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전 의원 등의 저축은행 자금 수수 혐의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면서 대선자금을 둘러싼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로 출석하고 있는 이 전 의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경선과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의 자금 조달은 크게 ‘투트랙’으로 이뤄졌다. 당시 캠프에 참여했던 새누리당 전직 의원인 A 씨는 “자금과 관련된 일은 이상득 전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두 명이 도맡았다. 어디서 돈을 가지고 왔는지, 또 정확한 집행 내역 등은 둘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번에 검찰 수사를 받은 정두언 의원은 캠프에서 핵심 업무를 하긴 했지만 자금 모집 부분에 있어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정 의원은 캠프에서 가장 많은 운영비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A 전 의원은 “정 의원은 기자들 관리와 네거티브 대응을 맡았다. 이 때문에 캠프 운영비를 상당히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저축은행 비리 수사가 2007년 대선자금으로 불똥이 튈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임 회장이 대선 직전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에게 건넨 수억대의 돈이 캠프 운영비로 쓰였을 것이란 얘기다. 임 회장 역시 검찰 수사에서 “당연히 캠프로 가는 줄 알고 돈을 줬다. 이 전 의원이나 정 의원 모두 캠프 핵심 멤버 아니었느냐”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솔로몬저축은행의 한 고위 임원도 검찰에 출석해 “임 회장이 대선에 쓰이는 돈이라며 수십억 원을 준비하라고 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따라서 검찰이 임 회장과 이 전 의원·정 의원 간에 이뤄진 돈 거래 성격에 대해 들여다볼 경우 대선자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중수부의 고위 인사는 “임 회장, 이 전 의원, 정 의원 등에 대한 개인 비리 사건이다. 대선자금 수사는 정치권에서 보는 시각일 뿐”이라면서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이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는 아직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검찰은 이 전 의원과 정 의원 수사 과정에서 돈의 용처는 추궁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중수부 관계자도 “임 회장이 이 전 의원에게 돈을 건넨 시기가 대선 직전이라고 해서 그것을 대선자금 수사로 판단하는 것은 억지다. 저축은행 수사의 연장선상으로 보면 된다”라면서 “돈을 주고받은 게 드러나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봐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검찰이 전격적으로 대선자금을 파헤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이 전 의원이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 의원도 돈을 받지 않았다고 밝힌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선 대선자금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또한 검찰이 대통령 형님에게 ‘면죄부’를 주려한다는 일각의 곱지 않은 시선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 전 의원을 소환조사한 이후 서초동 주변에서는 ‘이 전 의원에 대해 뇌물수사의 기본인 압수수색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수사 범위를 제한했다는 점’ 등 때문에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중수부 관계자는 “정권 말기에 검찰은 철저하게 조직 논리로 움직인다”면서 “우리가 청와대 눈치를 볼 것 같으냐”고 되물었다. 공식적으로는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메스를 들이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 2007년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의 거리유세 모습. 이종현 기자 |
당시 이 전 의원과 대선캠프 인근인 종로구의 한정식집에서 식사한 적이 있다는 모 대기업 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부회장을 모시고 갔다. 유력 대선주자 ‘형님’인 이 전 의원에게 ‘보험’을 들고자 했다. 우리만 그랬겠느냐. 10대 그룹을 포함한 주요 기업은 다 이 전 의원과 접촉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돈을 건네진 않았지만 그 후에 아마 캠프 운영비 등을 지원해 줬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가능성에 대해 여야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파급력을 감안하면 이번 대선정국에서도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해득실을 따지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우선 야권에서는 강력하게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정두언 의원의 검찰 출석은 저축은행 비리와 파이시티 비리의 본질인 ‘MB 대선자금’이라는 비밀의 문을 여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같은 당 송호창 의원도 “문제의 핵심에는 이 대통령의 대선자금이 있다. 모든 비리의 끝에 대통령이 있다는 의혹을 이제는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에 대해 우려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지금도 당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새누리당은 대선자금 수사가 달가울 리 없을 것이다. 친박·친이를 떠나 모두가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캠프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지만 박근혜 전 위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박 전 위원장으로서는 이명박 정부와 확실하게 거리를 두려고 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이쯤되면 통과의례죠~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자 현 정권 최고 실세로 통했던 이상득 전 의원이 사법처리 수순에 돌입하자 과거 정권의 임기말 어두운 과거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정권 출범 후 크고 작은 친인척 비리로 이미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의 처사촌과 손윗동서 동생이 정권 초중기 권력형비리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바 있다. 지난해에는 사촌처남이 제일저축은행에서 청탁 대가로 4억 원을 받고 실형을 받으면서 이 대통령은 또 한번 도덕적 상처를 입었다. 이 전 의원이 사법처리될 경우 정권 말기에 대통령의 가족이 비리 혐의로 구속 수순을 밟는 것은 이제 통과의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 씨는 ‘소통령’으로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지만 1997년 기업인들로부터 수십억 원을 수수하고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가 드러나 2년간 옥살이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차남 홍업 씨와 삼남 홍걸 씨가 각종 이권 청탁 등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실형이 선고돼 도덕적 상처와 함께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려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친형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 씨는 정권 초기 ‘별 볼일 없는 촌부’로 불렸지만 참여정부 시절 내내 이권과 청탁이 있는 곳에선 언제나 ‘봉하대군’으로 행세했다. 건평 씨는 2003년 9월 대우건설 사장의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2005년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당시 농협중앙회장에게 로비를 해주고 30억 원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2008년 12월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건평 씨가 노 전 대통령 임기 내내 속만 썩였던 ‘못난 형’이었다면 이 전 의원은 현 정권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이자 명실상부한 최고 실세로 군림했다. 이 전 의원이 사법처리될 경우 이 대통령이 감내해야 할 충격파와 정치적 후폭풍은 참여정부 시절보다 훨씬 거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 이상득 전 의원(왼쪽)과 정두언 의원. 일요신문 DB |
이번 칼자루는 정두언 손에…
이명박 정부 ‘개국공신’인 이상득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의 악연이 화제다. 이 둘은 인수위 시절부터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은 ‘파워게임’을 벌였고 이 대통령은 ‘형님’의 손을 들어줬다. 급기야 정 의원은 이 대통령 일가의 뒷조사를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변방으로 밀려났다.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온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이 이번엔 나란히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두 사람 모두 임석 회장으로부터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의원은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저는 이 정부 내내 불행했습니다. 그분들은 다 누렸습니다. 마지막 액땜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정 의원이 지칭한 ‘그분들’ 중심엔 바로 이 전 의원이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의원이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정 의원이 대선캠프 시절과 정권 초 작성한 ‘이명박 대통령 X파일’을 손에 쥐고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정 의원이 궁지에 몰릴 경우 ‘히든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정 의원은 “2007년 경선 전에 만났던 임 회장이 경선 후 찾아와 이 전 의원을 소개시켜줬다. 임 회장이 ‘돈을 좀 어떻게 하겠다’고 해서 이 전 의원에게 보냈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의원의 이러한 발언 이면에는 청와대를 향한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가 내포돼 있는 것으로 정치권은 해석하고 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