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프트 지명 이후 4년 만에 LG 떠나 독립구단서 활동…“지금은 인내심·기대림의 싸움”
한선태가 프로 유니폼을 입기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건 단 한 번도 학교 야구부에서 제대로 야구를 배운 경험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로지 독학으로 사회인 야구에서 공을 던지며 프로의 문을 열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문을 두드리며 기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LG에서 한선태에게 그 기회를 제공했다. 한선태는 프로 입문 후 빠르게 적응해나갔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팬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부상과 체력, 구위 저하 등으로 4년 만에 LG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선태는 포기하지 않고 프로 재진입을 위해 독립구단인 파주 챌린저스에서 활동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5월 24일 경기도 광주 팀업캠퍼스에서 방금 독립리그 경기를 마치고 나온 한선태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평 웨일스를 상대로 구원 등판했던 한선태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돼 있었다. 5월 들어 무실점 행진을 기록했던 그가 처음으로 실점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경기는 파주 챌린저스의 패배로 마무리됐다. 한선태는 “나 때문에 진 것 같다”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독립구단인) 가평이 정말 탄탄한 팀이다. 이상하게 그 팀만 만나면 경기를 어렵게 풀어간다. 오늘 좋은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많이 속상하다.”
한선태한테 올 시즌 경기들은 ‘쇼 케이스’나 다름없다. 독립리그 경기를 보러 다니는 프로팀 스카우트들에게 자신이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이뤘는지 보여주는 상황에서 크고 작은 실수는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선태는 애써 아쉬움을 내려놓고 인터뷰를 통해 LG와 함께 했던 지난 4년여의 시간을 되돌아봤다.
“KBO리그에 들어가려고 2018년 8월 해외파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을 때의 상황들이 생각난다. 당시 참가자들 중 이대은, 이학주, 윤정현, 하재훈, 김성민 등 엄청난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는 바람에 미디어에서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참가자들 중 비선수 출신은 내가 유일했다. 이대은 선수가 던진 다음에 내가 공을 던지는 순서라 부담도 컸고, 긴장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선태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다음 날 곧장 일본 독립리그로 복귀했다.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 당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는 드래프트 상황을 지켜봤고, 드래프트는 어느새 10라운드로 향했다.
“10라운드로 넘어가니까 조금씩 마음이 초조해지더라. 그렇게 흘러가다 LG 팀 순서에서 ‘일본 독립리그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 한선태’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닌가.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이날만을 위해 혼자 독학으로 공 던지는 걸 배우며 버텼던 나였다. 비선수 출신도 KBO리그에 입성할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원회에 탄원서를 내는 등 열심히 발품 팔아 뛰어다닌 덕분에 규약 개정이 이뤄졌고, 비선출인 내게 기회가 주어졌는데 마침내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 벅찬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선태는 계약을 위해 LG 트윈스 사무실에서 차명석 단장을 만난 장면을 잊지 못한다. 당시 해외파 선수들한테는 계약금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계약금 자체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유일한 일본 독립리그 선수 출신이었던 그는 일본에서 계약금을 받은 적이 없었던 터라 예외 조항이 적용됐다고 한다. 차명석 단장이 한선태에게 계약금 3000만 원을 제시했을 때 한선태는 무조건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통장에 세금 제하고 2천 몇백만 원의 돈이 들어온 걸 보니 꿈만 같더라. 진짜 내 돈이 맞나 싶었다. 모두 부모님 드렸다. 야구 시작한 이후 처음 받은 거액이었다.”
한선태는 육성 선수 신분으로 LG 2군이 있는 이천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훈련 환경, 숙소 생활, 구단에서 제공하는 식사 등은 고급 호텔 못지 않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름을 외워야 할 선수들도 많았고, 비선수 출신이라는 사실로 인해 한선태는 “처음엔 다소 무서웠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적응해 나가야 할 환경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직접 보고 느낀 것이다.
육성 선수 신분이었던 한선태는 2019년 3월 28일 퓨처스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고양(키움 2군)전 7회에 첫 등판해 1이닝 1피안타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2군에서 계속 무실점 행진을 벌이며 선수들 사이에서 ‘미스터 제로’로 불린 그는 마침내 6월 24일 1군에 콜업돼 정식 선수 계약을 맺고 등번호 40번을 받았다. 그리고 6월 25일 잠실 SK전에서 7-3으로 뒤진 8회 초 등판해 1이닝 1피안타 4사구 1개를 기록하고 내려오는 걸로 감동적인 1군 데뷔전을 마무리했다. 당시 중계를 맡았던 SPOTV 캐스터는 한선태의 등판에 감동한 나머지 한선태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 방송으로 내보냈다. “‘한’계를 뛰어 넘은 ‘선’수가 ‘태’어났습니다 한선태입니다”라고 말이다.
“1군 콜업 후 그렇게 빨리 데뷔전을 갖게 될 줄 몰랐다. SK전 등판을 예상못했는데 당시 형들이 점수 차가 많이 벌어지면 등판할 수도 있을 거라고 귀띔해줘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당시 첫 타자인 이재원 선수한테 안타를 허용했다. 다음 타자가 안상현 선수인데 연속 볼 3개를 던지고 말았다. 4구째 공을 던지기 전 이런 생각을 했다. ‘선태야, 너 여기서 볼넷 내주면 바로 2군 내려간다’라고 말이다.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던져야만 했다. 3볼 상황이라 한 가운데로 스트라이크를 던졌는데 타자가 그냥 지켜봤다. 그다음 공은 파울이 됐다. 마지막 공을 한가운데로 던졌는데 그 공이 병살타가 된 것이다. 순간 ‘아 살았다!’ 싶더라.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니 형들이 더 좋아하더라. 관중들도 뜨거운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1군 데뷔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
이후 한선태는 두 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신데렐라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스태미너 부족과 좌타자 상대로 구사하는 변화구에 약점을 노출하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가 이후 오른쪽 골반 통증으로 고생하다 프로 첫 시즌을 마무리했다.
당시 한선태는 통증이 너무 심해 걸어 다니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병원을 전전하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한의원을 방문했고, 거기서 침을 맞은 후 통증을 잡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부상으로 한선태의 구속은 조금씩 하락을 거듭했다. 최고 구속 146km/h를 자랑했던 직구 구속이 어느 순간 141km/h로 떨어졌다. 구속 하락은 한선태의 입지가 흔들리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2022시즌 한선태의 등번호는 111번이었다. 야구 선수한테 세 자릿수 등번호는 육성 선수를 의미한다.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2022시즌에는 퓨처스리그에서 37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3.05를 기록했다. 고무적이었던 건 특별한 부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2군 불펜 투수들 중 가장 많은 44이닝을 소화하기도 했다. 덕분에 퓨처스리그 통산 100이닝을 기록했지만 구단에선 더 이상 한선태를 기다려주기 어려웠다. 또 다른 선수들한테도 기회를 줘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구단 사무실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순간 구단에서 시즌 마치고 호주에서 진행되는 ‘질롱코리아’를 보내주려는 건가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방출밖에 없었다. 하지만 2022시즌은 부상도 없었고, 퓨처스리그에서도 예상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터라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가 현실로 다가왔다. 방출이었다. 구단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동안 기회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인사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 투성이였다. 그때 왜 몸 관리를 더 잘하지 못했을까. 그때 왜 더 절실하게 훈련하지 않았을까, 그때 왜 기회를 잡지 못했을까 등등 한선태의 가슴을 후벼 파고 지나가는 장면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잠실야구장이 그리울 땐 친구들과 경기 티켓 사서 야구장을 찾는다.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던지고 치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 내가 LG에서 보낸 4년의 시간들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다가오더라. 다시 독립리그로 돌아갔지만 프로 재입단을 목표로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천 숙소가 아닌 파주의 한 빌라에서 챌린저스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올 시즌까진 마지막 기회를 얻기 위해 열심히 뛸 생각이다.”
프로 재입단을 목표로 삼고 있는 한선태는 LG에서 나온 후 각 구단 스카우트들에게 전화해 테스트라도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미 선수 구성을 마무리한 팀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한두 팀에서 테스트를 하러 한선태를 찾아온 적도 있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선태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친구들은 모두 돈을 벌고 있는데 난 오히려 (독립구단이라) 회비를 내며 야구를 하고 있다. 지금은 인내심, 기다림의 싸움인 것 같다. 언젠가는 야구를 접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아쉬움을 남긴 채 야구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 다시 프로 마운드에 서고 싶다는 목표를 품고 공을 던진다. 그게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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