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증권 ‘수상한 거래’ 포착, 검사 대상 확대 방침…KB증권 “금리 급등 속 고객 피해 방지 위한 것”
주식과 달리 채권은 장외시장 비중이 크다. 이해관계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거래가 가능하다. 일부 거래는 자금시장의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 됐고, 일부 거래는 편법 및 위법 논란을 낳기도 했다. 시중에 돈이 넘치는 저금리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최근 금리가 상승하면서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금감원의 판단이다.
금감원은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 증권사 신탁·랩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계좌) 관련 채권 자전거래·파킹 등 불건전 영업행위 및 운용상 위험요인을 검사하겠다고 예고했다. 일부 증권사들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단기 신탁·랩 계좌에 유동성이 낮은 고금리 장기채권·기업어음(CP)을 편입할 경우, 자금시장 경색 및 대규모 계약해지 발생 시 환매에 대응하기 위해 연계거래 등 불법·편법적인 방법으로 편입 자산을 처분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쉽게 풀어 보자. 투자에서 기대수익과 위험은 비례한다. 채권은 주식과 달리 만기가 있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과 이자를 받는다. 채권은 신용등급이 낮고 만기가 길수록 위험이 커져 더 높은 수익률(yield)을 제시해야 한다. 채무불이행 확률과 만기까지 자금이 묶이는 기회비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신용등급이 높고 만기가 짧으면 위험에 대한 보상, 즉 수익률도 낮아진다.
기업들은 사업에서 발생하는 현금을 사용할 시점에 맞춰 금융상품에 넣어둔다. 증권사에는 신탁이나 일임형랩어카운트 등이 대표적이다. 채권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은 만기에 맞춰 투자자산도 대부분 만기가 되도록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상품의 만기가 90일이라면 보유 채권도 90일 안에 대부분 만기가 도래하도록 운용해야 안정적인 원리금 상환이 가능하다. 금융상품보다 만기가 더 긴 채권은 시장에 팔아서 현금화를 해야 하는데 시장 상황에 따라 값이 달라지게 된다.
금리가 하락하고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값이 오른 채권을 팔아 손쉽게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저금리 기조에서 만기불일치 운용전략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이유다. 반대로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한 때에는 제값을 받기는커녕 파는 것 자체도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 투자자는 엄청난 손실을 보거나 제때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증권사들 입장에서는 불법과 편법을 동원할 유혹에 빠지게 된다. 금리가 급등한 지난해 하반기 상황이 딱 그랬다. 금감원이 점검에 나선 이유다.
금감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탁·랩 시장의 동향, 환매대응 특이사항 등을 면밀히 살펴왔다. 회사별 수탁고·증가추이, 수익률 및 평균만기(Duration) 등 기초자료 분석과 시장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5월부터 현장 검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하나증권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KB증권과 연계된 수상한 거래를 포착했다.
고객의 자산과 이를 운용하는 금융회사의 고유자산 사이의 거래는 법에 의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지난해 KB증권이 고객 돈을 운용하는 채권형신탁과 KB증권이 하나증권에 신탁한 계좌 사이에 거래가 이뤄졌다. 그런데 KB증권이 거래 이후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KB증권의 채권형신탁은 단기상품인데 만기가 긴 채권까지 담고 있었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지난해 미국의 긴축과 한국전력의 대규모 채권 발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으로 자금시장이 ‘난리’가 난다. 채권가격 하락은 물론 매매 자체도 꽁꽁 얼어붙었다. 결국 해당 채권형신탁에 담겼던 중장기 채권을 KB증권이 사들이게 된다.
금융투자회사 자기 재산과 고객의 자산간 거래가 금지되는 이유는 고객의 이익을 해치면서 돈을 벌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서다. 다만 예외적으로 고객 자산에 유리한 거래는 허용된다. KB증권이 자사에 불리한 거래를 수행했다는 뜻이 된다. 실제 KB증권이 이후 해당 신탁 계좌를 시가로 평가한 결과, 평가손실이 약 900억 원에 달했다.
문제는 KB증권이 자사에 불리한 거래를 한 이유다. KB증권은 시장이 어려운 때여서 고객에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해당 채권형신탁은 원금보장 상품이 아니다. 이익을 봐도 손해를 봐도 투자자 몫이다. KB증권의 ‘유동성 공급’으로 투자자의 손실이 줄었다면 자본시장법 55조에서 금지하는 손실보전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관련 처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다. 법적 이유나 명분 없이 회사에 손해를 입히고 제삼자에 이익을 줬다면 이를 용인한 KB증권 경영진이 배임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손실보전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이지만 동법 64조에서 손해배상은 허용하고 있다. 금융투자회사가 법령·약관·집합투자규약·투자설명서에 위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업무를 소홀히 하여 투자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조항이다. 그런데 KB증권은 운용과정에서 위법이나 소홀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결국 거래의 이유는 금감원 조사 결과가 나와야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KB증권에도 900억 원은 상당히 큰 규모다. 뚜렷한 이유 없이 손실을 감수했다면 대주주인 KB금융 입장에서는 그에 따른 책임을 따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900억 원의 손실이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채권은 만기까지 보유하면 부도가 나지 않는 한 원리금 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탁이나 투자일임상품에 시가가 아닌 장부가 평가도 허용되는 이유다.
채권의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이른바 ‘파킹(Parking)’이 가능하다. 매매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서다. 예를 들어 A 사가 채권을 사자마자 값이 떨어졌다면 이를 B 사에 맡겼다가 값이 회복되거나 만기가 되면 회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채권이 부도가 나면 맡긴 이도, 맡은 이도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실제 사례도 있다.
신탁·랩어카운트는 증권업계 전반에 보편적인 상품이다. 금감원은 KB증권에 이어 향후 검사 대상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다수의 사례가 발견된다면 이번 채권 관련 불건전 영업행위 단속이 증권사들의 수익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KB증권은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계약 기간보다 긴 자산으로 운용하는 미스 매칭 운용은 불법이 아니다”면서 “상품 가입 시 투자자들에게 미스 매칭 운용 전략에 대해 설명했고 고객 설명서에 계약 기간보다 잔존 만기가 긴 자산을 편입해 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사전에 고지했다”고 밝혔다. 이어 “손실을 덮을 목적으로 다른 증권사와 거래를 한 것도 아니다”며 “지난해 9월 말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금리가 급등하고 CP시장 경색이 일어나자 2차 고객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거래를 진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자가 싼 단기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장기채권에 투자해 돈을 버는 것은 증권사들의 보편적 자금조달 및 운용 행태였다. 부동산PF 사태가 커진 데에도 이 같은 행태가 촉진제 역할을 했다. 부동산PF 만기는 보통 1~3년인 반면 자금 공급원인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는 통상 1~3개월마다 지속적으로 차환이 이뤄졌다. 증권사들이 단기로 자금을 조달하다 보니 PF에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제공할 때도 단기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금융시장이 별 문제가 없을 때는 만기가 돼도 다시 돈을 빌려주면 되지만, 지난해처럼 금융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재차입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면서 PF가 자금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금감원은 최근 부동산PF 자금조달을 단기 ABCP가 아닌 대출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사업장에 큰 문제가 없다면 금융시장의 변화로 자금 조달에 애로를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되면 증권사들이 관련 자금을 조달할 때도 사업장 만기에 맞춰 중장기로 빌려와야 한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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