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와 KT가 빠르게 재벌의 모습을 띠어가고 있다.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2년 대기업집단 주식소유현황 및 소유지분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총수가 없는 대기업집단(민영화된 공기업)’인 포스코와 KT가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재벌)’이 해오던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 취임 이후 이 같은 추세가 더 빨라졌다. 공기업 이미지에서 아직 탈피하지 못한 두 기업이 최근 몇 년 새 급속도로 재벌을 닮아가고 있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두 기업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들여다봤다.
지난 1일 공정위 발표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점은 포스코와 KT의 변화상이다. 두 기업은 늘 ‘민영화된 공기업’이라는 틀에 묶여 같이 거론돼 왔다. 회장 선임 과정에서 ‘정권의 입김’ 의혹을 받는다는 점은 두 기업의 공통점이자 아직 공기업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두 기업의 공통점이 또 하나 생겼다. 오너가 없는 기업임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오너가 지배하는 재벌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와 KT가 재벌을 닮아가고 있다는 근거를 공정위 발표를 토대로 간추려 보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계열사 간 공동출자 등에 의한 계열사 수 증가, 둘째는 계열사 간 출자 단계의 증가, 셋째는 주력사업과 무관한 계열사 편입으로 인한 영위 업종 확장이다.
지난 2005년 계열사 수가 17개였던 포스코는 2008년 31개로 증가하더니 올해에는 그 수가 70개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KT도 마찬가지다. 동 기간 KT의 계열사 수는 ‘12→29→50개’로 급속히 증가했다. 오너가 있는 웬만한 재벌보다 계열사 수 증가가 가파른 셈이다.
출자 단계에서도 포스코는 3단계, KT는 4단계를 기록했다. 재벌이라 불리는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의 평균 출자 단계인 4.4단계와 맞먹는다. 반면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 평균 출자 단계인 1.8단계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공정위 측이 “총수 없는 집단은 전반적으로 소유구조가 단순·수직적이나 일부 민간집단(포스코·KT)의 경우 총수 있는 집단처럼 복잡한 소유구조를 유지”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공정위 측은 또 “총수 없는 집단은 평균 계열회사 수가 (총수 있는 집단보다) 훨씬 적고 수직적 출자의 비중이 크지만 예외적으로 포스코, KT 등은 계열회사가 많고 출자 단계가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포스코와 KT는 또 주력사업과 무관한 업종에 진출하면서 계열사 수를 늘린 것으로 파악됐다. 포스코의 경우 골프장운영업, 보험중개업, 광고대행업 등에 진출해 있는 것이 대표적이며 KT는 부동산업, 자동차리스업 등 통신과 관련 없는 사업 분야에 진출해 있다. 재벌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포스코와 KT 등의 이 같은 변화상에 대해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공기업을 민영화한 이유 중 하나가 전문화인데 이걸 깨뜨리면서 비관련 분야에 진출한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포스코와 KT의 변화상은 재벌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적 기업 형태가 여전하고 그걸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벌시스템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산업경제적 풍토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사업을 다각화하고 계열사를 늘린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는 문제가 중요하다”면서 “총수나 회장의 이익을 위해서 행하는 것이라면 잘못”이라고 밝혔다.
포스코는 지난 2000년, KT는 2002년 각각 민영화가 완료됐다. 정부 지배에서 벗어나 민간기업으로서 전문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업체로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 공기업 민영화의 본래 취지다. 재벌을 닮아가는 것이 공기업 민영화 취지는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계열사 증가는 인수·합병(M&A)을 통한 손자회사(자회사의 자회사)의 증가에 따른 것”이라며 “골프장운영업, 보험중개업 등도 손자회사여서 M&A를 통해 자연스레 딸려온 것일 뿐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해석은 부당하다”고 해명했다. KT 관계자 역시 “추가된 계열사는 대부분 손자회사인 데다 사업적·전략적 측면에서 인수·합병한 것에 따른 것”이라며 “재벌들처럼 소유나 덩치를 키우려는 목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홍형주 공정위 경쟁정책국 기업집단과 사무관은 “그런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계열사가 수십 개씩 늘어나고 비관련 업종에 진출한 것은 맞지 않느냐”고 따졌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 이미 “대기업 관련 정보를 공개해 시장의 감시 기능을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5월에는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직접 “대기업 집단의 주식소유 현황과 지분도 공개”를 예고했다. 공정위는 이번 달에는 대기업 집단의 채무보증 현황을, 8월에는 내부거래 현황, 9월에는 지배구조 현황 등 대기업 정보를 연달아 공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재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재계가 반발한다고 해서 멈출 분위기가 이미 아니다”라며 “관건은 대선 후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느냐다”라고 말했다.
최근 이슈가 되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공정위도 바짝 다가선 것처럼 비친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잘하고 있다고 보지 않고 있다. 위평량 연구위원은 “공정위가 재벌개혁은커녕 오히려 재벌구조를 고착화시켜왔다”며 “공정경쟁, 독점규제, 법집행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