식 시행까지 6개월 정도 남은 만큼, 그 전에 재개정을 한다는 계획이다.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의료인 면허취소법’의 위헌 소지를 없애고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재개정안이 마련돼 국회에 상정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규홍 장관 역시 “의료인이 모든 범죄에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경우 면허를 취소한다는 것은 과도하다는 여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관련 법 개정 방향과 관련해 당정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모든 범죄에 적용된다는 면에서 과잉처벌이라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의사들의 일부 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 것에 국민들이 분노한 것도 사실”이라며 “정식 시행도 되지 않은 개정안에 대해 또 다시 손을 본다면 국민적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