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한 감자탕집. 젊은 남녀 4명이 들어와 감자탕, 뼈찜, 해물파전 등 종류별로 음식을 주문했다. 주인이 4명이 먹기에는 너무 많다고 했지만 이들은 주문을 강행했다. 음식이 나오자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 렌즈를 바꿔가며 요란하게 음식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음식을 거의 다 먹었을 때 그들은 ‘작심한 듯’ 주인을 불렀다. 자신들을 ‘파워 블로거’라고 소개한 이들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인기 블로그에 홍보해줄 테니 음식 값을 공짜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인은 이들의 황당한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이들은 “우리에게 돈 주고 광고하는 음식점도 천지다. 무슨 배짱으로 이러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식당 문 닫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는 협박도 더해졌다. 소란이 커질 것이 두려워 주인은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이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위 사례는 파워 블로거의 영향력을 악용해 업체에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비리를 저지르는 사건의 한 예에 불과하다. 파워 블로거들의 비리 백태 속으로 들어가 봤다.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는 1년간의 블로그 활동, 포스트의 양질을 따져 ‘파워 블로그’ ‘우수 블로그’를 선정한다. ‘파워 블로그’에 선정된 블로그는 포털의 메인에 소개되거나 검색 상위에 노출되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받는다. 파워 블로그는 인터넷 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일부 파워 블로거들은 이를 악용하여 잇속을 챙기는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언제부턴가 식당·카페 주인들이 사진기를 들고 오는 손님들을 보면 긴장하게 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경기도 외곽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A 씨는 “얼마 전 된통 당한 후 노이로제가 걸렸다. 이젠 손님이 오면 ‘파워 블로거가 아닌가’하는 생각부터 든다”고 호소했다.
그렇다면 파워 블로거들은 어떤 유형이 있을까. 앞서 언급한 사례는 가장 흔한 경우다. 비싼 음식을 잔뜩 시켜놓고 사진을 찍은 이들은 가게 홍보를 빌미로 ‘공짜만찬’을 즐긴다. 공짜로 해주지 않으면 업소에 대해 비난 글을 남기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파워 블로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업소 측에서는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다.
파워 블로거의 영향력이 커지다보니 파워 블로거를 사칭해 무전취식을 벌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취재 결과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러한 파워 블로거들의 추태 목격담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들을 희화화하는 ‘파워블로거지(파워블로거+거지)’라는 신종어도 생겨났다.
▲ 파워 블로거의 횡포를 고발한 한 음식점 주인의 글로 ‘파워블로거지’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왼쪽). 수수료를 받고 불량제품의 공동구매를 진행했다 논란이 된 한 파워 블로그의 포스팅 화면. |
휴대폰 기기를 다루는 파워 블로거 C 씨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제품의 리뷰를 쓸 때는 절대 비난 일색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의심을 사기 때문이다. 차라리 소개 글에 단점 몇 개를 적어놓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렇게 하면 글의 객관적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당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삽시간에 퍼뜨릴 수 있다. 댓글로 여론을 몰아가는 것은 처음 몇 개만 부정적인 댓글을 올리면 분위기가 조성되어 그 다음엔 알아서 악성 댓글로 도배가 된다”고 귀띔했다.
맛집 탐방을 전문으로 하는 파워 블로거 D 씨는 “한 달 안에 가게 문 닫게 만드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라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기업이나 음식점 입장에서는 파워 블로거들의 무리한 요구를 울면서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파워 블로거의 영향력을 마케팅으로 이용하는 사례도 적잖다. 기업이 그들에게 뒷돈을 주고 홍보 글을 올려달라고 청탁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파워 블로거에게 판매금의 일부를 커미션으로 주고 제품의 공동구매 진행을 요구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해 벌어진 베비로즈 사건이다.
요리·육아 부분의 대표 파워 블로그인 ‘베비로즈의 작은부엌’은 ‘깨끄미’라는 제품의 공동구매를 진행했다. 블로그를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베비로즈’를 믿고 제품을 구매했다. 그러나 구매자들로부터 ‘깨끄미’의 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제품에서 기준치 이상의 오존이 검출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판매업체인 (주)로러스생활건강에서 환불해주지 않자 구매자들은 “베비로즈가 나서달라”고 했다. 하지만 답이 없었고 확인 결과 그는 개당 7만 원의 수수료를 받고 공동구매를 진행한 것이었다. ‘베비로즈’는 3000여 대를 팔아 2억 원 이상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파워 블로거들의 공동구매 진행이 더욱 문제가 되었던 건 이들 파워 블로거들은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동구매로 받게 되는 수수료를 신고하지 않고 세금을 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베비로즈 사건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파워 블로그의 소득신고 누락 및 탈세 여부를 적발해 과태료를 물렸다. 이후 국세청은 파워 블로거들의 영리적 활동에 대해 철저히 감시했다. 또한 공동구매자들의 구매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블로그나 카페의 제품 홍보 글에는 ‘수수료가 있는 홍보성 포스트입니다’라는 안내 글귀를 명시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감시에도 몇몇 파워 블로거들은 공동구매 과정에서 편법을 이용해 세금을 피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주문을 받을 때 구글문서도구인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스프레드시트로 주문을 하면 주문 현황과 통계는 구글의 스프레드시트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 구글이 국세청의 정보공개요청에 응하지 않는 한 국세청은 파워 블로거들이 공동구매를 통해 어느 정도의 수수료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든 파워 블로거가 이런 악행과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례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IT기기를 다루는 파워 블로거는 기자와 만나 “블로그가 처음 생겨난 목적은 자신의 생각과 생활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리적 목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기업에서 돈을 받고 홍보성 글을 올리면 글이 재미도 없고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금방 알아 챈다”며 “진짜 파워 블로거들은 자신의 블로그가 상업적으로 변질되고 훼손되는 걸 싫어한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