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폭력배를 동원한 청부폭행과 금품로비. 여기에 탈세와 거액의 회사 자금 횡령까지 더해진다. 주인공은 아버지와 딸. 새로운 ‘막장 드라마’인가 싶겠지만 아니다. 생활용품업체 피죤 오너일가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아버지 이윤재 회장(78)은 청부폭행 혐의로 구속 수감된 상태. 뒤이어 이 회장의 딸 이주연 부회장(48)이 대표이사를 맡으며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최근 금품로비 의혹에 더불어 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와 검찰의 압수수색 등으로 피죤의 앞날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잘나가던 피죤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이윤재 회장의 청부폭행 사건이 터지면서부터다. 지난해 이은욱 전 사장(56)이 불합리한 해고를 당했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고 언론에도 알리자 이 회장은 부하직원을 통해 조직폭력배에게 1억 5000만 원을 주고 청부폭력을 행사했다. 또한 사건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폭력배에게 도피자금 1억 5000만 원을 건넨 혐의까지 더해져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한 이 회장은 항소했으나 2심에서도 같은 형을 받았다.
▲ 이윤재 회장과 이주연 부회장. |
이 부회장은 미국 메릴랜드 미술대학과 뉴욕 퀸스대학대학원(회화전공)을 졸업했으며 전공을 살려 지난 1996년 피죤 디자인팀장으로 입사한 후 마케팅실장과 관리총괄부문장을 거쳐 2007년부터 부회장에 올랐다. 이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이 부회장은 범죄로 찌든 피죤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취임 직후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대규모 패키지 리뉴얼을 진행한 것. 특히 주력 상품인 섬유유연제에 하얀색 용기를 도입해 깨끗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려 했으나 오히려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부회장마저도 금품제공과 관련해 구설수에 휘말렸다. 관할 세무서 공무원들을 상대로 금품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으며 회사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도덕성에 타격을 입은 것. 이 사건은 국세청 자체감사 과정에서 적발되면서 뒤늦게야 알려졌다. 지난해 피죤 간부들이 북인천세무서 조사·세무 관련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후 세금감면 등의 대가로 200만여 원의 현금봉투를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이 부회장이 직접 금품을 전달한 것은 아니나 이와 관련한 보고를 받고도 묵인함은 물론 결재도 직접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이미 사건과 연루된 공무원을 내규에 따라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피죤 측에서도 “오너일가와 관련한 문제는 우리도 뉴스로 접할 뿐 자체적으로 알고 있는 바가 없어 해줄 말이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이 회장을 포함한 오너일가의 ‘막장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청부폭행과 금품로비에 이어 거액의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까지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윤희식)는 이 회장 일가가 수백억 원의 회사 돈을 횡령한 정황을 포착하고 서울 역삼동 피죤 본사를 비롯해 오너일가 및 주요 경영진들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관련 회계장부 등을 압수했으며 이 회장이 청부폭행 혐의로 수감됐던 구치소와 병실까지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뒤이어 피죤의 하청업체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이 회장이 비자금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를 동원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때문이다. 검찰은 이 회장이 하청업체에 일감을 발주하는 과정에서 실제 비용보다 부풀린 거래대금을 지급한 뒤 나중에 일부를 다시 돌려받는 수법으로 회사 돈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일부 하청업체는 자금거래 과정에서 돈 세탁이 이뤄진 의혹도 받고 있는 중이라 검찰은 이러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이 회장의 비자금 용처 및 탈세 혐의 등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계획을 밝혔다. 앞서 국세청도 지난 1월 말부터 피죤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상당수의 조세포탈 혐의가 드러난 것으로 알려져 검찰 수사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김수현 내세운 피죤의 발버둥
각종 찌든 때, 그가 지울 수 있을까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한 피죤의 노력이 눈물겹다. 이윤재 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은 이후 홍보활동을 자제하다 지난 5월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배우 김수현을 전면에 내세워 재활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TV 광고와 동시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이벤트도 진행하며 기업 이미지 살리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피죤은 비싸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대대적인 할인행사도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한때 제값을 받겠다며 대형마트에서 기획 상품을 철수하는 대담함도 보였지만 이제는 이런 자존심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신제품 개발과 더불어 올해 하반기에는 샴푸와 치약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을 세우며 사업 확장에 대한 꿈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잇따른 오너일가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피죤은 재기의 발버둥에도 여전히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0년이 넘게 지켜오던 섬유유연제 최강자 자리도 지난해 LG생활건강의 샤프란에게 내줬다. 한때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점유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기도 하며 굴욕을 겪었다. 매출액도 힘을 못 쓰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피죤의 매출액은 923억 원으로 전년대비 35.8% 하락했다. 이는 2004년 이후 처음으로 1000억 원 아래로 떨어진 수치다.
반면 경쟁업체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LG생활건강은 처음으로 매출액 1000억 원을 돌파했으며 시장점유율 50%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신규 브랜드인 한국P&G의 ‘다우니’는 출시 5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20%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 피죤의 재도약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업계에서도 피죤의 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지 추락은 한 순간이지만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피죤의 경우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있기 때문에 다시금 발목 잡힐 가능성도 농후하다”며 “샴푸나 치약 등 생활용품은 기존 업체가 워낙 탄탄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어 피죤이 파고들 틈이 없다”고 전망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